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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우영 Dec 02. 2023

진천 00 공장 기숙사 이야기 - 2편

"외국인 근로자 기숙사? 내참!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이제 한다고?"


처음 기숙사 신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순간적으로 바로 그 자리가 떠올랐다. 몇 번 현장을 방문하면서 아무도 눈길을 주지도, 줄 필요도 없던 바로 그 자리였다. 토론이 거듭 될수록 나의 대답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공장의 신축에 따라 그 외 부대시설 역시 각각의 용도와 기능을 기반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1명 내지 2명이 항상 상주해야 하는 경비실이 주출입구에 있어야 한다. 패널로 만들어진 3평가량의 단층 건물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컨테이너 박스가 그 기능을 대체하기도 한다. 단층규모의 사무실도 필요하다. 사무직원 6명가량이며 이경우 단층 독립 건물이거나 혹은 주공장동의 중층에 설치되어 공장의 관리를 겸하기도 한다. (관리의 측면에서는 가장 효율적이나 환기, 소음 등 근무환경이 좋을 리 없다) 식당도 필요하다. 공장의 식당은 전문 외주 업체에 그 관리를 맡기기도 하고 공장 자체적으로 직원을 뽑아 운영하기도 한다. 그리고 30여 명을 수용하는 기숙사 건물이다.


공장과 부대시설들의 기능을 열거해 보니 이상한 공통점이 있다. 모두 독립된 단층 건물이라는 점이다. 당연하다. 주건물인 공장의 위치를 결정하고 추후 증축을 고려해 토지의 일부를 남겨두면 곳곳에 남는 여분의 땅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 땅들을 활용하자니 부대시설의 기능들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마치 스스로 앉을 곳을 찾아 들어간 것 같다. 이번 프로젝트에 관계된 모두(발주처, 공장 관리자, 외국인 근로자, 그리고 건축가 등)의 입장과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제안이어야 했다. 


"아! 이거네요! 이거면 회장님께 보고 드리고 바로 진행할 수 있겠어요!"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부대시설을 2층 규모의 하나의 건물로 만드는 제안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경우 신축을 위해 공장부지의 일부를 할애한다면 보나 마나 몇 날 며칠 고민을 할 것이다. 

관리실, 사무실, 식당, 기숙사 등 부대시설을 하나의 건물에 통합해서 짓는다면 그 규모가 꽤 커질 것이다. 부대시설 각각의 건물을 짓는다면 공장부지의 자투리땅을 활용할 수 있겠지만 이 제안은 증축부지이건 어디건 제대로 된 신축부지를 마련해야 한다. 토지가 아깝다는 생각에 이르면 그 결론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공장부지는 주출입구에서 오르막길 위에 위치해 있다. 약 3~4미터의 레벨차이를 두고 있으며 오르막이 시작되는 초입에 공장용 도로는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버려진 땅이 있었다. 처음 현장을 방문했을 때 이곳은 방문객의 주차장쯤으로 사용하면 좋겠다던 발주처 팀장의 설명이 떠올랐다. 

위 그림에서 3번으로 표기된 곳이다. 옆의 설명 사진은 공장부지의 주출입구에서 바라본 전경이다. 오르막길의 오른편으로 움푹 꺼진 땅이 보인다.


공장부지와 같은 평면에 위치한 토지였다면 경비실 등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이 있었겠지만 공장부지와는 별개로 푹 꺼진 곳이었기에 모든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된 곳이었다.

공장부지에서 3~4미터 아래에 있는 곳에 건물 1층을 두고 이곳에 경비실과 식당을 계획했다. 공장부지에서 그대로 진입 가능한 2층에 사무실을, 별도의 동선으로 기숙사 공간을 배치했다.


1번으로 표기된 기존 공장건물과 2번으로 표기된 금번 증축 공장 인근에 4번으로 표기된 곳은 준공 이후 공장의 다양한 요구에 따라 어떤 시설들이 자리할 것이다. 처음 기숙사가 자리할 곳이었다. 


발주처를 설득하는 데에는 두 가지가 그 몫을 했다.

우선 공장용 도로 사용하지 못하는 버려진 땅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사실 제안을 하면서 놀란 점은 이 땅, 약 150여 평의 크기와 모양이었다. 용케도 모든 부대시설을 하나의 건물로 만들었을 때 건물이 들어서기에 안성맞춤의 땅 크기였다는 점이다. 이점은 예상하지 못했다. 

전체 공장부지에 비해 얼마 되지 않는 크기였지만 쓰지 못하는 땅으로 인해 공장부지의 평균 가격이 그만큼 상승해 있었고 지금은 그 땅을 활용하니 그만큼 평균 가격이 낮추어졌다.


