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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뭄씨 Jun 26. 2023

글쓰기에 대가를 치르는 이유

몽글몽글 글 짓는 시간

 

6월의 어느 주말. 서귀포의 한 놀이공원에 남편과 딸을 밀어 넣고, 오랜만에 혼자 카페에 앉아서 글을 쓰는 사치스러운 시간을 보내봅니다. 일과 육아에 치여 참으로 오래간만에 보내는 조용한 시간입니다. 이토록 글 쓰는데 필요한 시간의 인플레이션은 심해지는데, 그럼에도 무렴하게 대가를 치르는 이유는 다소 소박하고 내밀한 것이어서 그 마음을 들여다보면 고백하는 소녀의 마음이 되어 공연히 수줍어지네요.




- 고향 대구집의 서랍 속 케케묵은 일기장에서,

- 대학 학보사 홈페이지에서 발견한 기사에서,

- 블로그 접어 둔 비공개 폴더 속 포스팅에서,

- 오래된 외장하드 속 파일에서,


 우연히 과거의 내가 쓴 기록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 기억의 파편을 마주할 때 이토록 현실감 있고 생생한 모양을 한 나와 재회할 수 있다는 게 반갑고 신기했습니다. 사춘기 짝사랑으로 괴로운 나, 밤샘 취재를 했던 나, 사회생활에 지쳐하던 나. 다소 풋내가 나고 거친 말투지만, 어린 내가 그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대견하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시간을 잊으며 읽고 또 읽어보았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활자가 붙잡아 두지 못하고 흩어져 버린 또 다른 시간이 아까워지더라고요. 분명, 남겨진 기록 외에 소중한 날을 보냈던 내가 또 있었을 텐데 하고요.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미련입니다.


 문득,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반짝반짝 가치 있게 붙잡아 두고 싶어 졌습니다.

  활어 회처럼 싱싱한 오늘을 박재하기로 합니다.




 내게 글이 필요한 이유 두 번째, 일종의 한약을 지어먹는 마음이랄까요. 여기서 은유 작가의 말을 빌려보겠습니다.


 ‘글을 쓴다고 문제가 해결되거나, 불행한 상황이 뚝딱 바뀌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 줄, 한 줄 풀어내면서 내 생각의 꼬이는 부분이 어디인지,

  불행하다면 어디가 불행한지 적어도 이유는 파악할 수 있다’

  -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저  -


 출퇴근, 육아 등 생활 속 번잡한 요인들이 삶 속에 끼어드는 요즘, 글을 쓰면서 차분히 내 마음, 감정을 정리하고 갈무리하는 시간이 소중해졌습니다. ‘오늘, 식당주인의 태도에 화났었구나.’, ‘급한 마음에 이분에게 내가 상처를 준건 아닐까’. 똑바로 응시하지 못하고 참아 두기만 한 마음을 어루만집니다. 급하게 봉합하고 지나간 상처를 살피는 마음입니다. 무면허 심리상담가에 빙의하여 한 글자, 한 글자 담금질해 나가다 보면, 미결로 남겨둔 생각과 마음이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함으로써 윤이 나게 닦아지고 명확해지더라고요. 그 자체로 치유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글쓰기의 대가를 치르는 이유.

 경주마처럼 달려갈 명확한 목표가 있었던 고3 수험생, 취업준비생 시기를 지나자, 내 마음의 극성이 어디를 향하는지조차 가늠하기 힘들어졌습니다. 때때로 같은 자리를 맴돌고 경로를 이탈합니다. 생각과 행동의 의미와, 근거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말끝을 흐리기 일쑤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간 나 스스로에게 차분히 사유할 절대적인 시간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내게 글을 쓰는 시간은 작은 스탠드를 켜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내면의 흐린 안개를 몰아내고 생각을 밝혀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해?', '무슨 의미가 있었어?' 스스로에게 묻고, 타자기로 답하고. 형체 없이 부유하던 답들이 활자의 형태가 되어 가지런히 정렬합니다. 그러다 보면 나 스스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글을 쓰는 이유를 곱씹으며 새로운 기록의 의미를 깨워보는 바로, 지금 이 순간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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