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우주 이야기’, 이 신선한 조합에 대하여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우주선들이 날아다닌다. 화려한 액션과 실제 같은 CG는 사건이 주는 긴장감과 시각적 즐거움을 극대화시키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그들의 고향 지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볼 거리 가득한 장면들로 채워진 긴 서사의 주인공들은 바로 한국인이다.
지금까지 한국 영상 콘텐츠가 가진 매력은 한국만이 보여줄 수 있는 한국의 독특한 문화적 특성들에서 비롯된 ‘스토리텔링’에 대부분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부산행’이 빠르고 민첩한 한국형 좀비와 그런 좀비 떼들 사이에서도 돋보이는 한국의 정 문화를 선보이고, ‘기생충’이 반지하와 짜파구리 같은 한국적 요소를 활용해 세계 모든 이에게 익숙한 빈부격차의 문제를 특별하게 만든 것처럼 말이다. 한국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했을 때 자본력에 있어 차이가 있고, 자본력은 영화의 스케일을 결정하며, 이는 현실적으로 국내외 관객들의 한국 영화에 대한 소구포인트를 ‘섬세하거나 독특한 스토리텔링’으로 차별화 시킨다. 그리고 ‘승리호’는 이러한 이유들로 이전까지 한국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SF 우주 장르의 첫 한국영화로 등장했다. 영화는 드넓은 우주에서 주인공들이 격렬한 액션을 선보이며 시각적으로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하는 데에 보다 초점을 맞췄고 그 액션을 선보이는 주인공들은 한국어를 사용한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한국과 SF우주, 이 제작 국가와 장르의 조합은 국내외 관객 모두에게 신선한 느낌을 선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던 특징을 모두 지우고 영화의 스케일과 기술적인 면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화를 끝까지 감상하고 나면 이야기의 전반적인 주제와 흐름, 캐릭터들이 가진 성격과 그들 사이의 관계성이 이 영화가 한국 영화라는 사실을 더욱 명확히 한다.
‘승리호’는 ‘한국 최초의 SF 우주 영화’라는 특징으로 개봉 전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SF 우주 영화라는 점을 제외하면 내용적인 측면에서 그 이외의 모든 부분이 ‘한국영화스럽다’. 영화의 표면적인 진행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악당이 지구와 사람들을 위협하지만 결국은 주인공들이 이에 맞서 싸워 승리해 지구를 지켜내는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이러한 진행에 따른 영화의 전반적인 사건의 흐름보다 캐릭터와 캐릭터들 간의 이야기가 더 기억에 맴돈다. ‘승리호’에는 딸 같은 존재인 순이를 찾아야만 하는 ‘태호’, 조금은 다혈질적이지만 따뜻한 성격을 가진 ‘장선장’, 과거 마약 갱단의 두목으로 박씨라 불리는 ‘타이거 박’, 인공지능 로봇 ‘업동이’ 그리고 이들을 변화시키는 아이 ‘꽃님’이가 등장한다. ‘꽃님’이라는 아이를 통해 승리호의 선원들은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인류애적이고 정의로운 방향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변화를 비롯해 변화의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인물들의 내적 외적 갈등과 해결, 인물들 간의 관계가 영화에서 가장 중심적으로 다루는 부분으로 그려진다. 어떻게 보면 ‘한국 최초 우주 영화’라는 타이틀만 아니었다면 스토리적 측면에서는 우주라는 배경 자체가 영화에서 그렇게까지 크게 부각되어 보이는 요소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승리호’는 ‘우주’에서 벌어지는 선원들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우주에서 벌어지는 ‘선원들의 이야기’에 가까운 영화였다.