두 번째는 번듯한 회사의 얼굴이 생겼다는 점이다. 공장으로 다가설수록 방문객들은 공장의 초입에 서있는 2층 규모의 건물을 가장 먼저 보게 될 터이고 건물은 회사를 대신해서 방문객들을 나름의 제스처로 환영할 것이다. 게다가 이 모든 제안이 공사비의 상승 요인 없이 진행될 수 있다니. 


새론 운 제안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위 첫 번째 스케치는 주출입구의 오르막이 시작되는 곳, 그곳과 건물 1층의 관계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오르막의 초입에 경비실이 위치하고 그곳에서 2층으로 외부계단을 통해 곧장 진입 가능한 동선을 계획했다. 기숙사는 공장부지에서도 진입이 가능하지만 1층과 후면에서도 별도의 동선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식당도 1층에 배치해서 외주업체에 맡기건 직접 운영하던 관계없이 부식 차량 등 공장의 기능과 관계없이 별도의 운영이 가능하도록 동선을 계획했다. 


두 번째 스케치는 공장으로 진입하면서 보이는 가로방향의 모습이다. 오른쪽의 1/2 가량은 전면의 나무들로 인해 보이지 않는다. 좌측 부분의 모습을 통해 사람들은 가로방향의 긴 건물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스케치를 보면 공장부지의 레벨과 주출입구 부분의 레벨, 기숙사 건물의 외부 조건들이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앞의 스케치 첫 번째와 같은 시점에서 본 기숙사 건물이다. 주출입구의 오르막이 시작되는 곳이며 공장부지 위로 기존 공장건물이 보인다 (건물 왼쪽 1층 부분이 경비실, 전면 2층 부분이 사무실이며 경비실 2층으로 옥상 테라스가 보인다. 오른쪽 후면으로 1층 식당과 2층 기숙사가 계획되었다)]


이제 진천 00 공장 기숙사 프로젝트의 맨 마지막 부분을 이야기해야겠다.


1층, 2층의 콘크리트 골조 공사가 거의 끝날 때쯤 현장을 방문한 날이었다. 2층 기숙사 복도를 따라 서포트(콘크리트 슬라브 구조물을 공사기간 동안 받쳐주는 가설 기둥) 사이로 방들이 배치되었고 도면대로 공간들이 착착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내 외장의 마감공사를 하기 전 바로 지금의 골조공사가 끝난 공간이 가장 사랑스럽다. 맨얼굴 같기도 하고 미사여구 없이 가장 진솔한 글의 초안 같기도 하다. 


그날 운전하는 두 시간 동안 이곳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어떤 장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옥상. 그곳을 활용하면 근로자들이 쉴 수 있는 공간, 모두가 모여서 고향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 숙소가 아닌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줄 수 있겠다 생각했다. 높이 1.2미터의 옥상 난간 일부를 연장해서 높여봤다. 그곳에선 공장도 보이지 않고 맑고 맑은 진천의 하늘만 보이겠다. 그곳에선 일주일 내내 들렸던 공장의 소음도 없을 테고 두런두런 삼겹살 파티도 좋겠다. 누군가 고향 얘기에 취해 편지 한 장 쓰기도 하겠다.


다음 날 이런 얘기를 들은 발주처의 팀장은 단번에 “노!”를 외쳤다. 공장 내의 기숙사 첫 번째 덕목은 무엇보다 관리였다. 쓸데없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일은 번잡한 관리의 업무가 늘어나는 일이며 그러다가 그곳에서 사고라도 나는 날이면 그 감당은 또 어쩌겠는가. 수도설비도 연장해서 올려야 하고 전기설비도 마찬가지다. 콘크리트 난간을 연장하는 일을 포함해서 어쨌든 공사비 상승요인이다. 공사비 더 들여서 위험요소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얘기다. 절대 수용할 수 없는 제안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기계전기, 구조 사무실에 설계 변경까지 타진을 한 후였다. (이미 공사가 진행 중인 건물의 설계를 변경하는 일은 건축도면만 바꿔서 현장에 전달한다고 끝나지는 않는다. 그와 관계된 구조 검토는 물론 기계, 전기와 관련된 도면도 변경되어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깊은 밤의 술자리는 또 한 번 발주처 팀장을 설득해 주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회장을 설득하는 묘수는 그에게서 나왔다.


