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이직러의 이야기
‘넌 어떻게 전공을 바꾸고 이직을 했어?’ 이런 질문을 주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다. 본인의 전공은 공간 디자인이고 나의 동기들과 같이 인테리어를 업으로 삼아 밥벌이를 했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고 그래픽을 보면 가슴이 떨리는 사람으로 인테리어와는 1도 맞지 않는 사람이 대학교 4년 교육과정을 인테리어에 쏟으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술을 많이 마셨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험난한 사회생활을 경험하며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기까지 약 3년의 시간이 걸렸는데, 이 모든 경험은 내가 스타트업에 왔을 때 빛을 발했다. (앞서 말했듯이 유연한 디자이너의 자질에 참 많은 것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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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UI&UX 디자인을 업으로 삼는 본인에게 주변에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어떻게 공간 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를 시각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로 바꾸었는지?
회사를 고르는 기준은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단기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는지?
이렇게 세 가지가 주로 내게 하는 질문들이었다.
본인은 아직도 매우 부족한 디자이너고 매 순간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공부하는 노력형 사람이다. 단지 포트폴리오를 갈아엎고 다른 업종으로 이직을 하고 싶어 하는 강렬한 소망을 가진 주변인들이 많았고, 본인의 이야기를 해주며 그들을 독려하고 응원할 수 있다는 것에 스스로도 위로받으며 이 글을 보는 절박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브런치를 시작한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전제로 참고해주셨으면 한다.
2016년 내 포트폴리오는 인테리어와 브랜딩으로 당시 UI&UX 디자이너에 적절하지 않은 작업들로 꽉 차있었다. 내가 전공을 바꿔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포트폴리오를 갈아엎어야만 하는 큰 일을 마주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대책 없이 일단 손이 먼저 움직였다 싶기도 하다.
완벽하게 건축 및 인테리어 스타일을 가진 나의 포트폴리오를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Behance와 Pinterest 뿐이었다. 나는 하루 종일 이 두 사이트에 올라와있는 UI 또는 UX가 주제인 포트폴리오와 작업물의 레이아웃을 들여다보며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강점은 무엇일지, 그간의 내 경력을 어떻게 이 포트폴리오에 UI&UX로 녹여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한 일주일 정도를 보냈던 것 같다.
이렇게 글로 써도 답답한 사람은 분명히 있을 거라 예상된다. 왜냐면 내가 그랬으니까. 아무리 주변에 물어봐도 말로 해주는 설명으로는 감조차 잡을 수 없고 깜깜한 어둠을 계속해서 헤매는 느낌만 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부끄러운 내 과거 포트폴리오 예시를 함께 들어주며 (약 6-7년 정도 된…) 구체적인 방향을 어떻게 정했는지 함께 공유하고 싶다. 전공과 포트폴리오를 바꾸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부끄러워 확대할 수 없는 점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기를… 2014년 때 나의 주 무기는 공간 컬러감과 스케치, 그리고 3d max 툴을 기가 막히게 잘 활용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UI&UX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내 무기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있으면 좋은 스킬’에 불과할 뿐.
이와 같이 인테리어 색깔이 너무 강해 어떤 방향으로 바꿔야 할지 감도 안 오는 상황에서 무작정 포트폴리오를 들고 주변에 그래픽 관련된 일을 한다는 사람들은 다 직접 찾아가 조언을 구했던 것 같다. 막상 먹고 살 걱정이 앞서니 자존심도, 부끄러움도, 망설임도 남아있지 않았고 오직 내겐 절박함만 있었다.
그렇게 발품 팔며 조언을 구한 끝에 공통적으로 얻었던 결과는 ‘지금까지의 작업을 모두 버려라’였다. 미대를 진학해 2-3년 정도의 사회생활로 포트폴리오를 어느 정도 정리한 사람은 그때의 나와 아주 유사한 감정을 가지게 될 것이다. ‘여태 쌓아온 내 작업 물들을 다 버리라고..? 어떻게…?’의 고민에서 또 며칠을 헤어 나오지 못했던 것 같다. 결과는 역시 절박함의 승리였다. 나는 내 공간 작업을 다 버리기로 결심했다. 새로운 작업물로 다시 태어나야만 산업 분야를 바꿀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포트폴리오를 갈아엎는 기간은 약 3개월 정도가 걸렸는데 (하루 종일, 눈뜨면 바로 컴퓨터, 잠들 때까지 작업) 정말 지독하게 작업에 몰두했던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작업물을 UI와 결합하면 어떤 앱, 웹의 모습이 나올까를 상상하며 개인 프로젝트하듯이 하나하나 뜯어고치는 작업을 했다.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간 경력이 유일하게 도움이 되었던 건 공간 작업에 브랜딩이 필수였기 때문에 이를 시각화하며 나의 디자이너 재능에 +@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작업물이다.
