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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Jul 12. 2024

극초기 스타트업에서 살아남기

시드 단계 스타트업에서의 3개월 인턴 후기

3개월 간 시드 단계 스타트업에서 기획 및 프론트엔드 개발 파트 인턴을 한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들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3개월 인턴 생활 시작!


IT 동아리 넥스터즈 19기를 활동하며 함께 사이드 프로젝트를 했던 백엔드 개발자 분이 도움을 요청하신 게 시작이었다. 창업을 한지 반년이 넘은 시점에서 더 이상 혼자 진행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고 계셨고, 취업하기 전에 3개월만 인턴으로 함께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을 주셨다. 실 서비스 경험이 없던 나에게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서 흔쾌히 수락했다.


돈을 받고 어딘가에 채용되어 일을 하는 경험이 처음이라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시작했다. 팀원은 대표님 지인 두 분(PM, 프론트엔드 개발자)을 포함하여 총 4명이었지만, 이 두 분은 보수 없이 도와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대표님과 나 둘이서 서비스를 만들어야 했다.



브랜딩부터 서비스 기획, 와이어프레임 제작까지


합류했을 당시에는 시장의 반응을 보기 위한 최소한의 동작만 구현된 상태였기 때문에 가장 먼저 서비스 리뉴얼을 위한 기획이 필요했다.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으로, 앞으로를 위해서는 이 시점에서 방향성을 공고히 다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서비스 리뉴얼에 도입하기 보다는 브랜딩을 먼저 구축하는 방향을 제안드렸고, 흔쾌히 수락해주셨다.


가장 먼저 학부 시절 브랜딩 수업 때 들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서비스 목적/목표, 방향성, 핵심 키워드를 정리했다. 약 5시간 동안 대표님과 둘이서 대화를 주고 받으며 왜 이 서비스를 시작했는지, 사용자에게 어떤 효과를 주고 싶은지, 어떤 느낌의 서비스로 다가가고 싶은지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자 노력한 덕분에 한 페이지 분량의 정리본을 완성할 수 있었다.
** 이 때,
 대표님께서 나중에 컨설팅 업무를 해도 잘할 것 같다는 칭찬을 해주셨다.


와이어프레임을 완성하기 위해 100번 넘게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던 화이트보드


위 정리본을 토대로 서비스의 핵심 기능 4가지를 정의하고 사용자 시나리오를 작성한 다음, 본격적으로 와이어프레임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약 3주 동안 8번의 변화가 있었고, 50개가 넘는 화면을 그리며 피그마에 능숙해졌다. 예상보다 기획에 투자하는 시간이 길어져서 당황스러웠는데 고민을 많이 한 만큼 꽤 만족스러운 방향으로 디벨롭이 되어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평소 작업물과는 다르게 실제로 사용자에게 쓰여질 제품이라 그런지 꿈에서도 와이어프레임을 그릴 만큼 어떻게 하면 서비스가 더 좋아질지 진지하게 몰두했던 것 같다. 이렇게까지 한 서비스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 본 경험은 처음이었다.


이 과정에서 대표님과 의견이 많이 부딪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 경험이 제일 값졌다. 실제 서비스를 기반으로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사용자를 고려하며 고민해볼 수 있었던 점, 서비스의 방향성이나 핵심 기능 측면에서 의견을 제시하는 게 실제로 영향력을 끼친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더욱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점, 내가 아직 커뮤니케이션에 많이 서툴며 누군가를 설득하는 힘이 부족하다는 점, 설득을 할 때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성적인 태도로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는 점, 그러기에는 배경 지식이 없어 더 다양하고 많은 경험을 쌓아야겠다는 점, 함께하는 사람이 무척 중요하다는 점까지 많은 부분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우당탕탕 서비스 개발 여정


어느 정도 기획이 마무리 되고 나서 디자이너가 필요해진 시점에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디자이너 한 분을 소개시켜드렸다. 서비스 와이어프레임을 완성하고 보니 어느 정도 기획 역량을 갖추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디자인 스타일을 가진 사람이 필요할 것 같았는데, 당시 딱 떠오른 사람이 그 분이었기 때문이다. 사전에 우리 서비스와 디자인 스타일이 일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화면 하나를 미리 부탁드렸고, 결과물을 확인하자마자 합류를 요청드렸다.


나는 이미 여러 번 합을 맞춰보았던 디자이너 분이었기 때문에 편하게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기존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하는 게 아닌 가정과 추측으로 나아가다 보니 대표님과 내 의견이 둘 다 근거가 명확할 때 결정을 내리기가 힘들었는데 같이 논의할 사람이 한 명 늘어서 행복했다. 또 개발자와는 다른 디자이너의 시각이 들어오니 다양한 방면으로 발전시킬 수 있어서 좋았다.
** A/B 테스트를 진행하기에는 시간과 비용이 부족했던 점이 아쉬웠다.


그렇게 우리는 2달 간의 여정을 시작했다.


1) 서비스 기획 관련


대표님께서는 우리 앱이 제대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로 도약해야 한다고 하셨다. 당시 나는 3개월의 제한 시간이 존재하니 최소한의 MVP만 꼼꼼히 구현하고 빠르게 출시해보자는 의견이었는데, 대표님께서는 모두 버릴 수 없는 기능이니 시간 투자를 더 많이 해서 진행해보자고 하셨다.


빠르게 변하는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 좋은 제품을 빠르게 출시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우리가 아무리 고민하고 좋은 기능을 많이 넣어도 사용자가 실제로 좋아해줄지 모르기 때문에 최소한의 기능만 구현해서 빠르게 배포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 타협점을 찾은 방법이 기능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었다.


