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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씨네 WeeCine Nov 26. 2021

[인터뷰] 유태오 “미래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픽션 다큐멘터리 ‘로그 인 벨지움’ 감독 유태오

“유연한 내 모습 이제는 받아들이려”


배우, 아니 감독 유태오를 만났다. 코로나 19 팬데믹 시작과 함께 해외 드라마 촬영 중 벨기에 엔트워프에 갇힌 자신을 찍기 시작했다는 유태오. 그는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는 물론 보는 이의 내면까지 파고드는 신선한 픽션 다큐멘터리를 완성해냈다. 위드 코로나가 시작됐지만 여전히 코로나 19 여파로 대면 인터뷰는 어려운 요즘. 유태오 ‘감독’ 역시 온라인을 통해 만났지만, 그의 진솔하고 창의적인 태도는 모니터 너머로 충분히 전해졌다.

영화 '로그 인 벨지움' 감독 겸 배우 유태오. 사진 엣나인 필름

영화 ‘로그 인 벨지움’(감독 유태오)은 팬데믹 선포로 벨기에 앤트워프 낯선 호텔에 고립된 배우 유태오가 영화라는 감수성이 통한 가상의 세계에서 찾은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그렸다. 유태오의 평소 습관대로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다 시작된 프로젝트로, 100% 스마트폰 촬영은 물론 기획과 제작, 각본, 연출, 촬영, 편집, 음악까지 모두 그의 손으로 빚어졌다.


감독으로 데뷔한 소감이 어떤가. 힘들었던 시기에도 재미있는 작업을 완성해낸 것 같다


= 신기하고 고맙다. 이 작품이 처음 만들어질 때 극장 개봉을 생각하지 않았다. 내 상황을 기록하고, 친구들에게 보여줄 정도로 만들었는데, 이렇게까지 됐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재미있게 느껴졌다면 너무나 감사하다. 언젠가 나도 이 영상을 봤을 때 ‘힘든 상황을 좋은 추억으로 보냈구나’하는 마음을 갖고 싶었다. 미래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하려 했던 것이다. 오랜 무명 생활 덕분에 힘든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빨리 나아갈 수 있던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은 외로울 때 진짜가 된다. 진짜 자기 자신”이라는 문구로 영화를 시작했다. 영화를 통해 진짜 자신을 발견한 것 같은가


= 영화의 오프닝이 이 작품의 목적 자체였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이러니하게도 정체성을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가족과 친구를 포함해 사회적 관계성을 모두 벗어나서 내가 누구인지 볼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사실 정체성이란 것에 특별한 규정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게 진짜 나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끊임없이 경험을 통해 영향을 받는데 정체성 역시 물처럼 흘러가는 유연한 것인 것 같다.


영화 후반부에 쌓던 돌탑을 작은 돌 하나로 무너뜨리는 장면도 같은 의미다. 자아라는 것을 우리가 굉장히 어렵게 만들어가는데, 사실 정말 나약하고 언제든지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물론 남이 나를 파악하기 위해 카테고리화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만 그렇다고 내가 스스로를 규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유연하게 움직이고 변화해가는 내 모습을 이제는 편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영화 '로그 인 벨지움' 스틸. 감독 겸 배우 유태오. 사진 엣나인 필름

영화의 중간에선 영어와 독일어, 한국어를 오가며 독백(?)을 한다. 세 언어를 함께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 영화를 통해 나의 모습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나를 조금 더 제대로 표현할 수 있고, 누군가 그걸 잘 알아들을 수 있다면 조금 덜 외로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끼리도, 심지어 가족끼리도 서로 다른 이야기만 할 수 있지 않나. 그래서 어떻게 하면 오해 없이 진솔하게 나를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니 그런 방식으로 만든 것 같다. 비난을 받을 두려움, 판단을 받을 두려움 속에 우리는 솔직하지 못한 문법을 내재하게 되고, 그것이 누구나 갖게 되는 트라우마이자 걱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에 자기 자신을 직접 담아보는 경험은 어떠했나. 여러 역할을 동시에 해야 했는데


= 솔직히 많이 어려웠다. 내가 표현하고자 했던 구도와 시나리오 작가 입장에서의 기승전결과, 편집자로서 느끼는 배우의 연기 모두 많은 준비를 필요로 했다. 연출도 해야 하고, 미학적으로 고민하면서 구도도 잡아야 하고. 영화라는 매체가 갖는 문법 안에서 움직이고 싶었는데, 스크립터도 없고 모니터링도 없었으니 당연하기도 했다. 뇌 안에 자리잡은 거대한 감각으로 계속 찍고만 다녔다. 다만 20년 뒤 나에게 보여줬을 때 부끄럽지 않았으면 했다.


이 작품에 스스로 ‘에세이’라 평했다. 다른 배우들의 ‘에세이’도 찍어볼 마음이 있는지


= 그런 마음은 없는 것 같다. 한 배우를 알아가면서 그가 느끼는 주관적인 감정을 파악할 때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특히 나의 필터를 통해 그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은 그 배우 자신이 아니니 솔직하지 못하기도 하다. 누군가를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는다면, 상처를 줄 여지도 생긴다. 조금 위험하다.

영화 '로그 인 벨지움' 감독 겸 배우 유태오. 사진 엣나인 필름

영화의 형식에 관객이 낯설어 할 수도 있겠다. 관객을 위해 영화의 매력 포인트를 꼽아보자면


= 선입견 없이 편하게 보신다면, 적어도 재미있게는 보실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아트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볼 때 지루하면 못 견딘다. 아트나 다큐라 해서 재미없어야 한다는 규정도 없지 않나. 내가 밀도 있고, 재미있게 봐야 견디는 성격이라 이 작품도 그렇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시간낭비는 없으실 것이다.


영화 ‘로그 인 벨지움’은 12월 1일 극장 개봉한다.


https://www.maxmovie.com/news/432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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