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carus Dec 09. 2021

공부에 진심인 학생들, 그런데 요령은 없는듯..

노르웨이, 늦깎이 임산부 대학생의 기록

노르웨이에서의 대학 첫학기 시작은 그렇게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일단 개인 사정으로 학기 시작하는 첫 주부터 스페인에 다녀와야해서 오리엔테이션 등 학교생활과 앞으로의 사교에 중요한(!) 수업을 다 빼먹었고


한국에서 운영하고있는 사업때문에 한국행이 예정돼있어 10월에는 학기 중간에 2주이상 수업을 빠져야 했다 (대학 첫학기를 시작한 2019년에는 코로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언어. 대학교 입학 당시 노르웨이에 거주한 기간만 (중간에 한국에 들어와 살았던 기간 제외) 대략 4년정도. 꽤 오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르웨이어보단 차라리 영어가 좀더 편한지라, 대학 전공수업을 낯선 언어로 공부한다는 게 꽤나 막막하게 여겨졌다.


사실 새로운 시도를하고 도전을 좋아하는 성향이라, 지난 몇년간 정체 중인 나의 노르웨이어를 향상시키려고 일부러 대학을 등록 한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특히 대학 수학수업을 들을 때 언어 장벽이 꽤나 크게 다가왔다. 수학 용어들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


“옵효이드 이 아안~(opphøyd i an)’’ 하라는데 응??뭐라고?? 뭐라는지 알아들을 수 없으니 검색도 안되고…. (나중에 알고보니 제곱이었다).


영어로 통역기를 돌려 봐도 잘 모르겠는 수학용어들 때문에 노르웨이어를 영어로 그 영어를 다시 한국어로 변환해야했고, 뭐라하는지 잘 안들리니 검색하기도 어려워서 수업시간을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안그래도 수학은 내 인생의 장벽이었는데, 고등학교 문과로 진학하면서 수학은 이제 끝! 인줄 알았으나..삼십대에 또 다시 수학으로 괴로워 하고있다니ㅜ


(8년전 독일에서 석사 과정할때도 수학때문에 엄청 고생하긴 했다. 그때도 한국서 수학의 정석을 EMS로 급하게 받아서 수학공부를 부랴부랴 했었는데.. 또다시 수학의 걸림돌에… 아아ㅠㅠ)


한국어로도 어려운 수학을 다른나라에서 배우려니 참…

수학을 잘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숫자로만 이해하면 되니까 언어장벽을 덜 느끼겠지만, 수학이 내 인생의 큰 벽이었던 나로써는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이걸 늦게 깨달았다는것도 우습긴하다), 경영은 숫자의 학문이었다… 회계, 재무, 미시경제, 거시경제 등등….


경영학.. 너 수포자에게 매우 가혹한 학문이었구나.


그래도 하늘이 무너져도 살아남을 구멍은 있다던가. 내 대학생활을 구제해준 비장의 무기는 바로바로.. 기출문제! (Tidligere Eksamen!)


노르웨이 교육시스템은 디지털화가 굉장히 잘 돼있는데 (한국보다 훨씬 디지털 기기나 시스템을 공교육에 활용을 잘 하고있다), 정말 거의 모든 과목이 빠지지 않고 디지털 포탈을 통해 학생들에게 오픈하는 항목이 바로 기출문제들. 전년도 문제는 뭐가 나왔었는지, 전전년도 문제는 뭐였는지 다 올려준다.


내가 들었던 대학 기초 수학만해도, 전년도 시험 문제들을 살펴보니 패턴도 유사하고 숫자만 바뀌는 정도로 꾸준히 출제되고 있었다.


전년도 기출문제를 안 올려주는 과목은 예상문제라도 올려주거나, 시험이 없고 리포트를 내야하는 과목에는 전년도 우수답안을 예시로 올려준다.


응? 이렇게까지 해준다고???

뭔가 다 떠먹여주는 느낌이랄지….


눈치보면서 선배들에게 족보구걸을 하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 오픈된다.


모든 과목을 족보를 다 오픈해주고 떠먹여주니 사실성적이 다들 잘 나올 수 밖에 없겠구나.. 했는데 이게 웬걸?? 의외로 성적 분포는 대부분의 과목이 A를 받는 학생은 많지 않고 C/D에 많이 몰려있었다.


