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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 미 Dec 02. 2020

20.12.02

한 계절의 새벽 편지

한 계절의 새벽,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다.





    고등학교 2학년 때, 3학년 선배들의 수능 기원 응원을 가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아는 선배가 한 명도 없는데 대체 왜 가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져 그때의 저는 전라남도 해남 어딘가에 있었습니다. 참 겁도 없고 맹랑한 십 대가 아니었나 돌이켜봅니다. 그리고선 수능을 두 번이나 치렀습니다. 벌 받은 걸까요?

    시험이 끝나고 나선 두 번 다시 수능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으레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올 것 같은데 확실히 추워지면 수능이 다가오나 보다 싶었죠. 11월 결혼식 날짜를 두고 수능 전에 무조건 해야 한다고 했던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올 해는 코로나 때문에 한 달이나 미뤄진 수능이 내일 치러집니다.

십여 년 만에 수능이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대학을 졸업하고도 다시 수능을 치러 다른 대학에 진학하려는 친구가 생각나서 인 것 같습니다. 대학이 예전, 아주 예전과는 달리 취업이나 스펙 관리를 하는 시간으로 바뀐 것에 대한 뉴스나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누굴 탓하기 어려운 사회적 현상인데, 녀석이 대학에 다시 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습니다. 그 친구에겐 아직 대학이 지식의 요람인 것 같기도 했고 그가 가는 길에 해당 대학의 졸업장이 필요한 건가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라면, 가려는 그 학교의 분위기 때문이진 않을까 싶었습니다. 사실 이유를 듣지 못해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응원의 마음을 가져봅니다. 잘 치렀으면 좋겠습니다. 원하는 결과를 받기 위해 노력한 시간이 길지만 오로지 모든 실력이 발휘될 수 없을지도 모르니 결과와는 무관하게 잘 치러내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미 오래전에 수능을 봤었지만 아직도 아침, 점심, 마지막 문제를 풀던 교실 내의 공기와 분위기는 잘 잊혀지지 않습니다. 처음이야 교복 차림에 봐야 한다고 하니 봤던 십 대였다면 두 번째는 꼭 봐야 하는 이유를 가지고 1년을 준비했습니다. 분위기는 성인과 성인이지 않은 상태, 처음과 두번째인 상황으로 확연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처음은 낯설고 서툴게 느껴져서 기억이 강하지 않고 두 번째는 처음이 아닌 사람들과 함께여서 거드름 피우듯 주변을 훑어볼 짬이 있었던 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다는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모의고사로 훈련한다고 하지만 한 번, 그 처음인 장소와 시간에, 처음으로 모든 걸 쏟아내야 하는 중압감은 마지막 문제까지 다 읽고 펜을 놓았을 때까지 손 끝이 얼얼한 느낌이었습니다. 수능 하루 전날인 오늘과 같은 날은 배운 것을 다 정리할 시간은 없고 좀처럼 사람들은 쉬라고 하지만 불안한 마음에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기출문제집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오늘 누군가의 시간이 그러하겠지요. 과감히 쉬라, 혹은 붙잡고 정리해보자 라는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어떠한 마무리 준비를 하든 간에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해결될 방법은 쉬이 없어 보입니다.


     치러내는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준비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면 좋겠지요. 아니, 준비한 것보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좋겠습니다. 친구 녀석도  원하는 학교에 진학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치러내는 일은 무조건 결과에 기인하진 않습니다. 조금 서툴러도 실수를 하더라도  모든 상황을  견디고 이겨내는 굳건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준비한 만큼의 최대의 성과를 내되,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림 없이 어떤 결과든 달게 받겠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코로나 속에서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에게 잘 치러내는 굳건함이 필요해 보입니다.


오늘, 내일의 시험을  치러내기 위한 건강하고 따듯하며 굳건한 하루가   있길 바랍니다. 응원합니다.




                                                                                        2020.12.02 한 계절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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