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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코끼리새 Feb 13. 2023

봄을 재촉하는 음악과 연희동 산책

사러가 마트에서 홍대입구역까지

*하단에 플레이리스트 링크를 넣어놨어요 :-)

동네는 나태주 시인의 표현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쁜 존재다. 단순히 높낮이가 고르고 청결한 보도블록, 독특한 외관의 건물, 잘 가꿔진 조경이 그 동네를 사랑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긴 어렵다. 동네는 1m가 넘지 않는 보폭으로 가로지르다가 걸음을 잠시 멈출 때 비로소 보이는 것 같다. 매일 그 거리를 걷는 주민들의 작은 움직임이 그 동네를 만들기 때문이다.

연희동은 예전 직장 덕분에 친해진 동네다. 사실 거주하는 동네를 제외하면 낯선 동네와 친해질 수 있는 계기는 학교나 회사 밖에 없었다. 좋든 싫든 걷고 머물러야 하니까. 반면에 놀 거리 볼거리가 많아서 약속이 잡히는 동네는 언제나 사람이 북적였고, 이미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만큼 내가 애정해야 할 이유는 딱히 없었다.

연희동의 랜드마크 중 하나는 사러가 마트라고 생각한다. 연희동의 역사가 담긴 이곳에서 인근 지하철역인 홍대입구역까지 걸었다. 북적이는 연남동 골목길을 피해 큰길을 따라가면 홍대입구역 3번 출구가 등장한다. 비 오는 연희동, 눈 내리는 연희동을 전부 걸어봤지만 이 동네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 유난히 잘 어울린다. 낮은 건물로 이루어져 찬란한 햇살이 그늘을 만들지 않고 온전히 떨어지기 때문일까. 추위가 한풀 꺾이고 햇살이 좋은 날, 봄을 기다리면서 잔잔하면서도 경쾌함이 몇 방울 떨어진 듯한 음악을 들으며 연희동을 걸었다. 물론 연희동을 자주 걸었던 당시에 들었던 음악이기도 하다.

연희동 [매뉴팩트커피] & 연남동 [리틀프레스커피]

사러가 마트에서 산책을 시작한다면 매뉴팩트 커피에서 테이크아웃은 필수. 커피 메뉴 중에 콜드부르는 피하는 편인데 이제껏 마셔본 콜드부르 중에 연희동 매뉴팩트커피와 제주도 롤링브루잉은 유독 생각나는 맛과 향이다. 매뉴팩트커피는 매장이 협소하니 손에 들고 나와 산책을 하며 마시기에 좋다. 빨대 없이 커피를 홀짝이려면 가끔씩 멈춰 서야 하는데, 이때 동네를 돌아보며 구경하면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다. 꽃가게 매대에 나와있는 꽃을 보며 계절을 짐작하기도 하고 주민과 상인, 학생과 직장인이 적당히 섞여있는 동네라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연희동이 끝나고 연남동이 시작될 때 거대한 교차로와 마주한다. 작은 동네가 사실은 홍대와 신촌, 광화문 쪽으로 나아가는 교통의 요지였다는 걸 잊고 있었다. 이 구간에는 들풀과 들꽃이 많다. 버스와 자동차 구경이 지겹다면 시선을 아래로 내려봐도 좋다. 연남동으로 진입하면 리틀프레소라는 카페가 있는데 이곳은 모카포트로 내린 커피를 맛볼 수 있다. 연희동과 연남동에서 카페를 각각 하나씩만 꼽자면 이 두 곳이 아닐까.

교차로와 굴다리를 넘어 연남동을 통해 홍대로 가는 길. 힙하고 멋진 가게들이 줄을 지어 서있고 중간중간 뻗어있는 골목들이 산책자를 유혹한다. 연남동의 미로 같은 골목길은 늘 새로운 게 생기고 사라진다. 하지만 음악을 감상하며 조용히 걷기에는 무리가 있다.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사람들 무리를 피하는 집중력, 이따금 지나가는 차와 오토바이를 피해 전봇대 뒤로 몸을 숨기는 민첩함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길가를 선택해 홍대입구역까지 걸었다.

연희동 사러가 마트에서 홍대입구역 3번 출구까지 1.2km를 걸었다. 산책 메이트였던 플레이리스트는 아래 공유해 뒀다. 봄을 기다리며 듣기 좋은 분위기의 음악이다. 막상 지하철역에 도착하니 연희동과 전혀 다른 분위기로 전환되어 버렸다. 다음에는 차라리 라우터 커피 방향으로 조용한 연희동 산책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