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서 유연하게 일하는 디자이너..?
글을 써 내려가기에 앞서 나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모든 디자이너들에게 경의로움을 표하며 그들을 응원하며 시작하고 싶다. 스타트업에서 일을 시작한 지 약 5년 정도가 넘어가고 그동안 다양한 회사를 거쳐 현재 스타트업에서 꽤 오래 일하고 있다. 그간에 느꼈던 스타트업의 디자이너들이 가지는 고충과 일하는 방법 등을 나누기 위해 다양한 컨퍼런스와 강의 등을 다녔지만 이미 성공한,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회사 디자이너의 일하는 방식과 그들의 고충은 내가 기대한 것과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정작 스타트업 디자이너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들과 같은 입장의 디자이너가 나누는 이야기라는 걸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아직도 부족한 현업의 스타트업 디자이너지만, 그간 겪었던 나의 작은 경험들이 단 한 명에게라도 도움과 공감이 된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원하는 스타트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그들이 원하는 자격 중 가장 많은 %를 차지하는 업무역량은 '유연한 디자이너'라는 걸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유연하다는 말은 즉, 어떤 극심하게 변화되는 상황에서조차 담담하게 대처하고 당연히 바뀔 수 있었다는 걸 예상하여 망망대해에서 과감하게 방향키를 돌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과도 같다.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 싶을 때에조차 상황에 따라 냉철한 자세로 자신의 작업물을 엎고 새로 시작할 수 있도록 방향키를 조절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연'이라는 단어에는 '이런 것도 다 할 수 있어요'라는 말이 포함돼있기도 하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는 끊임없이 유연함을 강요받고 훈련받는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서 속도에 맞추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디자인을 포장하고 변경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고, 이후에 안정된 디자인으로 성공적인 디자인 시스템을 도입하는가 반면에 대부분의 스타트업에서는 이도 저도 아니게 프로젝트를 마감하게 되는 게 현실이다. 나 역시 스타트업에 자진해서 발을 들인 후 시작은 창대하게 다양한 디자인 시스템과 브랜딩을 그리며 완벽을 추구했지만 그중에 살아남은 잔여물인 사용자 중심 디자이너로 포장된 이도 저도 아닌 작업물에서 헤엄치기 일쑤였다.
그렇다면 유연한 디자이너란 무엇인가? 스타트업에서 유연한 디자이너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훈련해야 할까?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도출된 의견임으로 다양한 견해로 피드백을 남겨줘도 좋을 듯하다.
우선 스타트업에서 굉장히 선호하고 따라 하게 되는 Agile 방법론을 극혐 했던 1인으로써 (이 방법론이 지향하고자 하는 학술적 의미는 매우 찬성하며 현재는 이 업무 형태를 매우 선호한다.) 20인 이하의 작은 조직에서의 잘못된 Agile 방법론은 그저 여러 명이 모여 주먹구구식의 일을 상의 없이 빠르게 처리하고 잘못되면 다시 빠르게 고쳐내고 (사전 상의와 계획을 통해 스텝을 밟는다기 보다) 그런 일들을 반복하며 부서져 가는 멘탈을 우리의 Agile한 업무처리로 신속하고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고 위안 삼는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지속적이고 임팩트 있게 계획 충인 디자이너에게 쏟아질 경우 온전히 이 모든 재앙을 견뎌낸 몸과 마음은 닳고 닳아 작업물을 만들어내는 창의력은 소진되고 번아웃이 오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스타트업의 디자이너가 겪는 큰 어려움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디자이너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견디는 게 답일까? 아니면 더 이상 의견을 내지 않고 하라는 대로 해야 할까? 내 경험으로 비추어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디자이너의 대부분은 스스로 공부하며 작업하는 자기 동력이 강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쌓아놓은 브랜딩 혹은 디자인 시스템이 회사의 일방적인 방향에 맞춰 전체적으로 갈아 엎어진다고 생각했을 때 오는 좌절감과 허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인 것이다.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하라는 사수가 있는 스타트업은 10에 2 정도… 나머지 8할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주어진 일을 쳐내기 급급하다. 그저 스스로 견뎌내고 다시 힘을 내어 디자인 작업을 진행할 수밖에. 이런 정신적인 충격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나는 완벽함을 빼라고 제안하고 싶다.
지금 내 눈에 완벽해 보여도 시간이 조금 지나 그때의 디자인을 다시 마주했을 때 부족한 부분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즉, 현재도 완벽하지 않으니 너무 완벽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여기서 다시 Agile의 방법론을 받아들이면, 빠르게 완료한 1차 작업물을 테스트하고 다시 수정하여 한 번 더 테스트하고 사용자와 커뮤니케이션하며 완성도를 높여가는 게 시장 흐름과 비지니스 흐름에 가장 적절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처음부터 완벽을 추구하다 보면 시기와 타이밍을 놓쳐 오히려 세상밖에 내놓지 못하는 경우도 흔한 일이다.
디자인이 타 업무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모두가 시각적으로 결과물을 공유할 수 있고 주관적인 코멘트를 달 수 있는 점이다. 여기서 가장 많이들 하는 실수는 ‘오 이거 괜찮다’ 또는 ‘아 이거 좀만 더 이렇게 변형하면 괜찮겠는데?’와 같은 지나가듯 쏟아내는 주관적인 견해들이다. 몇 시간을 언제 솟아날지 모르는 소름 돋는 아이디어를 위해 똥 같은 작업물을 만들고 그 똥을 치우는 작업을 반복적으로 하며 고민을 거듭하던 디자이너에겐 맥 빠지는 또는 알지도 못하면서 또?라는 배타적인 마음만 들게 할 뿐 그 모든 코멘트를 수용한 디자인은 나중에 산으로 으쌰 으쌰 올라가 결과물은 처참하고 비참해질 뿐이다.
대학교 교육에서 가장 많이 트레이닝되었던 부분이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내 아이디어가 이건데 이런 작업을 할 거야,를 교수님에게 또는 동급생들에게 알리고 설득하고 공유하는 일을 가장 많이 했는데 소름 돋게도 이는 사회에 나와서 나의 가장 중요한 스킬 중에 하나가 되었다. 클라이언트 또는 회사의 대표, 동료, 그리고 나 자신까지 내 디자인 아이디어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설득할 수 없다면 당위성 없는 이쁜 쓰레기를 만드는 일에 지나치지 않는다. 물론 이쁜 쓰레기면 다행이다. 대부분은 그냥 쓰레기를 만든다…
관객을 설득하기 위해 내가 만들어낸 모든 장치들이 나중에는 내 디자인의 중심이 되고, 다른 코멘트들이 비수처럼 날아왔을 때 잘 방어된 성벽처럼 그들의 힘없는 코멘트들을 간단하게 쳐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전달하는 언어 능력에 달려있다.
나의 회사는 처음에는 한 명의 디자이너에서 현재는 세명까지 조금씩 규모를 늘려가고 있다. 혼자 디자인을 꾸려가던 게 익숙하던 본인에게 팀을 세팅하고 협업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방법들, 그리고 혼선이 없게 하는 커뮤니케이션이 뭐가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시간들이 꽤 있었다. 본인은 물어볼 사람이 없어 여러 컨퍼런스 또는 해외의 스타트업 사례들을 보며 공부했지만 이 글을 읽는 스타트업 디자이너들이 좀 더 쉽게 원하던 것들을 얻어 갈 수 있도록 앞으로 한 명에서 두 명, 그리고 세명이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어떤 방법 그리고 툴을 활용했는지 함께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