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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ily gl grim Jun 27. 2020

1. 아파트가 싫어서.

영혼까지 끌어모아 주택구입기

주류문화 아파트.


처음부터 싫다 좋다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서울에 살고 있고 아파트는 서울시민 70%가 거주하는 보편적인 주택의 형태.

 대부선택의 자유가 없다는 쪽에 가깝다. 내 경우엔 40년 가까운 인생 아파트보다 열악한 건축의 형태에 거주하느라 아파트를 싫어할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다.


 아파트는 하나의 카테고리다. 아파트라고 다 같진 않다. 토템처럼 솟아있는 초고층 주상복합부터 압구정 현대나 반포주공 같은 오래되고 비싼 곳도 있고 여의도와 한남동 혹은 동부이촌동 같은 상류층의 주거지역도 있지만 무너지기 직전의 이름 모를 저층 아파트 단지 혹은 단동짜리 나 홀로 아파트부터 이것도 아파트로 불러야 할까 싶은 작은 것도 있다. 하나로 뭉뚱그릴 수 없다.

하지만 어느새 규격화 아닌 규격화 부분도 있다.

이를테면 59 제곱과 84 제곱. 실내 층고 2.2~2.3m. 평균 15층 최대 35층. 방 3개. 화장실 2 개 같은 스펙인데 현재 한국 주거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숫자들이다.



 초본을 떼보면 3년 이상 거주한 집이 없을 정도로 이사를 자주 다녔다.


부모님은 50년대 후반에 태어나 한창 인정받고 부를 축적할 시기에 IMF를 맞으셨다. 엎친대 덮친다고 희귀병까지 앓으셨는 살아보겠다고 빚까지 내어 시작한 장사가 늘 그렇듯 사기를 당하고 마는 진부한 클리셰를 겪으시다 보니 내 집을 가질 기회를 갖지 못하셨다.

  분가하기 전까지 나는 부모님과 함께 이리저리 이사 다녔. 대개 계약 기간 2년마다 이사 다니다 보니 구축 아파트부터 신축빌라 오래된 다세대에 지하방 그리고 옥탑, 기숙사, 원룸, 고시원까지 대부분의 저가형 주거형태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59 제곱 방 3 화 2.


탄탄대로의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면 대부분 이 열악한 주거형태를 한둘 정도는 겪어보게 된다. 그런 주거환경에 몇 년 시달리다 보면 아파트가 주는 편리함과 쾌적함은 당연히 선호도 1순위에 놓이게 된다.

되려 빌라나 주상복합 오피스텔 같은 다른 주거형태도 최대한 아파트와 비슷한 분위기, 인테리어를 흉내 낸다. 주택도 상품이고 팔려야 하니까.


건물이 지어지면 보통 30~40년 정도는 그 자리에 버티며 제 몫을 하기 때문에 우리 세대가 겪은 주거형태는 거기서 거기다. 경험해 보지 못한 건축은 낯선 것이라 일생의 투자이자 지름인 주택구입에 낯선 모험 쉽지 않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새롭고 색다른 주거에 목마름을 가지고 있다. 다 똑같은 집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게 아닐까.

 해외 경험도 많아지고 인터넷과 다양한 매체들로 다른 주거형태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니 유독 한국에서 사랑받는 아파트 문화에 의문을 품게 될 수밖에 없다. 가구 구성원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고 주거가 담당하는 역할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독거자에게  59 제곱에 방 3과 화장실 2개의 구조가 강요되는 게 지금의 서울 아파트 문화다.





아파트는 주거문화의 종착역인가?


아파트는 좋은 점이 많다.

물론 그 시작은 엄청난 주택공급이 필요한 초기의 정권과 거대 건설사들이 해외의 사례를 그대로 들여와 대부분의 국민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지금까지 선호받는 건 아파트도 계속 발전해 왔고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친환경적이다. 세대 간 종횡으로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난방열을 서로 보완해 열효율이 높다.

높게 쌓기 때문에 직접도 높아서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 유리하다. 물론 그에 맞는 도시계획을 잘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집적도가 높을수록 출퇴근이나 이동거리가 짧아서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에도 유리하다.

 (물론 마냥 친환경적이라 하기엔 건축 시에 발생하는 다량의 이산화탄소는 콘크리트 건축물의 공통된 약점이다)


대규모의 건축물은 사후관리도 공동체가 하기 때문에 편리하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외부인의 차단 유리해 방범에도 좋은 편이다.


물론 날림 공사한 저가의 빌라, 다가구, 다세대주택, 반지하, 그리고 옥탑 같은 열악한 주택 대비 상대적으로 좋다는 이야기다.


권역으로 구분되는 우리나라 선거구 특성상 이름 있는 아파트 대단지는 선출직 정치인의 선거에 지대한 힘을 갖고 있어서 알게 모르게 많은 혜택을 받기도 한다. 아파트 공화국답게 정치와도 공공연히 영향을 주고 있다. 선출직 공무원들은 지역구의 재개발사업과 관리비 문제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한다.

팔천 세대만 세대 같은 엄청난 대단지는 지역구 전체의 의견을 대변하기도 한다.


인기가 있다 보니 찾는 이가 많아 언제든 시세에 따라 사고팔 수 있는 환금성도 뛰어나다. 같은 단지에 같은 평수면 다 똑같다 보니 보지도 않고 거래하는 일도 빈번하다.


게다가 요즘 짓는 아파트는 또 다르다. 새로운 뉴타운이 형성되면 구상단계부터 다양한 편의 시설을 계획하는데 단지 내에 좋은 교육시설, 병원, 도서관들이 생겨나고 치안에 대한 서비스 확충으로 비교적 안전하기까지 하다. 지하주차장 넉넉히 지어 땡볕이나 눈과 비 혹은 묻지 마 테러에 소중한 애마를 방치할 일도 없다. 지상으로는 차가 안 다니므로 단지 공원에서 아이들이나 변려동물을 안전하게 산책시킬 수도 있다.

때 되면 외벽 청소해주고 쓰레기도 깔끔하게 버릴 수 있고 매년 소독과 벌레 방제까지 해주는데 비교적 적은 관리비로 이 많은 서비스가 가능하다.


게다가 수많은 거대 건설사들이 아파트 주민만을 위한 커뮤니티 시설과 차별화된 서비스 예를 들면 조식 서비스나 야채 과일 배달 호텔 식사 서비스까지 제공하기 시작했다.


어떤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빈부격차가 심화되면서 중산층들이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이런 서비스를 누리는 것을 원한다고 한다. 아파트는 비슷한 계층이 끼리끼리 묶일 수 있는 폐쇄적인 커뮤니티를 가장 손쉽게 제공할 수 있다.


이러다 보니 한국에선 아파트를 도무지 선호하지 않을 수 없다.


- 아파트가 싫어서.(2)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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