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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우영 Mar 31. 2023

“옥탑방의 테라스를 분양받고 싶다"

양평 ‘하이브 마인드 프로젝트’ 설계의 기록 2편

아파트와 단독주택의 중간지점, 그곳을 들여다보자. 간단하다.


몰개성의 아파트에 살면서 꿈꾸는, 단독주택의 생활을 하나하나 열거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불편한 단독주택의 생활을 접고 편리한 새 아파트로 옮겨가고 싶은 이유도 적어보면 알 것이다. 양쪽의 장단점은 모두가 수긍할 만큼 명확하다.


그렇다면 적어도 우리의 빌라(건축용어로는 다세대주택과 연립주택)는 그 중간지점의 매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아파트의 시스템까지는 아니어도 보안, 주차, 설비 등 공동주택의 편리함과 함께, 잔디 깔린 마당까지는 아니어도 나만의 작은 테라스가 있는 집 말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주변에서 흔하게 보이는 거의 모든 빌라는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중간지점의 매력보다는 아파트가 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한, 그렇다고 단독주택이 될 수도 없는 어설픈 주거형태로 남겨진 듯 보인다. 물론 현대사회의 다양한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결과물일 수 있으니 그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까지 언급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무분별한 개발을 막겠다고 만들어 놓은 각종 건축법은 또 어떤가.


북향을 끌어안고 '그 중간 지점의 매력'을 찾아


다세대주택 3개 동을 계획하는 일이다.

'그 중간 지점의 매력'에서 이번 프로젝트의 답은 찾게 될 것 같다. 산은 두 개다. 아파트와 단독주택의 어설픈 중간이 아니라 장점만을 살린 매력적인 공간이 되어야 하고, 거기에 누가 봐도 "나쁜 땅"의 모든 조건을 갖춘 대지의 조건을 극복하는 설계, 넘을 큰 산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다. 하지만 이 악조건 두 개를 결합시켰을 때 오히려 매력적인 솔루션이 되는 설계가 필요했다.


2022년 8월 현장 컨셉 스케치 (c) Dance with Space 윤우영


전편에서 분석해 본 대지의 환경조건을 잠시 곱씹으며 건축사의 생각을 따라가 보자.


조망권이 막힌 북향의 대지 조건은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그대로 단점을 인정한 채 배치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번 계획안의 출발은 여기서부터 시작했다. 대지가, 조망권이 확보된 남향이었다면 3개 동의 배치는 간단했을 것이다. 거실의 주된 방향을 서로 간섭이 없게끔 조금씩 어긋나게 3동을 배치했을 테고 잘 만들어진 아파트 단위세대를 참고했을 것이다. 아파트를 닮은 다세대주택으로 합격점을 받지 않았을까.


하지만 주어진 대지는 조망권이 확보되지 않은 북향이다. 위 컨셉스케치는 그 솔루션을 담고 있다. A, B, C, D, E, F, G의 7개 단위세대가 있다. A, B를 '가'동, C, D를 '나'동, E, F, G를 '다'동으로 명칭하고 가만히 그림을 들여다보자. 단지레벨을 그대로 이용하면 도로에서 직접 진입이 가능한 지하주차장이 만들어지고, 지상에는 3개 동의 중앙에 공용마당을 배치할 수 있다. 건물의 높이와 마당의 폭을 고민하면 최적의 외부공간을 계획할 수 있겠다.


덕분에 우선 가동은, 남향과 마당을 향해 열려있는 거실을 배치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그런데 인접한 기존 건물의 조망은 가동의 배면으로 정리할 수 있겠지만, 마당 건너 있는 다동의 배치가 자연환경의 소통을 차단하고 있었다. 고민 끝에 다동의 3층, 4층은 테라스가 있는 복층형으로 계획했다. 그 결과, 그림처럼 막힘없는 소통이 이루어졌고 무엇보다 복층형의 주택이 새로웠다.


나동의 1층은 필로티로 처리해서 비상차량이 단지 내로 들어올 수 있도록 계획하고, 동시에 인접한 석축의 높이 이상부터 주택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개략적인 배치 기본계획이 세워졌다.


그런데 본격적인 고민은 지금부터다. 이렇게 세워진 배치 계획만을 가지고서는 이곳에 세워지는 다세대주택만의 매력을 이야기하기엔 부족해 보였다.


  

"빌라에 테라스가 없는 건 법규 때문일까?"


사실 나는 현장을 가기 전부터 머릿속에는 온통 꿍꿍이 생각이 가득했다. 10년도 훨씬 더 된 일이다.


과천의 동호인 주택단지(빌라 3개 동)를 설계하면서 '도심지 수직형 테라스 하우스'라는 이름으로 저작권 등록을 한 적이 있다. 결론부터 보자면 우여곡절 끝에 설계안은 착공되지 못했고 결국 평범한 다세대주택 3동이 완공되는 안타까운 프로젝트였다. 돌아보면 컨셉만 있었고 뒷받침할 디테일은 부족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젊은 패기만큼 누군가를 설득할 내공은 부족했다.


그러나 그 후로도 내내 그 설계안은 스케치북 안에서 밖으로 나올 찬스만을 보고 있었다. 그때가 바로 지금이다. 현장의 기본 자료를 건네받았을 때부터, 묵혀 두었던 10년 전의 스케치북의 먼지를 나는 이미 털어내고 있었다.


