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하이브 회사설명회 영상을 보고
지난 주 하이브 2021 회사설명회 영상이 공개되었다. 영상을 통해 하이브는 'Boundless'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앞으로 진행될 신사업 계획에 대해 소개했다. 하이브는 '엔터테인먼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기업으로서 팬들에게 음악을 통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하나의 플랫폼이 되고자 한다. 지금까지도 아티스트 IP(지적재산)를 중심으로 커머스, 게임, 영상, 출판, 교육 등 다양한 서비스와 콘텐츠를 제공해온 하이브는 이번 영상을 통해 그 영역을 더욱 확장하려는 계획을 밝혔다. '오리지널 스토리 제작', '플랫폼 통합', 'NFT 사업' 등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오늘은 그 중에서도 '오리지널 스토리 제작'에 관한 필자의 개인적 견해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그동안의 하이브가 보여준 성과나 앞으로의 사업계획을 살펴보면 산업적인 측면에서 하이브는 굉장히 혁신적인 엔터테인먼트 기업임은 분명하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기본적으로 위험성이 큰 분야이다. 다른 대부분의 산업에서는 상품의 가격과 기능 혹은 만족도가 비슷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는 이 공식이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돈을 많이 들인 콘텐츠가 더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킨다는 보장도 없고, 오히려 적은 비용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리스크가 크고 성공여부를 미리 예측하기 어렵다. 따라서 가지고 있는 IP(지적재산)을 최대한 활용하여 가능한 한 많은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반복적으로 판매해 수익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기업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하이브는 소속 아티스트와 스토리라는 주요 IP를 활용해 다양한 산업 분야로의 IP 비즈니스를 전개해가고 있다. 과거에는 아이돌 산업이 앨범, 굿즈, 콘서트 정도의 '음악'이란 분야에서 쉽게 연상 가능한 것들을 통해 수익을 이끌어냈다면 현재는 해당 아티스트가 가진 IP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 '음악'이란 분야를 넘어 산업 간 경계 없는 확장을 이루고 있다. 특히 하이브는 '스토리'를 통해 영상, 출판, 게임, 웹툰 등의 각각의 창구를 콘텐츠라는 알맹이를 통해 하나로 연결시키는 역량에 뛰어나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요인을 분석한 글들을 살펴보면 매번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세계관' 이야기다. 팬들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에 관해 다양한 정보가 계속해서 제공되기를 원한다. 아티스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팬들에게는 그 자체로 놀이이자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그 정보가 앨범, 노래, 무대 등으로 한정적이었지만 방탄소년단의 경우 '화양연화'라는 하나의 세계관을 단순히 앨범 뿐만 아니라 웹툰, 게임, 영상, 소설 등으로 활용 범위를 넓혔다. 자연스럽게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팬들은 방탄소년단이 이야기하는 세계관을 이해하고 음악을 더 깊이 즐기기 위해 그것을 공부하며 그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사실 아이돌과 팬덤 간의 관계는 함께하는 '시간'과 '노력'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는데 이와 같이 아티스트와 스토리 IP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팬들에게 단순히 더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을 넘어 그들이 아티스트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함으로써 아티스트와 더 가깝고 특별한 관계로 느끼게한다.
하이브는 '기존에 선보였던 스토리가 아티스트의 창작물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이야기들이었다면 이제는 그 자체가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보다 생명력과 확장성이 있는 스토리 사업을 진행하려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앞으로는 아티스트와 음악, 이야기가 서로의 콘텐츠적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컬래버레이션의 모습으로 팬들에게 전해질 것임을 예시와 함께 설명했다. 하이브는 아티스트와 스토리를 중심으로한 IP 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해가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아티스트'와 '스토리'는 둘 모두가 중심적인 위치에 놓이게 되고 이 둘이 동시에 중심처럼 여겨진다면 필연적으로 충돌하는 지점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스토리'가 회사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사업을 꿰는 하나의 연결줄 같은 역할일 수 있지만, 팬들의 입장에서는 회사에서 어떤 사업을 진행하든 간에 '아티스트'가 그들의 변하지 않는 중심이기 때문에 '아티스트'의 이미지에서 조금이라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생각이 들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사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오리지널 스토리'는 기존에 아이돌 산업에서 흔히 활용되었던 '세계관'을 더 확장하고 그 중요도를 높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이돌 산업에서 '스토리'가 '아티스트'와 동등한 위치에서 그 자체만으로 부각되는 경우는 없었다. 방탄소년단의 화양연화 역시 '방탄소년단'의 화양연화이지 '화양연화' 그 자체가 방탄소년단에 앞서 존재하지는 않았다. '화양연화'가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즐기고 그들에게 더 몰입하는데 도움이 되긴 했지만, '화양연화'의 스토리 그 자체가 방탄소년단보다 앞서 있거나 동등한 위치에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하이브는 '오리지널 스토리'를 통해 이제는 스토리를 아티스트와 '컬래버레이션' 한다고 표현하며 이 둘을 콘텐츠 적으로 동등한 중요도로 여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현재 하이브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오리지널 스토리'는 아직 팬들이 그것을 겪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분명 낯선 개념으로 느껴질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오리지널 스토리'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느끼는 '낯섦'을 깨는 일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이 낯선 컬래버레이션을 익숙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말로 컬래버레이션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의 좋은 스토리를 선보이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팬들에게는 '아티스트'가 그들의 중심이며 다른 부가적인 사업들은 아티스트로부터 파생된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지금까지 대부분의 IP 사업이 그렇게 진행되어 오기도 했다. 따라서 '오리지널 스토리' 역시 현재는 팬들에게 이전과 같이 '부가적인 것'으로서 그 의미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팬들이 아티스트와 스토리를 정말 배우와 시나리오로 생각할 만큼 좋은 이야기를 들려줘야할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 때 '시나리오'와 '배우'가 비슷한 중요도를 가지고 어느 한 쪽 때문이 아닌 서로의 시너지 효과로 인해 그 작품을 빛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티스트'와 '스토리'를 동등한 위치에서 활용하고자 노력해도 결국 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집단은 팬덤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아티스트'가 더 돋보이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리지널 스토리'를 제작함에 있어 주의해야할 점도 분명 존재한다. 스토리를 연기하는 아티스트는 실존 인물이며 캐스팅의 개념을 사용한다 해도 해당 아티스트들의 직업은 전문 배우가 아니다. 따라서 스토리를 제작할 때, 팬덤에 대해 세심하게 이해하고 세밀하게 공감하는 것과 동시에 아티스트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오리지널 스토리'가 앞으로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는 언제나 직접 소비자를 만나기 전까지 성공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이브의 '오리지널 스토리'는 팬들에게 단순히 하나의 음악이나 단편적인 이야기를 즐기는 것을 넘어서는 복합적이고 거대한 예술적 경험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이 '오리지널 스토리'의 개념을 팬들에게 잘 전달함과 동시에 그들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만큼의 퀄리티를 보여주어 긍정적 결과로까지 이끈다면 이는 분명히 이후 아이돌 산업,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활용 가능한 혁신적인 하나의 콘텐츠 제작 및 활용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이브가 이야기하는 '무한대의 즐거움'이 단순히 무한하게 뻗어나가는 확장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이 표현의 진정한 본질인 '즐거움'을 만들어 내는 데에 방점을 두어 기업과 산업, 그리고 아티스트와 팬덤 모두에게 즐거운 일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