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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Hej Mar 18. 2024

한국에 스웨덴 오피스 만들기

01. 서울은 넓고 건물은 많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서울.


일로 부대끼는 그곳이 뭐 그리 좋을까도 싶지만 나는 서울이 주는 단정하면서도 매일이 같지 않은 그 에너지를 참 좋아한다.

나무숲만큼  빌딩숲도 많고 한강도 소중하다. 골목골목마다 이야기가 가득하고 차분하게 거니는 그다음 길은 또 힙해져 버리는 그 변덕스러움이 좋다.

당연한 줄 알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안전함과, 좋은 취향과 안목을 가진 사람들이 늘 서울 낮과 밤을 가득 채우고 있다.



어떻게 이 도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게 서울은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면 따라다니는 평생의 본적지이자

12년 초/중/고 의무교육과 4년 대학 추억, 취업 준비 시절의 설움이 모두 담겨있는 장소이다.

처음 직장 생활은 신촌에서 시작했고 그 뒤로 회사가 이사를 가거나 내가 직장을 옮기기도 하면서 이태원에 적을 두었다.


뚜벅이 직장인인 내게 한강을 가로지르는 지하철 4호선 출퇴근 길은 매일 주어지는 선물 같다 생각했다.

피곤이 기본으로 깔린 내게 출근길 한강의 풍경은 잠에서 밥벌이 모드로 전환시켜 주기도 하고

눈물이 몽쳐지는 어느 날의 퇴근길에는 노을을 흘려주기도 했다.


그렇게 순간이 쌓이고 매일이 흘러 어느덧 나는 1n년차 회사원이다.

그리고 지금의 회사는 20XX 년 임차 계약이 만료됨에 따라 내게 이태원에 남을지, 다른 곳으로 옮길지 숙제와 동시에 책임을 주었다. 무서웠다.



서울 빌딩숲 안에서 내가 일할 곳을 구해오라니.



막막했다. 쉬운 것 같지만 임차인 입장에서 딱 맞는 예산 내 좋은 물건지는 구하기 힘들고, 반대로 임대인 입장에서도 얌전하고(?)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임차인은 만나기 어려운 법이다.


나의 경험과 에이전시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임대인이 선호하는 임차인이 있다.

점유 면적이 넓지만 점유 면적 당 인원은 많지 않은

장기 계약이 가능하고

사업이 안정적이어서 임차료가 밀리지 않고 중도 해지 등의 변수가 적은

워라밸이 좋아서 초과 근무에 따른 관리 인원 배정, 냉난방 추가 가동 등으로 별도의 논쟁이 없는

마지막으로 회사 브랜드 가치가 커서 임대인 포트폴리오에 도움이 되는


임차 만료 시점이 되면 많은 에이전시에서 새로운 후보지를 추천하는 전화와 메일이 왔다. 나보다 더 우리 회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정보력에 대단하다 생각이 들었다. 일로 시작된 인연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정말 프로다운 분 들 이어서 일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 면에서 많이 배우기도 했다.


에이전시에서 후보지를 추천할 때는 일반적으로 권역별로 구분하여 제안을 해주셨다. 서울에는 크게 3개의 오피스 권역이 있다.

CBD, Central Business District 종로 1번가. 전통을 기반에 둔 정치, 경제의 중심지

GBD, Gannam Business district 강남, 테헤란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 IT, 엔터, 외국계회사 요충

YBD, Yeouido Business District 금융 및 미디어허브


서울 오피스 권역 (출처: smatch)


우리 회사는 CBD와 GBD의 중간에 위치해 있었기에 YBD보다는 이 두 권역을 위주로 고려했다.


CBD는 전통의 강호답게 후보지도 다양하고, 임차인에게 제시하는 혜택도 컸다. 시설이 어마어마하게 좋은 만큼 비싼 곳도 많았다. 가고 싶었는데 예산은 부족했다. 이미 그런 건물에 들어가 있는 회사로 이직하고 싶었다, 하하.

GBD의 공실률은 거의 0에 수렴할 정도였다. 테크 기업들이 유례없는 호황을 맞으며 장기 임대 계약을 연이어 갔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아파왔다. 제안받은 후보지는 100여 곳을 넘어가고 있었다.



더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여기에 있고 싶었다. 나름 이유는 있었다.



먼저 기존 임대인과는 내가 알고 있는 시장 현황을 기초로 유리하게 협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시장은 늘 급격히 변했고 이 때문에 나는 계약 연장의 가능성이 많더라도 늘 에이전시의 정보에 귀를 열어두었다. 이 정보가 바로 협상의 기초가 되고, 나의 무기가 되었다. 투자와 의사 결정은 결국 숫자로 증명해야 되기 때문이다.


둘째,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적응하기까지의 시행착오가 없다.

임대차를 관리하는 주관 부서의 입장에서는 이전 결정에 따라 업무 부하가 0 or 100로 극명히 나뉜다.

사실 회사가 이전하게 되면 고려해야 하는 것들이 정말 많다. 법적으로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재정적으로는 안정적인지, 그뿐만 아니라 우리 임직원들의 주차가 수용 가능한 수준인지, 집에서 멀어지게 되는 경우 이동 거리에 따른 불만을 상쇄할 키가 있는지, 업무 환경 변화로 생기는 질문에 대한 응대 등등



매일매일 새로운 후보지가 생겼고 사라졌다. 머무는 게 낫다고 생각하면서도 새로운 곳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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