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드뭄씨 Jul 07. 2023

1만 8천 신神들이 사는 섬, 제주

여행지에서 신화를 만나는 재미

 제주에는 1만 8천이나 되는 신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등장인물로만 따지면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보다 더 많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신들 이야기의 개성이 어찌나 강한지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습니다. 온갖 애욕이 들끓고, 피 튀기고 구성집니다. 단군신화 같은 신성함과 단정한 맛은 좀 떨어지지만, 서사가 꿈틀대고, 생동하는 맛이 살아있습니다. 창의적이고 질펀한 사연을 듣고 있자면 그 옛날 제주도민들의 재치와 예술성에 절로 감탄하게 됩니다.      


 처음엔 허은실 시인의 <내일 쓰는 일기> 속에서 영등할망 설화를 접했습니다. 음력 2월 그러니까 3월 초 무렵, 혹독한 꽃샘추위가 한창일 때, 제주도 사람들은 바람신 영등할망이 제주도에 유랑을 왔다고 생각한답니다. 영등할망이 머무는 보름 동안 변덕스러운 날씨와 혹독한 추위가 이어진다고요. 하지만 영등할망이 심술궂고 고약한 것만은 아닙니다. 할망은 한라산도 보고, 꽃구경도 하면서 밭에는 오곡, 바다에는 소라, 전복, 미역 등등 해초의 씨를 뿌리고 다닌다고 합니다. 그래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의 초입이 되면 열등할망이 떠나는 길 잘 가시고 무사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영등굿 송별제를 한판 구성지게 벌입니다. 이는 국가유형문화제로도 지정되어 있기도 하고요. 이 모습을 보고 허은실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살을 파고드는 매운바람에 이런 선의를 달아서 축제를 만든 마음이 애틋하다.” 하고요.     


돌문화공원


 주말, 남편과 딸아이랑 돌문화공원에 간 적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단벌의 귀여운 거녀(巨女), 설문대할망과 만났습니다. 너르고 멋지게 꾸며진 돌문화공원 곳곳에는 이 설문대할망 설화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옆에 관광하러 오신 분들이 초청한 해설사 아저씨에게 귀동냥하며 구경했는데 그만 흠뻑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뿌웅!’

 요 할망은 어찌나 덩치가 큰지 방귀 한방에 천지가 창조되고 불기둥이 하늘로 솟으며 제주도가 생겼습니다. 할망은 아차차 싶어서 불을 끈다고 바다 흙을 급하게 치마폭에 담아 옮기면서 한라산이 생겼고, 헤진 치마의 구멍 사이로 흙들이 흘러내리면서 수많은 오름이 생겼다고 합니다. 탑라의 백성들은 이 설문대할망의 살 위에 밭을 갈았고, 할망의 몸에 난 털이 사려니, 곶자왈 같은 숲이 되었다 했습니다.      


 또, 할망은 덩치가 커서 옷을 제대로 입을 수 없었는데, 사람들이 사랑하는 할망의 속옷을 지어준다고 명주를 100통 넘게 썼는데도 속옷 하나를 못 지어줬다고 합니다. 속옷이 구멍이 뻥 뚫려 할망은 부끄러움에 차마 다리를 펼 수 없었고, 그 때문에 제주도가 육지와 이어지지 못하고 섬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는 너무 귀여워 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또, 공원을 돌다 보면 설문대할망의 자식, 오백 명이나 낳았다는데 이 오백장군을 형상화한 바위와 이야기가 재밌었습니다. 눈물 없이  못 듣는 잔혹동화인데 혹시 돌문화공원에 들르시는 분들은 꼭 확인하면 좋겠습니다. 스포일러 예방 차 저는 함구하도록 하겠습니다.      


돌문화공원




 이외에도 제주 곳곳에는 이야기를 품고 있는 흥미로운 곳이 많습니다. 공항 근처에 위치한 제주의 센트럴파크(가 될) ‘삼성혈’은 탐라국을 세웠다는 3개의 성씨를 가진 삼선인(고씨, 양씨, 부씨)이 솟아오른 구멍이 있는 곳입니다. 직접 가보니 진짜 볼링공처럼 3개의 구멍이 땅에 박혀있었습니다. 여기서는 매년 도지사가 초헌관(初獻官: 첫 번째 술잔을 올리는 제관)이 되어 삼선인에게 제례나 봉향도 한다고 합니 또, 수국의 천국 혼인지는 삼선인과 삼공주의 합동결혼식이 있었다는 신화 속 연못입니다. 한쪽에는 결혼식 이후에 신방을 차렸다는 신방굴도 있었습니다.      


삼성혈


 이렇게 일상에 신화와 전설을 하나씩 도장 깨듯 만나다 보니, 호기심이 뻗쳐 최근엔 서적도 구매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귀포에 있는 제주신화전설탐방로 ‘신나락 만나락’은 굳이 시간 내서 다녀오기도 하고요.    

 

 성격이 더러워 삼실할미와 3판 대결에 패배해 저승으로 밀려난 '구삼승할망',

 타고난 돈복이 있어서 가는 곳마다 부자를 만들어주는 '가믄장애기', 

 문도령에게 반해 남장까지 한 말괄량이 농업의신 '자청비'의 러브스토리까지……. 


 처음엔 그저 재미였지만 이 매력적인 이야기는 제 속에서 첫 단편소설 <푸른거북의 눈(가제)>을 지어내기에 이르렀네요. 지금은 혼인지와 관련된 두 번째 이야기도 써내려가는 중입니다.      


혼인지


 예전에 보았던 TV 만화 ‘은비, 까비’, ‘배추도사, 무도사’ 이야기처럼, 요즘 딸아이와 신기하고 재밌는 이야기를 조잘대는 재미가 있습니다. 또 이야기와 함께 주말 나들이를 하다 보니 그 공간이 입체적으로 보이고,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아이에게도 이런 설화를 통해 선조들이 가진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조각이나마 스며들었으면 합니다. 신들의 흥성거림이 아이의 마음속에 흔적으로 남기를 하고요. 이것도 어쩌면 제주에서 유년을 보내는 특권이 될 수도 있겠지요.그치만, 혼자만 알기에 제주신화의 재미는 너무나 쏠쏠합니다. 

 시간이 되시면 제주에 오는 더 많은 사람이 1만 8천 신과 함께하는 시간의 매력을 알아가셨으면 합니다. : )


제주신화전설탐방로 '신나락 만나락'


매거진의 이전글 여긴 100% 자연산 키즈카페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