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⑦ 이동거리 1500Km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는 땅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위험한 만남의 결말은...
저 멀리서 가죽재킷을 입은 덩치 큰 남성이 부다다다 소리를 내며 할리데이비슨 바이크를 타고 우리 앞으로 왔다. 안 그래도 겁을 먹고 있었는데, 가죽옷에 덩치도 큰 데다 삭발까지 한 남성이 다가오니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긴장됐다.
그는 잠시 상황을 보더니 부랑자들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나는 ‘어떻게 하려하는 거지, 저 사람들 대장인가?’ 하는 별별 생각을 다 했고, 숨까지 차올랐다. 그런데 그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부랑자들을 ‘퍽퍽’ 소리가 날 정도로 험하게 밀어붙이더니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악당 두목 같았던 그는 부랑자들을 쫒아내고 우리에게 다가와 친절하게 인사했다. 너무 긴장하고 있어서였는지 맥이 풀리면서 휘청 거릴 정도였다. 그는 이 동네에서 바이크를 타는 라이더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가드’ 역할도 한다고 덧붙였다.
스마트폰 번역기에 써서 보여준 것이라 ‘가드’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이곳은 위험하다”며 안전한 숙소를 알아봐준다고 했다. 우리는 ‘안전하고 저렴한’ 숙소를 강조했고, 그는 웃으며 어딘가에 전화하더니 자기를 따라오라며 바이크에 올랐다.
에어컨이 없는 러시아의 숙소
바이크 뒤로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저 버스정류장 뒷 쪽은 야외 화장실을 보는 듯 배설물이 가득하다.잠시 후 어느 숙소 앞에 도착했다. 숙소 둘레로 담장이 있고, 정문은 튼튼한 철문이었다. 3층짜리 건물로 1층은 넓은 홀과 방 몇 개, 2~3층은 전부 객실인 여관이었다. 냄새도 나지 않고 깔끔했다.
그는 이곳이 벨로고르스크에서 가장 안전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카운터에는 아이들과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있었는데, 남은 방이 딱 두 개 있다고 했다. 하나는 화장실이 없는 대신 800루블(한화 1만 3000원)이었고, 다른 방은 화장실이 있는 대신 900루블(1만 5000원)이었다.
돈을 아끼고 싶었던 우리는 ‘가위바위보’를 해서 지는 사람이 비싼 방을 쓰기로 했다. 화장실은, 옆방이니 그냥 들어가서 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나는 져서 비싼 방으로 가게 됐다.
짐을 풀고 술을 사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여행을 시작해서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먹는 것 같았다. 밥 대신 술을 먹은 때도 있을 정도였다. 일단 맥주가 굉장히 싸고 맛있었다. 보드카도 저렴해 맥주를 마시며 조금씩 같이 마시기에 괜찮았다.
근처에 있는 조그만 마켓에서 술과 먹을거리를 샀다. 오후에 무서운 일이 있었던 터라, 동네를 돌아다니지는 않고 장을 보자마자 곧바로 돌아왔다.
날이 흐려서인지 러시아답지 않게 습도가 굉장히 높아 씻었는데도 덥고 습했다. 숙소에 에어컨은 역시 없었다. 러시아에서 묵었던 숙소에 에어컨이 있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는데, 겨울이 아주 긴 반면 여름은 짧아서 에어컨이 딱히 필요 없기 때문인 것 같았다.
모기 때문에 창문을 열수도 없는 상태에서 맥주로 더위를 식혔다. 부채질을 하며 맥주를 빠르게 다 마시고 술에 취해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땀이 흐를 정도의 찝찝한 상태여서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참을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가, 땀범벅이 돼 새벽에 깨길 반복했다. 결국 입은 옷을 모두 벗어던진 채 겨우 다시 잠에 들었다.
불쾌한 가려움에 오프로드까지...
이동 중간에 찍은 사진. 간지러움만 빼면 최고의 기분이었다.잠을 제대로 못자서인지 비몽사몽하며 겨우 일어나 샤워하고 짐을 챙겨 숙소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등이 자꾸 가렵다. 캠핑할 때는 당연히 씻지 못해 그럴 수 있는데, 방금 샤워하고 나왔는데도 등이 자꾸 가려웠다. 바이크 슈트 때문에 등을 긁기가 힘들어 그냥 ‘모기에 물렸나 보다. 조금 있으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출발했다.
그러나 바이크를 타는 동안에도 등은 자꾸 가려웠다. 잠시 한 손으로 운전하며 등을 긁었더니 더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온몸을 비비적거리며 겨우 운전하다가 잠시 멈춰서 쉴 때마다 등을 긁었다. 어느새 손톱에는 피가 묻어났다. 미칠 것 같은 가려움이었다. 운전을 하기 힘들 정도였다. 모기에 물린 것보다 다섯 배 정도는 더 가려운 듯했다.
그래도 조금만 더 가보자 하며 겨우겨우 운전하고 있는데, 이제는 길이 문제다. 포트홀이 너무 많다. 아스팔트길이 아니라 오프로드로 느껴질 정도, 아니 오프로드보다 더 심하다.
움푹 파인 포트홀을 밟으면 앞바퀴가 빠지며 ‘딱’ 하는 소리가 들렸다. 충격에 핸들을 놓칠 정도였다. 속도를 조금 줄이고 포트홀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가려움에 온몸을 비비적거리며 겨우 가다가 길가에 있는 식당을 발견했다. 트럭 운전사들을 위해 운영하는 식당이었는데, 한 쪽엔 편의점도 있었다.
