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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bism Song Jul 02. 2015

예술인가 아닌가(1)

경계의 애매모호..그러나...


다년간 전시를 기획하고 다양한 작가들과 작품들을 접하면서 본인이 항상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은 ‘어디 까지가 예술이라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산업과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존의 방식으로는 도저히 상상 할 수 없었던 새로운 매체들이 등장하고, 이 새로운 매체들은 기존의 다양한 장르의 매체가 결합하여 새로운 ‘예술’ 과 ‘예술작품’이 등장하게 되었다. 또한 예전에는 도저히 예술이라 볼 수 없었던 우리 일상의 아주 소소한 사물까지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있으며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학적, 예술적 가치가 배제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일상을 표현한 작품들이 흔치 않게 미술관과 갤러리에 전시되는 이른바 ‘전통예술개념의 해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나 새로운 매체를 적절히 활용하고 전통적 예술 개념과는 거리가 먼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지금 갓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근 10년간 작품 활동을 한 작가들(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서 아주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작가들은 급속도로 발전되고 생산되는 새로운 매체에 대한 거부감이 없이 이를 습득하는 속도가 아주 빠르고 아주 잘 활용하여 자신의 감성과 경험을 그 안에 녹여내어 새로운 예술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이 모두가 ‘예술’인가 하는 데는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간혹 작가가 가진 본질적인 의식-감성, 스토리, 철학 등의 내면적 의식- 과 작품이 전혀 연결되지 않는 단순히 잘 그린, 잘 만들어진 “물체”만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내면에 깔린 의미가 없는 작품조차 기술적으로 잘 만들어 졌고 혹은 새롭다 해서 이것을 다원화, 다양성이라는 이유로 예술로 보고 아무 문제의식 없이 인정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질문을 해 보아야한다는 것이다.


본인이 전시를 기획하고 작품을 인수 받았을 때 항상 느끼는 점은 여러 작품들 중에서 과연 이것을 ‘예술작품’으로 보아서 갤러리에 전시를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하게하는 작품들이 항상 있었다. 본인이 의문을 갖게 하는 작품들에게서 볼 수 있는 특징은 첫째, 아주 개인적인 경험을 억지스럽게 작품으로 표현 하고 있는 것 둘째, 어떠한 감성과 철학적, 미학적 고찰 없이 기술적인 새로움에 의존하여 내용이 없는 것 셋째, 작가 자체의 감성과 지식과는 너무 거리가 먼 아주 의도적으로 대중에게 잘 어필할 수 있게만 그려진(만들어진) 것들이다. 물론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지극히 본인의 경험과 지식수준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특징을 가진 작품을 전시를 올렸을 때 대중의 반응은 본인의 의구심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대중의 눈은 더욱 날카롭게 작품의 예술성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렇다면 본인을 포함한 대중들이 어떤 작품을 보았을 때 ‘예술인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고 “그렇다”와 “아니다”를 판단하는 기준이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대중들의 판단 기준도 개인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와 깊이의 다름이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보편적으로)’ 인간자체로서 느끼는 감성과 판단에는 어떠한 공통적인 흐름이 있다는 것에는 부정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 기준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날 무엇이든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고 하는 현상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일까? 아무런 생각과 기준 없이 작가 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을 예술작품으로 이해하고 그냥 그렇게 수동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현 시대상황에 맞는 새로운 개념의 미학적 접근 및 해석을 통한 예술의 개념정의를 확립하려는 시도가 필요할 것인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아서 댄토(Arthur Danto)는 오늘날의 예술 상황을 다원주의로 규정하고, 그 근거로 “예술의 종말”을 주장하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예술종말론은 예술의 목표가 더 이상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 도래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그 이전의 예술종말론과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전의 종말론들은 헤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예술의 신성한 과업의 성취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설명하든, 예술의 능력의 고갈로 설명하든 예술의 위기상황을 지적하기 위해서 주장되었다. 이에 반해 댄토는 오늘날의 다원화 상황을 옹호하기 위하여 예술의 종말은 비관적인 상황이 아니라 예술이 비로소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제 자리를 찾게 된 낙관적인 상황을 지적하기 위해서 주장 되었다. 댄토는 그의 예술종말론을 통해서 현 상황에 나타나는 현상들을 이해하고 새롭게 형성되는 예술의 정체성 혹은 개념의 문제들을 해결하려 한다. 이전의 예술의 개념을 “역사-이전”으로 정의하고 현재의 예술의 다양화, 대중화의 현상을 “역사-이후”의 시대로 보고 이 시대에 걸 맞는 미학적, 비평적 고찰에 대한 개념 설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 참고문헌) 미학대계 제3권 현대의 예술과 미학, 서울대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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