시험기간만 되면 주변 친구들이 대부분 C만 나오면 잘 나오는거지! 제발 C 이상만 나왔으면 좋겠어~ 하길래.. 그냥 하는소린줄 알았는데.. 진짜다.


같이 공부 정말정말 열심히 하는데 (아니 그리고 기출문제가 있는데!!) 왜 성적이…?


내가 들었던 과목들의 성적분포. 평균성적 C이고 심지어 F도 많다.

노르웨이 학생들은 성실하지 않은건가? 싶기도 하지만 보면 공부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한다.


시험기간이 아니어도 도서관은 꽉꽉 차있고, 그날 들은 수업을 바로 복습하거나 과제를 하는 친구들도 정말 많고, 놀고 붓고 마시고 하는 분위기보단 다들 열공하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캠퍼스 주변으로 주점이며 식당이며 하나도 없다. 캠퍼스 구내식당이 유일한 식당..)


아니 이렇게 열공들을 하는데 왜 성적이 안나오지 싶어서 그들의 공부법을 조금 들여다봤더니


나처럼 기출문제에 나온 문제들 위주로 개념을 공부하는 게 아니라, 두꺼운 전공서적들의 첫 챕터부터 하나하나 개념을 이해하고 넘어가려한다.


나는 수업시간에 언급된 내용 위주로 슬라이드에 나온 내용들 위주로 공부한뒤 기출문제를 열심히 파는데, 이들은 전공서적 첫챕터부터 펴고 학기 내내, 천천히 순서대로 단원별로 공부한다. (일반화의 오류가 있긴하지만 적어도 내 주변애들은 대부분 이렇게 공부하더라..)


특히 충격(?) 적이었던건, 기출문제에 나온 내용을 풀만큼 공부가 안돼있기때문에 일단 전공서적 공부먼저 다 하고 기출문제를 풀어 볼 거라는 친구 (이친구는 결국 기출문제에 나오는 내용을 전부 풀어보지 못하고 못하고 시험을 치게된다..)


아니 기출문제 나온 문제들 먼저 보고 그 내용 위주로 공부하면 되는것 아닌가…? 출제되는 문제들이 기출문제에서 아주 크게 벗어나지 않던데..


물론 성적이 전부가 아니다. 매번 기출문제만 열심히 파는 나는 성적이 꽤나 잘 나오지만, 시험만 끝나고나면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에 머리에 남아있는게 별로 없다.


반면 성적은 덜 나온 친구들이 내가 잊고있던 개념들을 조리있게 잘 설명하고 응용하는 모습들을 본게 한두번이 아니다 (기초과목 위에 심화과목들이 들어가므로 기초과목들에서 배운 내용들을 나중에 계속계속 써먹더라).


내용을 깊이 있게 학기 내내 천천히 공부한 친구들이 개념을 더 잘 이해하는게 당연한건데, 성적을 올리는 데 집중하는 방식의 공부에 익숙해진 나로써는 그 방식이 참 낯설어보인다. 그리고 이 친구들처럼 천천히 개념부터 공부 하려고 해보지만 잘 안된다. 시험공부는 늘 시험이 코 앞에 닥쳐있어야 시작하게되기 마련이라…


어찌됐건, 출결사항도 따로 체크하지 않는데다가 기출문제도 다 올려주는 매우 학생편의적인 시스템덕에 회사도 운영하면서, 이년반 째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교를 다니고있다. (스스로 우수하다 말하기 쪼금 부끄럽지만… 노르웨이 대교에서, 한국에서 온 언어도 더듬거리는 학생이 좋은 성적을 내고 있어서 자랑좀 해봤다. 성적이 잘 나오니까 뿌듯하고 재밌어서 사실 매우 의욕적으로 공부하고있다.)


내년에 경영학 학사 끝나고나서도, 다른 학사과정을 시도 해 볼까도 생각중이다. 한번 해보니까 다른거 병행 하면서 공부 같이하는게 가능한것도 같다 (출결을 체크하지 않는게 정말 큰 장점인듯).


1월 출산예정이라 육아와 사업과 학업을 병행하는 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못할게 뭐 있나 (낳아보고 결정할 문제긴 하지만 지금은 의욕이 충만함).


, 그리고 어차피 대학교가 공짜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호호백발 새내기가 자연스러운 이곳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