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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야매 Jan 03. 2020

강호동과 진정성

출처: [ENG/CHN] �2-2봉 ※배고픔주의※ 지금 끼리러 갑니다 | 라끼남 풀버전, 유튜브 화면캡쳐


나는 강호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오버스러운 개그 스타일이 싫었다. 강호동보다는 깔끔하고 소탈한 진행의 유재석을 더 좋아했다. 1박 2일보다는 무한도전의 팬이었고, X맨에서는 강팀보단 유팀을 응원했으며, 쿵쿵따를 볼 땐 항상 당하기만 하는 유재석의 편이었다. 개그맨이 장래희망이던 어린 시절에도 나는 강호동을 싫어했다.


강호동 특유의 오버스러움이 나와 맞지 않았다. 오미자차 한 잔에 전기 충격이라도 받은 양 눈꺼풀을 파르르 떠는 것도, 수박 한 쪽 베어 물고 오만상 찌푸리며 오열하는 표정을 짓는 것도 지나치게 느껴졌다. 과장된 그의 몸짓이 가식으로 다가왔다. TV에 1박 2일이 나올때면 나는 주저 없이 채널을 돌렸다.


며칠 전 유튜브로 라면 끓여 먹는 강호동을 보았다. 그는 천왕봉에 홀로 올라 버너에 불을 붙이고 라면을 끓였다. 과장된 표정으로 라면 봉지를 뜯는 모습은 영락없는 예전의 그 강호동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오버스러운 장면에도 영상을 끄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그 모습에서 강호동의 진정성을 보았다.


강호동 혼자 라면을 끓여 먹는 그 프로그램은 TV로 5분 남짓밖에 송출되지 않는다. 전체 방송은 유튜브로만 볼 수 있다. 방송 환경 변화에 맞춰 등장한 신개념 예능이다. 최근 20여년간 TV 예능의 최강자로 군림해온 강호동이 단독 출연한다. TV 시대 아이콘의 유튜브 도전. 그로써도 파격적인 결정이었을 것이다.  


일전에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강호동이 블루투스 스피커를 틀 줄 몰라 쩔쩔매던 장면이 떠오른다. 스마트폰 다루는 것도 익숙하지 않다던 그가 TV 대신 유튜브에 방점을 둔 예능에 출연한다. 그는 프로그램에서 아직 유튜브를 잘 모른다고 고백한다. 익숙하던 TV 예능을 떠나 새 방식에 도전하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브라운관의 영광 속에 남을 수도 있었으나 그는 도전을 택했다. 세월 흘러 얼굴에 주름살이 보이지만 지리산을 오르는 그는 여전히 에너제틱하다. 직접 불을 키고 냄비에 물을 올려 라면을 끓인다. 라면에 감탄하는 그의 모습이 더는 가식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의 표정은 거짓이 아니다. 그가 자신의 직업에 바치는 진정성의 표현이다.


지리산을 오르며 그는 입버릇처럼 자신이 ‘프로’임을 강조한다. 농담 어조지만 그가 직업을 대하는 태도가 묻어있다. 사소한 것이라도 카메라 앞에서는 허투루하기를 꺼린다. 자신을 보고 있을 시청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표정은 과장되었지만 거짓은 아니었다.  


강호동이 한때 천하장사였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린다. 씨름계 정상에 섰던 그는 방송계에서도 정상을 밟았다. 기어코 지리산 정상을 오르는 그의 모습을 유튜브로 지켜보며 나는 그 이유를 알 것만도 같았다. 라면 면발 뒷 편 강호동의 오바스런 표정에서 나는 진정성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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