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기타 등등 그리고 그 외 다수
제발 부탁하는데, 기타 등등은 쓰지 말자. 그런 표현은 당신이 글을 열심히 쓸 마음이 없다는 사실만 전달할 뿐이다.(p217)
봄이 오다 어디쯤 쉬고 있는지 며칠 전 내렸던 비로 기온이 뚝 떨어졌다. 여자는 겨울이 갔다고 여기고 오리털 점퍼 대신 가벼운 면 점퍼를 입고 나갔다. 겉옷이 차가운 바람을 다 막아주지 않은 탓에 여자는 산책길의 바람으로 추위에 떨었다. 찬 바람에도 거리의 나무에 봄 꽃들이 피었다. 며칠 전만 해도 꽃 몽우리만 겨우 보였는데 어느 틈에 벌써 꽃이 그 모양을 완연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여자는 겉옷 자락에 묻어 있는 한기를 걷어내기 위해 카페에 들어갔다. 창가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따스한 라테를 홀짝거리며 산책길에 동행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꺼내 읽는다. 책을 읽으며 『프랑켄슈타인』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인 1818년에 영국에서 출간된 책이라는 데 놀라고, 이 책을 쓴 작가가 메리 셸리라는 이름의 여성이라는 데 더 놀라며 책을 읽어가던 여자는 가독성까지 좋은 책 덕분에 오래 카페의 창가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19세기에 여성이 쓴 SF과학 소설이라니 정말 감탄을 넘어 경탄스러웠다. 거기다 ‘신이여, 내가 그대에게 진흙으로 빚어달라 청했습니까? 나를 어둠에서 끌어내달라 해원 했습니까?’라는 밀턴의 「실낙원」의 문장을 제일 앞에 번외로 적어놓은 작가의 혜안에 탄복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열정과 열망이 만들어 낸 혐오의 산물은 자신이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님에도 태어나는 순간부터 세상으로부터 버려져 배척당한다.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창조주인 빅터로부터 소외당하며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그 존재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새록새록 피어 올랐다. 물론 소외감이나 외로움이 살인의 행위를 정당화시키지는 못한다. 항변이 아니라 변명일 수밖에 없음은 안다. 나 좋자고 하는 행동이나 행위가 남에게 피해를 넘어 악행을 저지르게 할 수도 있음을 여자는 또 책으로 배운다.
책을 읽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창 밖으로 활짝 핀 봄 꽃인 목련과 개나리에 이어 이제 막 봉우리를 피워내는 벚나무가 보인다. 예쁘게 피어 있는 꽃들을 보며 ‘참 좋구나!’라고 혼잣말을 하는 여자는 이 세상을 눈으로만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 법을 다시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문득 주위를 둘러본다. 여자는 자신이 너무 오래 창가 자리를 차지했음을 깨닫는다. 책을 접고 일어나 컵과 쟁반을 정리대에 올려놓고 카페 문을 열고 나와 집으로 다시 걷는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덕분에 이 봄, 새롭게 피어나는 것들이 여자의 눈에 색다르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