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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미쓴 일단 해봐 Dec 04. 2024

계획이 실패했지만 좋은 점

결과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시간

은밀한 은퇴계획이 중단되고 나니 목표를 잃은 것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신축 건물은 완성했지만

높은 금리와 전세 소멸, 수익성 확보의 실패로 수익은커녕

빈약한 자기자본 탓에 대출금액은 크게 늘어났고,

월급으로 이자를 겨우 납부해 나가고 있다.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 조기은퇴 계획의 핵심은 신축이었는데

왜 신축을 시작했을까, 자책을 많이 했다.

과거는 바꿀 수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응당 가장 현명한 길임을 알면서도

후회와 죄책감의 바닥을 찍어야

과거에서 나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반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은퇴계획의 좌절이라는 결과를 아직도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다.

마음은 아프지만 그 시간을 인정해주고 싶다.

은퇴에 실패했지만 좋은 점들을 생각해 보았다.


사진: Unsplash의Towfiqu barbhuiya


첫째, 어쨌든 조금은 앞으로 나아갔다.

투자, 신축, 부동산 등 내가 할 수 있고 해보고 싶었던 일들에 도전했고

소중한 경험과 지식이 남았다.


둘째, 그저 직장인이 아닌 나를 경험했다.

직장에서는 어려운 일이 풀리지 않을 때에는 하는 데까지 해보고 포기하거나

상사에게 보고하고 마무리를 했다.

개인사업자가 되어 거래처와 고객을 관리하고

세무에 신경 써가며 반복되는 자금 문제를 해결해 가는 시간은

내가 살고 있는 온실의 창문들을 처음으로 아주 활짝 열어보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셋째, 나의 은퇴계획이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한 가지만 되물으면 답이 나온다.

내 은퇴계획의 핵심은 원룸 신축을 통한 월 소득 확보였는데,

만약 거의 모든 임차인이 전세를 기피하는 전세절벽이 오기 1년 전에 신축을 완료했다면?


적어도 4명 이상의 전세임차인들의 보증금 반환 요구에 직면했을 것이고

그만한 현금이 없었을 나는..

아마 말 그대로 망했을 것이다.

그 외의 다른 계획들 역시 책과 유튜브에 의존한 지식들로 얼기설기 만들어졌으므로

시간이 가면서 점점 어려운 결과를 가져왔을 확률이 높다.


사진: Unsplash의Towfiqu barbhuiya


넷째,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무난한 하루에 감사하게 되었다.

은퇴를 꿈꾸던 마음에는

지금의 직장에 대한 불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소한 직장이라는 안전한 곳에 머물고 있 동안에는

대출 한도가 나오지 않아 공사를 멈출뻔한 위기도 없고

사용승인이 지연되어 매월 수백만원씩 대출 원금이 늘어나는 공포도 없다.

시공사와의 반복된 밀고 당기기 속에 하자를 잡아가는 과정도,

하루라도 빨리 임차인을 맞추기 위해 갖은 애를 쓰며 마음을 졸이는 시간도 없다.

이런 일들은 오직 내 사업을 할 때에만 발생한다.


회사에서 내게 부여한 직급과 지위 안에서  그저 그런 하루를 보내더라도

내 몫을 하고 있으면 매월 20일에 꼬박꼬박 월급이 주어지는 일상이

어쩌면 정말 감사한 일이고,

지금까지의 나는 그런 온실에 살아왔기에

큰 부침없이 안전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동안의 안전함에 감사해야한다.




나의 은퇴계획은 나만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직장에서의 도피를 위한 막연한 희망이었을까?


어쨌든 은퇴계획이 실패한 사실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사진: Unsplash의Kelly Kiernan, Unsplash의Nicolas Cool


한편으로는


나에게 두 번째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용기가

다시 찾아와 주기를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은퇴의 좌절에서 발견한 긍정적인 부분들도 이유가 되겠지만

나에게도 계획이 있었을 때

부지런히, 생기 있게 하루를 보내며

피곤해도 희망을 가지던 시간이, 그 에너지가 너무 그리워서 말이다.



표지사진: UnsplashSixties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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