이 설계도는 저작권 등록이 완료된 자료로, 무단 복제 또는 출처표기 없는 공유(브런치 링크)가 불가합니다 :)


조금 디테일하지만, 이 글을 더 재밌게 읽기 위해서는 테라스에 대한 이해가 조금 필요하다. 우선, 4개 층의 다세대주택(빌라)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평면 계획을 통해서는 각세대에 테라스를 설계할 수는 없다.


테라스는 발코니와는 달리 지붕이 없는 구조다. 정확히 말하면 하부층의 지붕 슬라브를 자연스럽게 상부층에서 사용하게 되는 구조를 테라스라고 부른다(경사지에 설계되는 테라스 하우스의 마당을 생각하면 개념의 이해가 쉬워진다). 결국 수직형태의 주택이 각 층마다 테라스를 갖기 위해서는 매 층의 거실 혹은 방의 공간이 상부층에서는 다른 공간, 즉 외부공간이 되어야만 가능해진다.


독자들이 지금까지 보아온 일반적인 빌라와 다르게,  매 층마다 서로 다른 공간이 설계되어야만 가능하며 하부층의 거실 지붕 슬라브를 상부층에서 자연스럽게 옥외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만 된다는 뜻이다. 내 집의 거실에서 나갔을 때, 그곳이 하부층의 옥상이 되는 구조이다.


그런데 10년 전에 저작권 등록을 해둔 테라스 해법을 꺼내더라도, 이번 설계에 바로 적용이 불가능한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고민은 건축법규였다. 이번 계획안이 들어서는 땅의 용도지역은 관리지역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모든 땅은 그곳에 지어지는 건물의 규모와 용도 등을 세분해서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층건물이 있는 대로변은 상업지역, 주택이 많은 이면도로 쪽은 주거지역, 혹은 관리지역, 농림지역 등으로 규정된다.)


관리지역은 건폐율 40% 용적률 100%로 지을 수 있는 땅이다. 알다시피 건폐율은 땅을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땅의 면적에 비해 건물이 앉혀지는 비율을 말한다. 건폐율 40%라면 나머지 60%는 빈 땅으로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 용적률이란 각 층의 바닥 면적의 합계로, 땅의 면적에 비해 얼마나 건물을 지을 수 있는가이다. 용적률 100%라면 몇 층으로 건물을 짓든 총면적이 대지면적만큼이라는 뜻이다 (아래 그림 참고).


서울에서 빌라가 있는 지역은 대체적으로 건폐율 60%, 용적률 200%의 일반주거지역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의 경우는 도심에서 벗어난 지역에 위치한 곳으로, 용도지역은 계획관리지역이며, 따라서 건폐율 40%, 용적률 100% 4층 이하의 법규를 적용받는 곳이다.


즉 아무리 건물 규모를 키우고 싶어도 결국 대지면적 이상의 건물은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세 번째 넘어야 할 산이다. 건폐율과 용적률 각각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법적인 건폐율 40%를 꽉 채운 건물을 짓는다면 2.5개 층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또는 용적률 100%를 모두 확보한 4층의 건물을 짓는다면, 각 층에 대지면적의 25%만 지어도(25*4개 층=100) 충분하다는 뜻이 된다.


문제와 해답이 하나로 합쳐진 지점


하지만 고민의 출발, 즉 문제의 원인과 해답도 바로 같은 지점에 있었다.

각 층에 대지면적의 25%라면, 법적으로 허용한 건폐율 40%보다 무려 15%의 면적이 남아 있다는 뜻이 된다. 만약 이 부분을 용적률에 포함되지 않되, 활용 가능한 공간으로 설계할 수 있다면 어떨까, 박스 밖으로 나가보았다. 세 개의 넘어야 할 산과 서랍 속의 스케치, 이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진 해답은 거기에 있었다.


건축가들의 상상력은 규제를 위해 만들어 놓은 탁상공론의 건축법에 눌려 언제나 숨이 막힐 지경이다. 하지만 그 옴짝달싹 하기 어려운 제약 저편에, 이 공간이 어쩌면 아파트와 단독주택 사이에서 사용자를 위한 해답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직형 테라스 스케치 (c) Dance with Space 윤우영


본격적인 설계에 들어가기 전에 몇 가지 컨셉을 정리했다. 이 스케치는 아래 내용을 담고 있다.

단지레벨에 순응하는 지하주차장의 계획

대지의 환경조건을 극복하기보다는 대지 자체에 집중하는 3개 동 배치

각 세대에 수직형 테라스를 설계하는 실험적 방식


우리가 이곳에 세우고자 하는 것은 아파트도 단독주택도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땅에서 해답을 찾아가고 있다. 이곳에서만 지어지는 다세대주택은 아파트와 단독주택, ' 그 중간 지점의 매력'에 닿아 있을 것이다.


빌라에 테라스가 없는 건 법규 때문이 아니다. 고민하지 않을 뿐이고, 또한 고민하거나 설득할 이유도 허락되지 않는 현실 때문이다. (3편으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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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쉽게 이해하는 건폐율과 용적률 참고 

  

*출처: 서울시 https://www.etoday.co.kr/news/view/190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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