슬슬 배가 고픈 우리는 그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다행히 메뉴판에 음식 사진이 있어서 닭다리가 들어있는 볶음밥을 주문했다. 맛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특유의 향신료 맛이 조금 거슬렸지만 음식을 가릴 처지도 아니었고, 간만에 먹는 밥이라 아주 맛있었다.
'뽈룹'이라고 부르는 러시아식 볶음밥. 오랜만에 먹는 제대로 된 음식인데다 닭다리까지 더해 맛이 일품이었다.식사를 끝내고 옆에 있는 편의점으로 가서 아이스크림과 체 게바라가 그려져 있는 라이터를 샀다. 한국에서 떠날 때 라이터를 잔뜩 가져왔는데, 여기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첫 해외여행인지라 가는 곳이 마치 문명과 동떨어진 오지일 거라 생각하고 이것저것 많은 물건을 챙겨왔는데,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모두 구할 수 있다. 심지어 ‘made in korea’가 쓰여 있는 ‘때 타월’도 쉽게 구할 수 있을 정도다.
베드버그
다시 출발해 한참을 달리다 라이딩을 마무리하고 길가 근처 공터에서 캠핑하기로 했다. 등이 너무 간지러워 자리를 잡자마자 바이크 슈트와 옷을 벗고 일행에게 등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더니, 맙소사. 피부병이라도 걸린 듯 상태가 좋지 않았다.
베드버그에 물린 자국. 베드버그의 원래 뜻은 침대를 뜻하는 Bed가 아니라 나쁜(Bad)벌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불쾌하고 힘들었다.한 명은 ‘베드버그’에 물린 것이라 했다. 주로 침대에서 살아 'Bed'라는 이름이 붙여진 빈대의 한 종류라는데, 지난 밤 숙소에서 물린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도 손목을 몇 방 정도씩 물렸지만, 너무 더워 옷을 다 벗고 잤던 나는 등뿐만 아니라 어깨와 가슴까지 물렸다.
긁으면 더 안 좋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참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고, 피가 날 정도로 벅벅 긁어댔지만 가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한국에서 가져온 비상약 통을 열었다.
그 안에는 예전에 학생회에서 농촌활동을 갈 때 준비해뒀던 여러 약품이 있었는데, 그중 '멘소래담'이 눈에 들어왔다. 당장 일행을 불러 등에 발라달라고 했다. 등에 상처가 있어서 따가울 텐데 괜찮겠냐고 물었지만, 상관없다며 얼른 발라달라고 부탁했다. 멘소래담을 바르고 잠시 후, 등이 조금 따갑나 싶더니 금세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등이 다 타버리는 고통이 찾아왔다.
어떻게 해도 따가움이 나아지지 않아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공터를 몇 바퀴 쯤 전력질주 하고 나서야 겨우 진정하고 나서 저녁을 먹었다. 메뉴는 역시 라면죽. 러시아 컵라면 한 종류만 계속 먹다보니 너무 질려서 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스프를 넣었다.
빗속 텐트에 밀려온 그리움
밥을 먹고 불을 피우며 쉬고 있는데, 해가 질 때쯤 되자 하늘에 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졌다. 급하게 텐트 위로 플라이를 덮었지만,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텐트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빗줄기는 굵어졌고, 바람도 점점 거세졌다. ‘번쩍’ 번개가 치더니 땅이 울릴 정도로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잠들기 전, 하늘이 심상치 않다. 천둥ㆍ번개에 강풍과 함께 비까지 떨어진다.군대를 전역하고 친구들과 해남까지 자전거여행을 갔을 때 샀던 오래된 4만 원짜리 텐트는 방수기능이 있을 리 없고, 그렇다고 이 빗속에서 다른 곳으로 갈 체력도 상황도 아니어서 한참을 고민했다.
그래도 플라이 덕분에 비가 안으로 마구 들어오지는 않아 ‘금방 그치겠지’ 바라며 가만히 누워있었다. 저녁과 함께 먹은 술로 취기가 조금 오르고, 텐트를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누워있으니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문득 그리움이 밀려왔다.
보고 싶은 사람이 너무나 많은데 돌아가려면 아직 한참 남았고, 나는 어딘지도 모를 곳에서 캠핑을 하고 있으니 만날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았기에 사람들이 더욱 그리웠다.
생각할수록 슬퍼지려해 고개를 저어 털어내고 핸드폰 GPS를 봤다. 어느덧 꽤 많은 거리를 달렸다. 블라디보스토크로부터 1500km가 넘는 거리를 며칠 만에 달렸다. 이 속도라면 금방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운 사람들을 곧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돌아가서 다시 만날 날을 꿈꾸며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에 들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벨로고르스크까지의 이동거리.자투리 여행 정보 07. 베드버그(bed bug)
베드버그는 한국말로 빈대다. 깨끗해진 주거환경 덕에 이제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곤충이지만,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심심치 않게 물리는 아주 고약한 벌레다.
불쾌한 간지러움과 함께 욱신거리고 열도 난다. 모기에 물린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이다. 유럽 등을 여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베드버그에 물려 여행이고 뭐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청결하지 않은 침구류 등에서 쉽게 발견되는 베드버그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불을 깨끗하게 빨고 햇빛에 잘 말려야한다.
여행 중 숙소에서 베드버그를 만났다면, 당장 뛰쳐나오길 권한다. 눈에 보이는 몇 마리만 잡았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침구에 닿았던 옷 등도 모두 빨고 햇빛에 말려 완전히 박멸해야한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숙소에 가서 침구에 뿌리는 여행용 베드버그 방지약도 있고, 물린 후 바르는 연고 등도 많이 판매한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해외여행을 하는, 특히 호스텔 등 저렴하고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숙소를 이용할 생각이라면 이 약들을 꼭 챙겨가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