“그냥 공간 디자인 계속하시지… 왜 굳이 UI 디자인을 하시려고…”
오 신이시여 분노를 억누르게 도와주시옵소서.
1차 작업물을 모든 수단을 이용해 주변 UI 디자이너에게 (대충 팀장 또는 그 정도로 일을 하는) 피드백을 받는 일이었다. 이 단계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더 나은 작업물을 위한 비료를 얻는다는 마음가짐이다. 첫 문장과 같은 비수 같은 피드백이 비처럼 쏟아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존감도 내려가고 자신감도 잃게 되고 정신적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는 이와 같은 분노가 나에겐 큰 교육과 비료가 되었다.
이 모든 단계를 통과한 작업 물들을 들고 원하는 포지션이 존재하는 모든 회사에 지원하고 보는 일이다. 일만 시켜주면 난 뭐든지 잘 해낼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서류를 넣고 면접을 보면 된다. 참고로 나는 100개 이상의 회사에 지원하고 그중 10개 남짓의 회사와 면접을 보았다. 다행히 간절히 원했던 회사들이었고 면접을 진행하는 순간부턴 나에게도 선택권이 넘어오게 되었다. 즉 그때부턴 나와 잘 맞는 회사를 신중하게 고르면 된다는 말이다.
본인은 회사를 고를 때 매우 까다로운 기준으로 고르게 되었는데, 이는 첫 스타트업 회사에서 쌓은 데이터를 가지고 선별하는 기준이었다. 야근과 근본 없는 정치로 닳고 닳은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데 최소 6개월은 걸린 듯하다. (모든 경험은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어느 것 하나 나쁘기만 한 경험은 없다.)
가장 어려운 기준이고, 정말 찾기 힘든 회사다. 말만 번지르르한 회사도 있다.(막상 가보면 디자이너가 필요한지도 모를 정도로 딴판인 곳도 존재한다. 신고각) 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사는 (=) 디자이너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디자이너의 목소리가 많이 반영되고 함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건강한 문화가 존재하는 곳이 많다. 단, 너무 과하면 누가 디자이너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사공이 많아지는 단점이 있을 수도 있다.. 이건 겪어봐야 아는 일. 아니다 싶으면 빠른 손절도 답이다…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면 그에 따른 보상 또한 아끼지 않는다. 보상에는 다양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데 회사 문화, 연봉, 인센티브, 일하는 환경 등 모든 것이 포함될 때가 많다. 대신 많은 보상을 주는 곳은 그에 걸맞은 능력과 책임감을 요구한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Give and Take.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CEO의 경영 철학으로 많은 것이 좌지우지된다. CEO가 대충 그린 비전으로 어찌어찌 굴러가고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지 갈아 엎어질 가능성이 난무한다. 대충 다른 일을 찾아도 되니까. CEO가 비지니스를 얼마나 진지하고 그리고 클리어하게 꿰뚫어 보고 있는지, 향후 어떻게 회사를 살아남게 하고 직원들과 공로를 나눌지에 대한 깊은 고찰이 없는 곳이라면 일단 스킵하는 게 좋다.
스타트업에 들어갈 마음이라면 제일 중요한 기준이다. 향후 2년 정도 사업 성과가 없이도 인건비를 충당할 만큼의 자금이 확보되어있는지? 투자사는 어디인지? 그와 비례하는 내 연봉은 어느 정도 예상하는지? 등 아무리 위 모든 기준을 부합하는 좋은 회사라도 자금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1년 안에 폐업 신청을 한 후 실업급여를 받으며 또다시 이직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다. 여기서 오는 에너지 소비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인생은 실전이다. 따라서 위 모든 스텝을 뚫고 스타트업 취업에 성공했다면 무조건 보고 배우고 해 보고, 닥치는 대로 만들어보는 수밖에. 스타트업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지체되거나 어리바리하다가는 도태되거나 또는 인정받지 못하고 안 좋은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다. 규모가 어느정도 있는 기업처럼 정직원이 된 후 플랜을 짜고, 사수가 있고, 공부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된다면 말이 다르지만 하루아침에도 옆에서 일하던 동료가 갑자기 사라지는 일이 빈번한 스타트업에서는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는 역량이 매우 높게 평가된다.
본인은 스타트업&IT 기사, 디자이너들의 컨퍼런스, 코딩 강의, UI 디자인의 트렌드 등 매년 그리고 몇 달만에 도 빠르게 달라지는 환경들을 익히기 위해 이직 후 3년 정도는 정말 정신없이 보낸 것 같다. 아직도 배울게 너무 많지만 일단 본인 포지션에서 가장 부족한 게 뭔지 객관적으로 판단한 후 그 역량을 채우기 위한 계획을 적극적으로 실행시켜야 한다. 때로는 고통스럽고 IT 관련 기사만 봐도 지긋지긋한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이 모든 걸 묵묵히 견뎌낸 디자이너는 어딜 가도 인정받는 훌륭한 프로 이직러가 되어있을 거라 자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