회사의 얼굴이 된 2층 기숙사 건물과 별도로 회사의 입간판이 몇 개 필요했다. 연장해서 끌어올린 1.8미터 난간의 높이는 회사의 가장 근사한 간판을 붙이는 벽면의 역할을 했다. 주출입구로 올라오면서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이었고 간판을 붙이기 위해선 최적의 장소가 되었다. 그 간판의 벽면 뒤로 근로자들의 하늘공간이 생길 것이다.



1번 표표기한 부분이 옥상 난간을 연장한 부분이다. 이곳 전면에 회사 간판이 걸리고 그 뒤로 옥상 하늘공간이다. 2번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좌측으로 사무공간이 분리된 동선으로 오른쪽 4번 기숙사 공간이다. 3번은 식당으로 들어가는 출입구, 식당 오른쪽으로 옥산으로 오르는 외부계단이 있고 부식을 위한 별도의 차량동선이 있다. 공장장이 가장 좋아한 곳은 5번 테라스 부분이다. 사무공간에서 나와 이곳에 서면 공장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옥상 하늘공간이다. (난간벽을 좀 더 끌어올려 주변 광경 없이 하늘만 내려온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공장이 준공된 이후 몇 번 더 현장을 방문했다. 공장은 그 용도의 특성상 준공된 이후에도 물건을 쌓아둔다거나 필요에 따른 간이 시설들이 생겨나게 된다. 법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문제가 없는지 혹은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등 건축가의 조언을 필요로 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오랜만의 방문길이고 또 궁금하기도 했지만 옥상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 건축가가 의도한 모든 공간이 (그 공간에 감성이 묻어있다면 더더욱) 그 의도대로 활용되지는 않는다. 그건 또 다른 문제이다. 작가의 손을 떠난 책 한 권이 독자의 수만큼 다양하게 읽히고 해석되는 것과 같다. 잘 만들어진 영화 한 편이라고 해서 관람객 모두에게 감동을 주지는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난간벽을 끌어올린 옥상공간에서는 두어 달에 한번 고기를 굽고 왁자지껄 할 것이고 담배 피우기 좋은 난간 벽이 될 것이고 어쩌면 다리 부러진 의자나 집기가 쌓여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예 옥상으로 나가는 문에는 자물쇠가 걸려있는지도 모른다.


  

발견, 건축을 대하는 건축가의 태도


프로젝트를 완성해 가는 과정 중에 건축가에게는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하나의 땅에서 하나의 해답을 찾고 그 해답을 향해 몰두해 가는 그 모든 과정은 건축가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모든 관계자들의 시선을 한 곳으로 모으는 일까지 말이다. 그렇게 오래 아주 오래 바라보면 그 해답의 과정 속에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을 발견한다. 발견한다는 표현이 꼭 맞다. 


그 발견이 많아지면 건물은 더 풍요로워진다. 집기를 쌓아둔 창고의 역할이어도 좋다. 키 큰 가구여도 밖에서 보이지 않으니 좋을 테고 그러다 문득 깨끗이 청소된 옥상 한가운데 서면, 그날은 용케도 비 온 뒤 맑고 높은 가을하늘이겠다. 동남아 어디쯤이 고향인 누군가의 하늘이겠다. 건물이 풍요로워진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이야기가 생겨나고 담아진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지는 못했다. 특히 공장 프로젝트처럼 그 목적이 분명하고 요구하는 기능이 가장 우선시되는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설계부터 준공까지 허튼 눈치를 살필 기회는 없다. 그만큼 타이트한 일정과 비용이 업무 전체를 관할하기 때문이다.


또한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서 그 결과가 항상 필요하고 옳은 일인지는 단언할 수 없다. 이번 일 역시 그 결과가 공장의 수익에, 공장의 사후 관리에 꼭 필요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한다면 한번 멈칫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생각하면 공장의 부대시설을 한 곳에 모아 자투리 땅에 배치하는 일이, 콘크리트 옹벽 1미터를 끌어올리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겠는가.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의 결과가 ‘건축을 대하는 건축가의 태도'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라고 나는 믿는다. 

밤을 새워 논의했던 그 시간이 그렇고 건축가뿐 아니라 이번 일을 대하는 발주처의 팀장, 그의 애정도 그랬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사소하고 즐거운 경험, 내가 언제나 쓸데없는 수고를 자처하는 이유가 된다.


물론 살아있는 공간이 다시 수익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다시 강조할 필요는 없겠다. 분양을 목적으로 하는 아파트는 물론이거니와 이번 공장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사용자들의 휴식과 편의는 결국 공장의 수익으로 그 결과를 가져오는 선순환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건물을 살아있게 만드는 건축가의 이런 쓸데없는 수고가 ‘쓸데 있는’ 수고라고 믿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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