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하게 깨닫기
회사가 싫은 이유를 줄줄이 읊을 수 있었다.
수직적인 조직문화라서, 무례한 사람들이 있어서, 보상이 불공평해서, 일에 의미가 없어서 등등
그래서 나는 회사가 싫다는 결론을 내렸고
달콤한 조기은퇴를 나만의 목표로 세웠다.
조기은퇴에 성공한 사람들처럼 되고 싶었다.
부자는 아니더라도
월급만큼 현금흐름을 만들고 은퇴하리라 결심했다.
20년 가까운 직장생활동안 모은 작고 소중한 종잣돈을 불린 후에
최대한 잃지 않거나 유지하면서도
매월 생활비가 나오게 하는 방법을 찾아 헤맸다.
지방의 아파트를 매수하기도 하고
분양권, 입주권, 오피스텔, 상가, 지식산업센터, 고시원, 태양광, 배당주까지 공부하거나 시도했다.
결국 원룸 건물의 신축까지 도전했고
투자도 신축도 일단 지금으로서는 실패한 상황이다.
여기까지 꼬박 4년이 걸렸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되고
투자 손실과 역전세, 무거운 대출이자가 이어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회사가 주는 월급이 나의 생명줄이었음을.
절실히, 그리고 처절하게 깨닫게 되었다.
두 번째, 나의 선택.
조기은퇴를 계획할 때에는
주로 경제적인 부분의 비중이 크기는 했지만
다양한 측면을 준비해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물음에 대한 답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은퇴를 하면 무엇이 하고 싶은가?" 였다.
아무리 스스로에게 그 질문을 던져도
피상적인 휴식, 여행, 산책.. 이런 것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아내에게 토로한 적이 있다.
그런데 아내의 답이 놀라웠다.
"자기는 그동안 하고 싶은대로 많이 하고 살아온 것 같은데? ㅎㅎ"
다른 길을 가보고 싶다며 비영리단체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기관이 어려워져 월급이 끊기는 시기를 겪은 후에는
안정적인 생활을 희망하며 기업의 사회공헌파트로 이직을 했다.
두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새로운 길을 가보고 싶어 지금의 회사로 옮겨왔다.
그러고 보면 아내의 말도 맞다.
선택의 순간마다 스스로 방향을 선택해 왔고
지금의 회사는 그 결과다.
회사가 싫다면 그 안에는 내 선택도 포함되고
회사가 내게 해준 고마운 부분(꾸준한 월급과 같은)
역시 충분히 인정되어야 한다.
은퇴 후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뚜렷한 답을 내지 못했던 것은
마음속 무언가를 향한 열망보다
현재를 벗어나고 싶다는 회피가 더 컸기 때문이 아닐까
회사의 긍정적인 부분이 온전히 내 마음속에서 인정된 상태에서
지난 선택의 순간들이 켜켜이 쌓아 올려진
그 시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올바른 은퇴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결국
회사를 벗어나고 싶었던
회사가 싫었던 이유들은 중요치 않다.
회사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이유만이 의미가 있다.
"내 마음이 원하는대로, 내가 선택한대로 살고 싶어서"
표지사진: Unsplash의Benjamin Chi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