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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소리 Jan 06. 2023

정성을 들여야 해


  심심할 때면 먹방을 보는 횟수가 늘었다. 심지어 구독을 해놓고 정기적으로 찾아보는 유튜버도 생겼다. 어김없이 방송을 보며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데, 그녀가 문득 자신의 맛집을 소개하며 주인 할머니께서 하셨던 이야기를 했다. 메인 음식도 아니고 반찬까지 너무 정성과 시간을 들이고 있는 할머니께 “할머님, 너무 정성을 쏟으시는 거 아니에요? 힘드실까 봐요. 이렇게까지 해도 그냥 반찬인데요.”라고 말했단다. 그녀의 걱정 어린 말에 “요즘은 이렇게 정성을 쏟지 않으면 먹질 않아. 거들떠보지도 않더라고. 이 정도 정성은 들여야 먹어.”라고 대답하셨다고 한다.


  가족의 식사를 위해 장을 보는 일이 줄었다. 여러 가지 재료를 구매하고 소분하여 메뉴를 생각하며 다음 음식의 식재료를 준비하는 일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일주일치 양을 생각하며 장을 보다가, 이틀 치의 양으로 줄었고, 하루치를 생각하는 것으로 더 적어졌다. 그런데 소량으로 구매하는 것보다 대량으로 구매할 때가 훨씬 경제적인 물품이 많다. 원하지 않는 1+1으로 물건이 예기치 않게 쌓이는 경우가 생긴다. 어떤 소비가 올바른 것인가 고민할 즈음 마법 같은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밀키트’


  식사를 뜻하는 meal과 세트라는 의미의 kit가 합쳐진 단어로, 요리에 필요한 손질된 식재료와 딱 맞는 양의 양념이 들어 있어서 쿠킹 박스 혹은 레시피 박스라고도 불린다. 그 어떤 요리도 손쉽게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재료를 낭비하는 일도 없고, 심지어 경제적이기까지 하다. 더욱이 메뉴가 다양해서 떡볶이, 볶음요리, 각종 전골까지 안 되는 음식이 없다. 게다가 찾아가서 맛을 봐야 하는 맛집들의 밀키트까지 나올 정도이니, 굳이 멀리 가서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까지 갖추었다. 나는 이 밀키트의 세계를 너무 늦게 알아버린 건 아닌지 애석해하며 빠르게 입문했다. 늦었던 시간을 뛰어넘으려는 듯 하루의 식사를 밀키트로 완성한 날이 많아졌다.


  나의 놀라움처럼 아이들은 밀키트의 완벽한 맛의 비율과 다양한 식재료에 만족해했다. 매우 맛있다며 감탄하는 아이들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았다. 나의 완벽한 식사 준비와 기뻐하는 아이들로 식탁은 더욱 풍요로운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의 질문이 시작되기 전까지 말이다. “음~정말 맛있다 엄마. 엄마 최고!”를 외치던 아이가 갑자기 물었다. “그런데 엄마, 이건 어떻게 만드는 거야?”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 이건 그냥 끓이기만 하면 이렇게 되는 거야.”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나의 미소는 흐릿해졌고, 아이의 질문은 선명해졌다. “이미 다 요리되어서 그냥 끓이면 되는 거야. 엄마는 그냥 끓인 것 밖에 없어.” 밀키트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들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내놓은 접시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가 고작 그뿐이었다는 것이 나를 흐리멍덩하게 만들었다.


  배달 음식이나 외식을 오래 하기 어려운 것처럼, 아이들은 밀키트 음식을 오래 먹지 못했다. 금방 그 맛에 질려하고 다시 먹으려 하지 않았다. 잔뜩 구비해놓은 밀키트를 소비해야만 하는 시기가 와버렸다. 다른 양념을 첨가하거나 식재료를 넣어 밀키트를 활용하고 변형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소비될 리 만무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주객이 전도되었다.


  고작 밀키트에 양념이나 식재료 첨가가 무슨 정성이냐 싶겠지만, 밀키트만으로 해결되던 날에 비하면 천지차이다. 다시 메뉴를 고민하고 식단을 꾸리는 날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아이들도 저절로 안다. 무엇이 오래 고민하고 생각하여 눈앞에 펼쳐진 것인지 말이다. 타인을 만나 대화를 하는 일이라도 그렇다. 상대가 나의 말에 마음을 다하며 듣고 있는지, 너의 마음에서 나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단번에 알아챈다.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나에게 쥐어준 과자 하나로 너의 마음을 알아챈다. 취미 생활, 직장 생활, 육아, 관계 등 모든 것이 그러하다. 고작 이런 것에 이렇게까지 정성을 쏟아야 하나,라는 질문에 단순한 대답을 한다. 너의 정성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고, 마음이 있는 곳에 너란 사람이 있는 법이다. 정성을 쏟지 않으면 너도 나도 거들떠보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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