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의 후유증은,
공해로 찌든 도시를 달리자 나타나기 시작했다.
맑은 자연의 공기가 이내 그리워졌다.
하루밖에 머물지 못했던 그곳이,
돌아온 지 하루 만에 그리웠다.
노을이 지는 저녁,
지는 해가 구름을 분홍색으로 물들일 즈음,
라디오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이 나왔다.
다니엘 바렌보임과 마에스트로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협연이었다.
한참 젊은 피아니스트 바렌보임과 한참 후에 카라얀에 이어 베를린필에 입성할 아바도,
두 거장의 젊은 시절, 아름다운 만남이었다.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함께 시작되는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20대의 젊은 피아니스트의 연주에선, '지휘자'의 모습이 느껴지는 것 같았고,
(실제로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지휘자'의 면모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줄리어드의 명교수였던 딜레이 도로시의 지도를 받던 정경화,
당시 정경화의 연주에 반주하던 정명훈을 두고 딜레이 도로시는
"저기 마에스트로가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바도의 지휘는 그의 성품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주었다.
찬찬히, 꾸밈없이 소박하게 그려지는 그의 템포는,
결국 음악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베토벤을 들으며 순환도로를 달리자, 이내 하늘은 알프스의 하늘이 되어있었다.
그곳에서 보았던 그 청명한 열린 하늘과 구름처럼,
도시의 옅은 하늘색과 분홍색을 담은 구름들은 알프스의 하늘처럼 변해 있었다.
그랬다.
어느 하늘이 아름답지 않고, 또 어느 구름이 아니 예쁘겠는가.
내가 어디에 있음보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가에 따라,
하늘은 늘 내게 아름다움을 선사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그렇게 베토벤의 음악과 함께,
나는 도시에서, 알프스의 하늘을 보며 달렸다.
베토벤에게 찬사를,
아바도와 바렌보임에게 감사를...
pa
웬만하면 다 찾아지는 유튜브에서,
아바도와 바렌보임의 베토벤 5번 협주곡의 연주실황은 찾을 수 없었다.
ps 2
스위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베토벤과 한 피아니스트의 영화 때문이었다.
자세히 보면, 영화 속의 산책로는 '니체'가 걸었던 실바플라나 호수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나는 베토벤이 산책한 곳으로 착각했고,
영화 속에 흘렀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0번 3악장 때문에, 무척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
실바프라나엔 가보지 못했지만,
또 어찌 된 영문인지, 엥겔베르그라는 '천사의 마을'만 알게 되었다.
코로나 이후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한국에서 피아노 리사이틀을 갖는다.
당시 공연 레퍼토리 안에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0번이 포함되어 있었다.
마에스트로의 '욕심'을 알 것 같았다.
한 번쯤은 꼭 쳐보고 싶은 곡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32개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중 30번째인 이곡, 그중에서도 3악장의 서두는,
평생을 불태운 한 인간이 담담하게 인생의 황혼 속으로 걸어가는 느낌을 준다.
마치 마지막까지 다 타오른 장작이,
불길을 거두고,
붉은빛을 안으로 머금으며 숯으로 변해가는 모습 같았다.
회한도, 후회도 없는,
늘 뒷짐을 지고 산책을 하는 베토벤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면 하늘이 스위스가 되고,
피아노 소나타를 들으며 눈을 감으면,
난 엥겔베르그 어딘가에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62U39p1GMc
ps 3
아름다운 풍경에 아름다운 음악을 수놓았다.
스위스에 가고 싶게 만드는 영화.
https://bottonsalam.tistory.com/entry/%ED%94%BC%EC%95%84%EB%8B%88%EC%8A%A4%ED%8A%B8%EC%9D%98-%EB%A7%88%EC%A7%80%EB%A7%89-%EC%9D%B8%ED%84%B0%EB%B7%B0-CODA-2019-%EC%9D%8C%EC%95%85%EC%98%81%ED%99%94-%EB%A6%AC%EB%B7%B0-%ED%9B%84%EA%B8%B0-%EC%A4%84%EA%B1%B0%EB%A6%AC-%EA%B2%B0%EB%A7%90-%ED%95%B4%EC%84%9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