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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소리 Jan 10. 2023

고작, 글쓰기

  글쓰기에 목마른 사람처럼 하루에 한 개씩 꼬박꼬박 글을 썼었다. 그렇게 할 이야기가 많은 사람처럼 쏟아내다 무심코 멈춰버렸다.


  나의 글은 지극히 불편하다. 다른 수필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처럼 ‘목표 설정’이 없고, ‘경험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인문 교양을 다룬 글처럼 ‘지식’이나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다. 글을 읽어 내려갈수록 ‘대체 너가 하려고 하는 글쓰기는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할 수 있는 대답은 없다. 그런 것은 구비되어 있지 않으니 말이다.


  독자를 설정하고 글을 써야 팔리는 글이 된다. 팔리는 글이 되어야 무엇이라도 될 텐데, 초기값이 없으니 대푯값이 나올 리 만무하다. 처음부터 이 모양이었던 것은 아니다.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일을 적으며 누군가 나처럼 공감하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다. 실은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내 안에 견고했던 둑이 허물어져서 추스를 새도 없이 흘러나왔다. 이런 이야기까지 한다고? 싶은 이야기들을 마구잡이로 토해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내게도 글쓰기의 목표가 생겨야 할 시점이 다가왔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어떤 글을 쓸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내리기 전에 욕심이 튀어나왔다. 그냥 이 자체로 인정받고 싶다.


  누군가 이런 구질구질하고 사적인 아무 쓸모없는 이야기에도 공감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불쑥 튀어나왔다. 누구나 하고 있는 정보 및 지식 전달, 자기 계발 같은 이야기 말고 그저 하릴없어 보이는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그런 시간은 쉽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었다. 내 본심과 진심은 번번이 틀어지고 거절감이 샘솟을 무렵, 쓰기를 멈추게 되었다.   


  다시 쓰기를 시작하려면 스스로를 납득시킬 명분이 필요했다. 아무리 써도 누구도 읽지 않는데, 마음을 살피며 글을 써도 주류가 되지 못할 텐데, 지극히 사적인 이런 이야기를 굳이 읽고 싶어 할까 등의 질문을 뛰어넘을 명분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의 글쓰기를 위한 명분은 찾지 못했다. 다시 돌아온 나의 글은 여전히 ‘목표 설정’이나 ‘예상 독자 파악’은 찾아볼 수 없다. 다시 말해 그저 그런 신변잡기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다시 쓰기를 시작한 것은 마음이 동했기 때문이다. 명분이나 목표, 독자 같은 건 애초에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독자가 많아지면 좋겠지만, 처음 시작했던 글쓰기의 방향을 고지식하게 밀고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내 글의 주된 소재는 ‘마음’이다. 살다 보니 잊어버린 마음, 당연히 그런 줄만 알았던 마음, 어느새 색이 바랜 마음, 너무 꽁꽁 감추어 두어서 세상 빛을 보지 못한 마음, 너에게 가닿지 못해 너와 나 사이 어딘가 헤매고 있는 마음까지. 이 모든 마음들을 발견하게 되는 아주 사소한 것이 나의 글을 이끄는 동력이다. 그 동력으로 단어를 고르고 자판을 두드리며 고작 한 장의 글을 완성한다. 고작, 기껏, 겨우, 한갓, 한낱, 글쓰기를 한다. 나와 너의 마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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