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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뭄씨 Jul 04. 2023

여긴 100% 자연산 키즈카페입니다

샛도리물과 검은 모래해수욕장

“난 키즈카페는 싫은데……”     

 주말 방구석, 우리 부부는 아침부터 고민이 많습니다. 상념이 똬리를 틀어 미간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 잡았습니다. 흐린 날이 이어지는 바람에 주말 나들이 레퍼토리가 텅텅, 바닥을 드러냈기 때문이지요. 실내 제주도로 검색하면 상위에 보이는 ‘브릭캠퍼스’, ‘헬로키티 아일랜드’, ‘빛의 벙커’ 등 갈 수 있는 곳은 웬만한 곳은 이미 훑은 것 같습니다. 손가락만 꼼질 거리며 오늘의 탐방코스를 계획하기 바쁩니다.      


 적절한 장소가 떠오르지 않으면, 차선책으로 가장 만만한 곳은 바로 키즈카페입니다. 

 사실 우리 딸아이는 키즈카페를 좋아합니다. 아니, 환장합니다. 근데 매번 주저하고 망설이는 까닭은 순전히 엄마의 ‘못난 마음’ 때문일 겁니다. 부끄럽지만 저에게 키즈카페는 빈약한 인맥, 또래 친구의 결핍을 확인하는 장소입니다. 소외감과 미안함이 들어 피하고만 싶습니다.      




 얼마 전, 제주 구좌읍에 위치한 야외 키즈카페에 간 적이 있습니다. 

 숲 놀이터를 표방하는 이곳은 나무, 흙을 활용해 자연 친화적으로 꾸며져 있었으며, 어른들에겐 치킨, 브런치와 함께 캠핑존의 로망을 제공하는 곳이었습니다. ‘와!’ 놀이공원처럼 입장 팔찌를 야무지게 착용하고, 카페를 한 바퀴 돌아보자니 분위기가 아주 맘에 쏙 들었습니다.     

 

 그러나 감탄도 잠시, 함께일 때 느끼는 외로움이 더 사무치는 것이라 했나요. 단출하게 아이 딱 하나만 온 집은 우리 가족이 유일했습니다. 둘째가 배 속에 있긴 하지만 딸아이는 아직 외동이었고, 제주도로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말에 함께 올 만한 가족이 없었습니다. 다른 테이블은 여러 가족들끼리, 아니면 엄마끼리 아이들을 풀어놓고 느긋한 치맥 파티, 커피 타임을 ‘하하 호호’ 이어가는 모습입니다. 저와 남편만이 아이와 함께 미끄럼틀, 징검다리 등을 전전하며 노동의 현장의 한가운데였습니다.      


 “내가 비눗방울 만들어 줄게. 나랑 놀자! 제발.”

 설상가상으로 딸아이는 다른 친구들과 놀고 싶어 했습니다. 형제자매, 친구들, 이미 무리가 존재했기에 아이들은 낯선 아이를 잘 안 끼워주는 모양이었습니다. 딸내미는 큰 비눗방울 만드는 장난감을 사달라고 합니다. 뭐에 쓰는지 보니 다른 친구들의 환심을 사려고 그랬던 모양입니다. 친구들에게 ‘이것 봐라!’ 하며 땀을 뻘뻘 흘려가며 비눗방울을 만들어줬지만, 친구들은 잠시 머물 뿐, 이내 관심을 거두고 딸아이만 남겨두고 홀랑 가버립니다. 괜스레 혼자 남겨진 딸아이의 뒷모습을 보니 마음에 멍이 번졌습니다. 슬그머니 심장이 허물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 그럼 오늘은 샛도리물 쪽으로 가볼까.”

 결국 거창한 나들이 계획은 어물쩍거리다 실패하고 저녁 어스름 무렵 동네 산책을 나섰습니다. 검은 모래로 유명한 삼양해수욕장 쪽으로 향해봅니다. 해수욕장 개장이 임박한 시점, 아이들의 차림새가 벌써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UV를 완벽하게 가려주는 모자와 래시가드. 뜨거운 여름날, 완벽한 TPO입니다. 돗자리 깔고 모래놀이 세트를 떡하니 끼고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세계에 심취해 있습니다.


 우리 딸도 질 수 없습니다. 급하게 어린이집에서 선물로 받아온 모래놀이 세트로 판을 벌였습니다. 남편과 저도 옆에 앉아봅니다. 뭐가 재밌는지 키즈카페의 ‘편백나무 zone’마냥 검은 모래로 뒤적뒤적 주방 놀이도 하고, 공사 놀이도 합니다.      


 그러다 옆에 있던 한 친구가 바다 쪽으로 달려듭니다. 펭귄무리 중 한 마리가 뛰어들면 나머지가 다 함께 우르르 바다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신 적 있나요? 딱 그 장면이 재현됩니다. 딸아이도 갑자기 홀린 듯이 함께 물로 뛰어듭니다. 생각해 보니 이날은 딸아이가 처음으로 바닷물에 들어간 날입니다. 처음엔 둘이 바닷물을 찰박찰박, 튀기면서 물놀이합니다. 서로에게 물방울이 닿기만 해도 까르르입니다. 이내 다른 친구가 합류하고 서로 얽어집니다. 누구의 것이랄 것 없이 튜브를 나눠 타며 놉니다.      



 노을이 익어가자, 한참을 놀던 아이들이 하나, 둘씩 부모님들의 부름에 자리를 떠났습니다. 우리 아이도 씻으려고 샛도리물 쪽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샛도리물’은 삼양1동에서 솟아오르는 용천수로 조성된 터로써, 굿을 할 때 깨끗한 물을 뿌리며 나쁜 기운과 잡귀인 새(까마귀)를 쫓아내는 ‘샛다림(새 쫓음)’을 하기 위해 이 물을 길어 쓴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여기 오니 큰아이들이 더 많습니다. 바글바글 그 자체입니다. 돌담으로 동그랗게 조성된 샛도리물터를 굽어보니, 바닥이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맑습니다. 바닷물이 아니라 지하수라는데 발가락뼈가 시릴 정도로 차가워 들어가는 아이마다 “앗! 차가” 야단법석이었습니다. ‘까르륵’ 샛도리물 입구에 꽃처럼 소복하게 뭉쳐서 함박웃음으로 아이들이 서로를 전염시키고 있었습니다. 큰아이들이 솔선수범하여 작은 아이들에게 깊은 자리와, 얕은 곳을 짚어줍니다. 오늘은 자연이 만들어 낸 풍광이 부린 마법인지, 샛도리물의 영험함인지 너, 나, 무리할 것 없이 친구가 되었습니다.      



 괜히 흐뭇한 마음이 되어 바로 앞에 카페에서 커피를 사서와 한동안 딸아이가 노는 모습을 눈에 담아 봅니다. 고개 들어보니 산책을 시작한 지 2시간이 넘었네요. 

파랑에서, 주황, 주황에서 보라로, 구름의 황홀한 빛깔들이 지상으로 번집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샛도리물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여전히 소복하게 쌓여있습니다. 


 오늘, 여기, 자연산 키즈카페에서 잘 놀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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