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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뭄씨 Jul 06. 2023

고독이 몸부림치는 건배사

직장생활 비(悲)스토리

  “자, 돌아가면서 신입들 건배사 한번 해볼까!”

  몰랐습니다. ‘건배사’가 이토록 사람을 사무치게 외롭게 할 줄은. 그때 제 테이블 주변으로는 향후 부서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인사차장님도 계셨지만, 함께 방을 쓰는 여동기도 있었고, 경험이 많아 듬직하고 말이 잘 통하는 동기오빠도 있었습니다. 안면근육에 당황스러움을 잔뜩 묻혀두고 여자동기를 바라보았습니다.


  “대충 하면 되지, 어차피 전부 꽐라라 기억도 못해”

  아참, 얘는 천성적으로 유머감각과 센스를 물고 태어난 아이였습니다. 동기오빠 쪽은 말해 뭐 합니까, 3년간 업계 1위 회계법인에서 굴러먹은 놈으로 건배사는 줄줄이 컬렉션처럼 소장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온전히 저 혼자 감당해야 할 ‘건배사’의 책임감이 밀려왔습니다. 무엇보다 이 회식자리, 즐겁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웃음으로 흥청거리며 떠들썩하게 말을 섞어대지만, 혼자 동떨어져 관찰자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이불 킥 할 것 말도 안 되는 소음을 저는 건배사랍시고 뱉어낸 다음, 민망함에 잘 먹지도 못하는 소주를 퍼부어 마셔댔습니다. 결말은, 호텔 연수원 회전문 옆 토사물.




  사실, 저처럼 외로움에 내성이 강한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웬만한 외로움 바이러스로는 제 면역력을 뚫고 내면으로 침투할 수 없습니다. 상위 1% 외로움 면역력의 비결은 바로 이른 사춘기 무렵부터 지속적으로 노출시켜 온 ‘혼자의 경험’ 일 것입니다. 아주 어릴 땐 전통시장에서 자라며 들썩하게 유년기를 보냈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IMF와 맞물려 상권이 기울기시작하자 또래 아이들이 하나, 둘 동네를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12살 무렵이 되자 시장골목에 ‘초딩’은 제가 ‘원 앤 온리(One and Only).’


  아마 그 무렵부터 주거양식 트렌드가 크게 바뀌었던 탓도 있을 것입니다. 마당 깊은 ‘주택’에서, 층고 높은 ‘아파트’로. 여하튼, 일단 하교하면 부모님이 오시는 밤 11시까지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서, 새로 생긴 내 방 안에서, 혼자 틀어박혀 시간을 가득 채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의 질감은 고독이 아니라 오히려 낭만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내 취향과 의지로만 온전히 채우는 파라다이스 같은 것. ‘밍크’, ‘파티’, ‘윙크’ 같은 순정만화 잡지가 곁에 있고, 바쁜 부모님의 죄책감이 엿보이는 거대한 책장이 방 한편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었고, 박찬호 아저씨가 광고하던 삼보컴퓨터를 켜면 아이돌오빠들과 함께 할 수 있었으며, TV장 위엔 비디오가게 VIP카드. 아주 가끔 혼자 밥을 챙겨 먹을 때 헛헛함이 올라오긴 했지만 이내 익숙해졌습니다. 급기야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온다고 조를 때면 급하게 약속을 잡기 바빴습니다.

 바로,

‘나와의 약속’



 상황이 이러하니 나에게 외로움은 역설적이게도 언제나, 항상 ‘함께’의 순간에 찾아옵니다. 

 특히 첫 직장에서 겪었던 회식자리는 내면의 우울감이 휘몰아치는 쓰나미의 현장이었습니다. 20대 후반의 내가 마주하는 부장님, 팀장님은 지나치게 엘리트적이었습니다. 사회생활 초보인 나는 수저를 세팅할 때 티슈를 깔까 말까, 저 세상 큐트함을 뽐내는 앞치마를 과연 부장님께도 드릴까 말까, 질문에 어디까지 솔직해야 할까 이 모든 게 너무 어려웠습니다. 모든 순간 나의 행동을 사회생활 만렙 선배들이 굽어보며 평가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몇 번 서툴고, 재미없는 말을 내뱉어 주변사람들의 싸늘함을 학습하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회식자리에서 입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저 조용한 리액션 봇, 차량 대시보드 장식용 ‘끄덕끄덕’ 강아지 장난감이 되어 버텨내는 시간이었습니다. 할 말이 없으니 주는 술만 먹어댔네요. 알코올 분해능력 제로인 간 때문에 집에 돌아와 변기와 씨름하고 난 뒤 침대에 누우면, 내 마음은 한없이 침잠해 지구 가운데 마그마 영역까지 도달했다가 왔습니다.




  근데 말이지요, 작사가 김이나는 <보통의 언어들>에서 라디오 DJ를 시작할 무렵 이렇게 청취자들에게 깊은 관계가 되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다고 해요.

  “우리는 서로를 실망시키는 데 두려움이 없는 사이가 됐으면 좋겠어요.”

  문장을 보는 순간 마음의 파장이 일어 활자를 몇 번이나 더듬었습니다.


  ‘나는 내 못남을 여러 사람에게 보이는 게 두려워 꽁꽁 싸매고 있었구나’

  그렇습니다, 온전히 내 채취로 가득 채우던 혼자만의 시간보다 오히려 여럿이서 함께하는 회식 때 더 나를 숨겨두었던 겁니다. 내 찌그러짐을 내어놓기 두려워, 나를 가둬뒀던 겁니다. 혼자. 왁자지껄 술이 익어가는 회식자리에서 문득 혼자인 것만 같던 우주적 공허함은 역시 취기가 아니었습니다. 외로움은 단지 물리적으로 함께하는 사람의 수가 아니라 심정적으로 소통할 사람의 수에 따라 발현이 되는 겁니다.


 요즘, 제 회식기피증후군은 상태가 아주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우선 나이가 들었고, 출산이란 ‘부끄러움’의 역치 수준을 뚫는 경험을 한차례 하고 난 이후 회식은 한결 편해졌습니다. 아마도, 이젠 과도하게 눈치를 보거나 섞여 들 수 없을 것 같다는 공포에 나를 가둬두진 않습니다. 내 유머가 재미없어도 뱉어버리고 ‘집에서 샤워하다가 웃지나 마세요!’ 해버리면 그만이니까요.

 제 사연에 다들 관심 없더라도 술기운을 빌려 회사 동료들에게 서운했던 일화나, 힘들다고 투정도 부려봅니다. 솔직한 감정의 맨살을 드러낸 게 후회된다면?

술 한잔 원샷하고 ‘사랑합니다’, ‘부장님 최고!’ 몇 번 외쳐주면 다 까먹으시더라고요. 물론 이직한 직후 나이대가 많이 어려진 동기들(90년대 중반) 사이에서  ‘잼미니’, ‘어쩔티비’를 들었을 때 잠깐 고독함이 올라오긴 했지만.

 흥, ‘하두리 얼짱각도 알아?’, ‘따봉이다, 임마!’ 하면 그만이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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