먼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기능과 있으면 좋을 법한 기능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있어야 하는 기능 중에서 특히 완성도가 높아야 하는 핵심 기능 3가지를 선별했다. 덕분에 후반부로 갈수록 있으면 좋을 법한 기능을 버리고, 핵심 기능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2) 프로젝트 진행 관련


2달 동안 이미 디자인이 진행되거나 개발이 끝났는데도 기획이 바뀌는 바람에 작업을 2번하는 상황이 여러 번 발생했다. 서비스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최선의 방법을 찾고자 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했던 일을 반복하디 보니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기분이라 답답했다.


서비스 출시 한 달 전, 더 이상 이 상황이 지속되면 안될 것 같아 ‘디자인이 절반 이상 진행된 상황이면 더 이상 기획을 바꾸지 말자’고 강하게 말씀드렸다. 대표님께서는 이 의견에 동의하지만, 모든 것은 결국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것이니 조금만 더 이해해달라고 하셨는데 나는 오히려 이 말이 공감되지 않았다. 서비스란 사용자가 사용을 해주어야 의미가 생기는 건데 미래에 사용할 사용자를 위해 계속 고민하고 바꾸다가 출시가 미뤄지면 누구를 위한 서비스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서비스의 모든 기능은 우리의 가정과 추측으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최선의 기능 만을 정의하고 빠르게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경험을 토대로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면,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는 순간 그 때의 선택을 믿고 나아가는 태도 또한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3) 서비스 개발 관련


실제로 운영되고 있는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는 점이 재밌었다. (당장 생각나는 건 다크모드 대응, 네트워크가 터지지 않을 때도 사용 가능하도록 구현, 로딩 또는 데이터가 느리게 뜨는 부분에 대한 최적화 정도이다) 특히 글로벌 서비스여서 디바이스 위치에 따른 언어 변경, 날짜 데이터 사용 시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시간을 대응해야 했던 점도 새로웠다.


기존의 나는 실제로 운영하는 서비스가 아닌, 가정과 추측으로 이루어진 배경을 바탕으로 하나의 서비스를 만들어보는 작업만 했었다. 그래서 평소 개발 공부를 할 때 필수라고 여겨지는 CS 및 네트워크 지식, 알고리즘 등에 대해서 꼭 알아야 할까 싶은 의문이 있었는데 여러 상황과 환경을 고려하는 서비스를 만들다보니 기능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 지식들이 필요하다는 점이 체감되었다. 이 부분에서 인턴을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3개월의 인턴 생활 끝, 그리고 퇴사


첫 회사를 퇴사하면서 다음 회사에 대한 이상향을 그려볼 수 있었다.


1) 의사결정과 업무 진행이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포지션을 담당하는 팀원은 있어야 한다. 모든 업무를 대표님과 둘이서 진행하다 보니 전문성을 가진 팀원의 필요성을 크게 느꼈다. 얕은 수준의 지식만을 가지고는 아무리 이야기를 나눠도 결론을 내기 쉽지 않았고, 내가 확신이 들지 않는 부분에 대해 결정을 해야한다는 사실이 버거웠기 때문이다. 특히 중간에 제지해주는 사람이 없다 보니 종종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기분을 느낄 때 너무나도 아쉬웠다.


2) 믿고 따를만한 프론트엔드 개발 사수가 있었으면 좋겠다. 대표님과 함께 프론트엔드 개발을 진행하기는 했지만, 대표님의 주 역할은 백엔드 개발이시다 보니 프론트엔드 개발 파트는 내가 중심을 잡고 진행했었다. 신입 입장에서 프로젝트 앞단의 모든 설계 방향을 직접 결정하고 실행해야 한다는 점은 무척 부담스러웠고,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다음에도 이게 정말 옳은 방향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지식과 경험을 활용하는 방식이 최선이었기 때문에 내가 짜둔 코드들이 나중에 발목을 잡지는 않을까 싶은 걱정도 컸다. 그러다 보니 함께 의견을 나누고 나아갈 수 있는 사수의 존재가 절실하게 느껴졌고, 어떤 사수를 만나냐에 따라 개발 실력의 성장폭이 확실히 다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3) 어느 정도 서비스가 갖추어져 있는 회사를 가고 싶다. 서비스를 거의 새로 만들어가는 단계이다 보니 추측만으로 설득하고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 무척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음 회사에서는 기본적인 서비스가 갖춰진 상태에서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을 해보고 싶다. 철저히 데이터 분석 정보를 바탕으로 진행한다면 보다 객관적으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4)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점은 대표가 그리는 이상향과 서비스의 비전이 공감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3개월 동안 일하면서 흥미를 잃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표님이 궁극적으로 끼치고자 하는 영향력과 서비스의 취지와 목적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비스가 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애정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의견을 낼 수 있었다.

** 오락이나 단순 흥미 요소보다는, 일상 속에서 없어지면 불편할 것 같은 서비스를 조직에 합류하고 싶다.


3개월 동안 대표님과 함께 밤낮 없이 기획하고, 디자인 피드백을 나누고, 개발을 진행하며 서비스 개선에 기여하는 모든 과정이 무척 즐거웠다. 이 경험 덕분에 나도 충분히 한 명의 팀원으로서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고, 부족한 점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 회사 또한 이처럼 나를 온전히 다 쏟아부을 수 있는 조직에 합류하고 싶다.




여담으로, 나는 최종 커리어 골로 PM을 생각하고 있다. 인턴을 하기 전에는 단순히 기획, 디자인, 개발 지식을 바탕으로 서비스를 기획/운영/관리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3개월 동안 간접 경험을 해보니 경영, 마케팅, 데이터 분석, 비즈니스 영역까지 더 체계적이고 큰 범위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을 체감했다. 생각보다 내가 이 직무를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정말 PM이 하고 싶다면 아주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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