영화 ‘승리호’는 승리호의 선원들이 지구를 위협하는 악당 ‘설리반’에 맞서 싸우고 결국은 승리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는 어쩌면 기존에 지겹도록 봐온 흔한 영웅주의 스토리지만 ‘승리호’ 속 악에 맞서 싸우는 이들은 특별한 초능력을 가진 영웅도 아니고 처음부터 대단한 사명감을 가지고 지구를 구한 것도 아니다. 그저 돈이 필요했던 선원들이 어쩌다 ‘꽃님’이란 아이를 만나 변화하고, ‘꽃님’이를 사랑하다 보니 어쩌다 이러한 일들을 해내게 된 것이었다. 더불어 영화는 본질적으로 아이인 ‘꽃님’을 통한 어른인 ‘선원들’의 변화, 그리고 ‘세계’가 가지는 의미를 담아냈다. 주인공을 비롯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그들의 ‘세계’를 지키고자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공간적 ‘세계’는 우주 혹은 지구이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우주 혹은 지구라는 ‘세계’는 단순한 표면적 배경일 뿐, 사람들이 지키고 싶어하는 그들의 ‘진짜 세계’는 아이, 가족, 우리라는 공동체 혹은 그런 존재들로 하여금 우리들이 느끼는 감정이었다. 표면적으로 ‘태호’는 돈에 집착했지만 이는 결국 ‘순이’를 찾기 위함이었고, ‘설리반’이 놓은 함정에 넘어간 ‘기자’도 가족들을 더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은 이유에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설리반’이 이런 악행을 벌인 이유조차도 어린시절 가족들과 겪었던 불행했던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소시민적 모습을 지녔던 ‘선원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중한 이에 대한 사랑’ 혹은 그들로 인해 만들어진 내가 사는 ‘세계’는 어쩌면 현실에서 너무 흔하고 특별하지 않은 소재일지 모른다. 하지만 ‘승리호’는 SF 우주 영화라면 떠오르는 ‘화려한’ 요소들, ‘대단한’ 사명감 보다는 국적과 인종에 관계 없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익숙한’ 요소와 ‘소박한’ 특성으로 스토리에 차별화를 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승리호’는 기술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한국 최초의 SF 우주 영화’라는 사실 그 자체, 더불어 ‘SF 우주 영화’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CG작업 등 시각적 부분에서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뛰어난 결과를 낸 데에서 큰 박수를 받았다. 그동안 한국영화의 장점은 ‘기술’보다 ‘스토리’에서 주로 언급되었는데 앞으로는 그 ‘스토리’적 장점에 ‘기술’까지 더해 보다 더 뛰어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 것이다. 하지만 ‘승리호’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오히려 인물들의 서사, 세세한 스토리텔링적 부분에서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앞서 이야기했듯, 우주라는 광활한 배경 속에서 소중한 사람에 대한 사랑 같은 익숙한 요소를 활용해 오히려 소박하게 스토리를 전개한 것 자체는 ‘승리호’가 다른 SF 우주 영화에 비해 가진 차별점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우주라는 배경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캐릭터와 스토리의 흐름만 본다면 인물들이 보여주는 매력과 익숙한 소재를 보여주는 방식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승리호’ 속 선원들은 분명 그들만의 성격과 서사를 부여받았고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이를 설명했지만 영화의 시작부터 진행,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선원들에게서 영화가 설명하는 모습 그 이상의 입체감이나 매력이 잘 보이진 않았다. 관객으로 하여금 등장인물에 빠져 상상하며 영화를 감상하게 하기 보다는 모니터에 갇혀서 누군가 연출한대로 행동하는 인물을 관찰하게 하는 기분이랄까. 특히나 주인공을 돋보이게 해줄 악당 ‘설리반’의 서사가 너무나도 부족했다. 악당의 서사 부족은 주인공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까지도 감소시키기 때문에 굉장히 아쉬운 대목이다. 더불어 등장인물들의 매력 부족은 곧 스토리를 흥미롭게 이끄는 힘도 감소시키는 아쉬운 결과를 낳았다.
‘승리호’가 시사하는 점은 분명히 크다. 계속해서 이야기하듯 ‘최초’가 가진 힘이 그것이다. 더불어 코로나19로 인해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에서 개봉되었다는 점도 그렇다. 비록 이 광활한 우주 영화를 작은 모니터를 통해 감상하게 된 점은 아쉽긴 하나 글로벌 플랫폼이 가진 장점을 통해 다양한 국가의 관객들에게 보다 쉽게 닿을 수 있게 된 것은 큰 기회가 되기도 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생각보다 놀라웠고, 스토리적 측면에서는 생각보다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한국 영화의 특징을 생각했을 때 이 새로운 시도는 전반적으로 익숙하고 낯선 것들의 조화를 균형 있게 이루었다는 점에서는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또한‘승리호’는 ‘승리호’ 영화 그 자체 뿐만 아니라 앞으로 한국 SF 영화의 기준으로 방향성을 제시할 것이란 점에서도 그 의미를 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