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계절의 새벽 편지
한 계절의 새벽,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다.
고등학교 2학년 때, 3학년 선배들의 수능 기원 응원을 가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아는 선배가 한 명도 없는데 대체 왜 가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져 그때의 저는 전라남도 해남 어딘가에 있었습니다. 참 겁도 없고 맹랑한 십 대가 아니었나 돌이켜봅니다. 그리고선 수능을 두 번이나 치렀습니다. 벌 받은 걸까요?
시험이 끝나고 나선 두 번 다시 수능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으레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올 것 같은데 확실히 추워지면 수능이 다가오나 보다 싶었죠. 11월 결혼식 날짜를 두고 수능 전에 무조건 해야 한다고 했던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올 해는 코로나 때문에 한 달이나 미뤄진 수능이 내일 치러집니다.
십여 년 만에 수능이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대학을 졸업하고도 다시 수능을 치러 다른 대학에 진학하려는 친구가 생각나서 인 것 같습니다. 대학이 예전, 아주 예전과는 달리 취업이나 스펙 관리를 하는 시간으로 바뀐 것에 대한 뉴스나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누굴 탓하기 어려운 사회적 현상인데, 녀석이 대학에 다시 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습니다. 그 친구에겐 아직 대학이 지식의 요람인 것 같기도 했고 그가 가는 길에 해당 대학의 졸업장이 필요한 건가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라면, 가려는 그 학교의 분위기 때문이진 않을까 싶었습니다. 사실 이유를 듣지 못해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응원의 마음을 가져봅니다. 잘 치렀으면 좋겠습니다. 원하는 결과를 받기 위해 노력한 시간이 길지만 오로지 모든 실력이 발휘될 수 없을지도 모르니 결과와는 무관하게 잘 치러내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미 오래전에 수능을 봤었지만 아직도 아침, 점심, 마지막 문제를 풀던 교실 내의 공기와 분위기는 잘 잊혀지지 않습니다. 처음이야 교복 차림에 봐야 한다고 하니 봤던 십 대였다면 두 번째는 꼭 봐야 하는 이유를 가지고 1년을 준비했습니다. 분위기는 성인과 성인이지 않은 상태, 처음과 두번째인 상황으로 확연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처음은 낯설고 서툴게 느껴져서 기억이 강하지 않고 두 번째는 처음이 아닌 사람들과 함께여서 거드름 피우듯 주변을 훑어볼 짬이 있었던 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다는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모의고사로 훈련한다고 하지만 한 번, 그 처음인 장소와 시간에, 처음으로 모든 걸 쏟아내야 하는 중압감은 마지막 문제까지 다 읽고 펜을 놓았을 때까지 손 끝이 얼얼한 느낌이었습니다. 수능 하루 전날인 오늘과 같은 날은 배운 것을 다 정리할 시간은 없고 좀처럼 사람들은 쉬라고 하지만 불안한 마음에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기출문제집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오늘 누군가의 시간이 그러하겠지요. 과감히 쉬라, 혹은 붙잡고 정리해보자 라는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어떠한 마무리 준비를 하든 간에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해결될 방법은 쉬이 없어 보입니다.
잘 치러내는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준비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면 좋겠지요. 아니, 준비한 것보다 더 좋은 결과가 나오면 좋겠습니다. 친구 녀석도 꼭 원하는 학교에 진학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잘 치러내는 일은 무조건 결과에 기인하진 않습니다. 조금 서툴러도 실수를 하더라도 그 모든 상황을 잘 견디고 이겨내는 굳건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준비한 만큼의 최대의 성과를 내되,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림 없이 어떤 결과든 달게 받겠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코로나 속에서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에게 잘 치러내는 굳건함이 필요해 보입니다.
오늘, 내일의 시험을 잘 치러내기 위한 건강하고 따듯하며 굳건한 하루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응원합니다.
2020.12.02 한 계절의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