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와서 한국을 떠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더 많이 들게 된 생각이다.
유학을 와서 하고 싶은 공부를 찾아가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또 여러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너무 감사하지만, 가끔은 외로움과 막막함이 버겁다. 혈혈단신의 몸으로, 어쩌면 정말 동떨어진 타지에서 나의 삶을 꾸려가는 것. 또 경제적 및 건강 관련 문제, 비자의 불확실성 등을 계속 직면하게 되는 것.
내 성격상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고 즐기긴 하지만, 정말 특별하게 따로 만나지 않아도 곁에 있는 누군가의 존재 - 가족이나, 친구나, 혹은 룸메이트 - 가 없다는 사실이 서럽게 파고들 때가 있다. 돌아보면 올해는 유독 그런 기분을 느낄 때가 잦았던 것 같다. 서로 다른 때에 교환학생을 가면서 친구들과 떨어지고, 상반기에는 런던에서, 또 여름에는 정말 낯선 스웨덴이라는 곳에서 혼자 살아보고.
아부다비 캠퍼스에 있을 때는 워낙 학교 내에서 옹기종기 모여있었고, 좋든 싫든 많은 학생들과 부대끼면서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사람들과 최소한의 교류는 이어갈 수 있었다. 런던은 처음에는 외롭고 낯설긴 했지만, 사실 그만큼 새로운 도시에서 살아보고 학교를 다니는 데에 바빴다. 좀 더 익숙해지고 나서는 영국에서 공부하는 다른 친구들이나 혹은 새로운 인연을 만나가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룸메 없는 방에서,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추운 날 혼자 방에 누워서 시간을 흘려보내다 보면 한없이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질 때도 있었다. 어딜 가든 이방인인 기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내 집이라고 부를 곳이 딱히 없는 느낌. 워낙 자주 거주지를 바꾸게 되는 학교 특성상 이런 점이 더 부각되는 것도 있지만, 아마 외국에 나와있는 수많은 유학생들이 여러 번 곱씹어봤을 만한 생각이겠지.
스웨덴에서 자취하면서 인턴십을 할 때, 3주 정도가 지나니 마음이 허하고 한없이 기분이 가라앉았던 때가 있었다. 이 모든 기회가 너무 감사하고 소중한데도 불구하고, 도저히 열심히 할 열정이 나지 않았다. 이때 이미 거의 8개월간 끊임없이 거처를 옮겨 다닌 후였는데, 그냥 다 때려치우고 집에 가고 싶었다. 스웨덴의 여름은 해가 났을 때는 찬란하지만, 구름이 끼면 곧바로 기온이 떨어지고 우울한 날씨가 되는 신기한 나라였다. 추울 때는 그냥 침대에서 콕 박혀서, 멍하니 천장을 보고, 그냥 차나 좀 끓여 마시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고학년으로 올라가는 지금은 그런 질문을 머릿속에서 더 자주 던지게 된다. 공부를 더 하게 될까? 석사를 하면 어디로 가지? 공부를 한국에서 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또 새롭게 어딘가로 가게 될 텐데, 얼마나 더 그런 타지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근본적으로 피어나는 외로움이 조금 달래지는 날이 올까? 연인을 만나면 나아지려나? 만약 기숙사가 아닌 최소한 내 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되면, 살림을 꾸리고 있을 수 있다면 나아질까?
일을 한다면, 과연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 어디서 살고 싶은지... 답이 없는 질문만 늘어간다. 궁극적으로는 외국에서 계속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싶으니, 아마 해외에서 살게 될 것 같은데, 그럼 가족들을 보러 가는 건 연중행사가 되겠지. 지금도 이미 일 년을 통틀어 한 달이 채 안되게 한국에 있었으니. 앞으로는 이보다 더 짧아지면 짧아졌지 오래 머물지는 않을 텐데.
어느 때는 정말 '잘'나가고 싶고, 공부하고 배우고 내 커리어를 쌓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가도,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그냥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집에만 쭉 있는 삶이 나의 여유와 행복을 안겨줄 것 같지도 않다. 방학이 3주가 넘어가니, 내가 계속할 수 있는 일과 커뮤니티가 그립더라.
2주간의 짧은 방학이 끝나면, 다시 한국을 떠나 2020년은 뉴욕에서 반년을 보내게 된다. 설레고 감사하면서도, 벌써부터 외로움이 무서워 지레 조금은 겁먹고 만다. 하지만 잘 지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