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분히 의도적인 산책과 음악 감상
집 근처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에 막 도착했을 때 절망적인 순간이 있다. 아슬아슬하게 차편을 놓쳐 지각의 변명을 떠올려야 할 때, 스마트폰을 충전시키지 않고 나왔을 때, 그리고 이어폰을 깜빡했을 때다. 한창 버스로 통학하던 시절엔 이어폰 없이 버스에 오르는 건 그날 하루를 망치는 일이었다. 편의점에서 저음질 이어폰에 만 원을 쓰면서까지 음악을 포기할 순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귀에 무언가 꽂았다 뺐다 하는 일도, 새롭게 들을 만한 음악을 찾아 헤매는 일도 점점 귀찮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덜컥 겁이 났다. 음악을 즐기면서 좋은 곡을 모아 담던 삶이 덩어리째 뜯겨나가는 기분이었다.
안타깝게도 이와 비슷한 변화가 다른 곳에서도 나타났다. 그건 걷는 일이다. 예전에는 좋은 음악을 듣다 보면 집 앞에 도착했음에도 괜히 주변을 한 바퀴 더 걷는 일이 잦았다. 음악이 기적 같은 타이밍에 현관문 앞에서 끝나는 일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다리가 아프거나 이제 충분히 들었다 싶을 때까지 동네를 배회하다가(지금 생각하면 산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귀가했고, 때로는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 서서 음악을 마저 듣기도 했다. 계단과 계단 사이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노란 등이 꺼질 때마다 팔을 휘저어가면서 말이다.
최근 들어서 음악을 정성스럽게 듣는 일이 줄었고 이에 따라 걷는 일도 줄었다. 순수한 산책 시간이 부재했고 교통수단을 향한 걸음뿐이다. 운동화의 밑창이 닳는 속도는 현저히 느려졌다. 음악 또한 무작위로 좋아하는 것들에 하트만 눌러놓은 채 창고에 뒤섞여 방치된 모습이다.
의도적으로 '듣고 걷는 일'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흔히 '일처럼 느껴진다'라는 말은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만 조금 바꿔서 생각하면 일처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음악 감상과 산책도 노력과 시간을 들이면 이전보다 더 잘할 수 있다. 애정하는 곡의 먼지를 털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좋아하는 거리로 나가본다. 그냥 걷는 게 아니라 일처럼 걷는다. 열심히 고개를 돌려 구경하고 의도적으로 천천히 걷고 집중해서 가사를 음미하고 풍경에 음악을 대입해 본다.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라 제대로 하는 '일'이라면 더 좋은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