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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반전★대리운전 호출남녀가 알고보니 내아내와 상간남

by 아들딸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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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_rpJ_Okh98E&t=11s



저는 지금 중국 칭다오의 한 작은 식당에서 이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께 제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어서요. 제가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살인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살인자나 다름없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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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은 김태준입니다. 올해 서른아홉이고요. 결혼한 지는 이제 막 12년째 접어들었습니다. 아내 혜진이와는 대학교 동아리에서 만났어요. 그때가 2010년 봄이었습니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처음 봤죠. 혜진이는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웃을 때마다 눈이 초승달처럼 예뻤습니다.

저는 그날부터 혜진이한테 반했어요. 공대생 특유의 서툰 방식으로 대시했죠. 매일 아침 커피를 사다 줬고, 과제 도와준다고 도서관에 같이 갔습니다. 3개월을 그렇게 보내고 나서야 혜진이가 제 고백을 받아줬어요.

"오빠, 솔직히 처음엔 별로였어. 근데 오빠가 나한테 하는거 보고 정말 진심이라고 느껴졌어."

그 말이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진심이라는 말. 그게 제 전부였으니까요.

4년을 연애하고 취업과 동시에 결혼했습니다. 2014년 5월이었어요. 혜진이 부모님은 처음에 많이 반대하셨습니다. 혜진이 아버지는 대학교 교수셨고, 어머니는 중학교 교사셨어요. 딸이 잘 살기를 바라셨죠. 그런데 사위 될 사람이 중소기업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이라니 마음에 안 드셨을 겁니다.

"혜진아, 그 남자는 미래가 없어. 네가 고생할 게 뻔해."

혜진이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혜진이가 고집을 부렸습니다.

"아빠, 태준 오빠는 저한테 정말 잘해줘요. 돈은 나중에 벌면 되잖아요."

그 말에 장인어른이 결국 허락하셨죠. 하지만 결혼식 날 장인어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장인어른이 옳았어요.

결혼 초반 5년은 행복했습니다. 아니, 제가 행복하다고 믿었던 시간이었어요. 월급은 적었지만 둘이서 알뜰하게 살았습니다. 혜진이는 출판사에 다녔어요. 편집 일을 했죠. 혜진이 월급까지 합치면 넉넉하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살 만했습니다.

문제는 6년차부터 시작됐어요. 혜진이 친구들이 하나둘씩 좋은 데 시집가기 시작했거든요. 대기업 다니는 남편, 의사 남편, 변호사 남편. 혜진이는 친구 모임에 갈 때마다 기분이 안 좋아 보였습니다.

"오빠, 나 오늘 수진이 만났는데 명품 가방 들고 왔더라."

"그래? 좋겠네."

"수진이 남편은 삼성 다닌대. 연봉이 억대래."

혜진이의 불만은 점점 커졌습니다. 저도 느꼈어요. 제 월급으로는 혜진이가 원하는 생활을 해줄 수 없다는 걸요. 그래서 시작한 게 대리운전이었습니다.

2021년 가을부터 시작했어요. 회사 끝나고 저녁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뛰었습니다. 주말에도 나갔고요. 처음엔 힘들었어요. 하루 종일 일하고 밤늦게까지 운전하니 몸이 피곤했죠. 하지만 한 달에 150만 원 정도 더 벌 수 있었습니다. 적지 않은 돈이었어요.

그 돈으로 혜진이한테 백화점 옷도 사주고, 좋은 식당에도 데려갔습니다. 혜진이는 좋아했어요. 처음에는요.

"오빠, 고마워. 근데 너무 무리하지 마. 건강이 제일 중요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혜진이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대리운전이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점점 더 많은 걸 원했습니다.

"오빠, 이번 달에 친구들이랑 제주도 가기로 했어. 50만 원 정도 필요한데."

"그래, 알았어."

"오빠, 미용실 가야 하는데 염색하면 20만 원 든대."

"응, 해."

저는 혜진이가 원하는 건 다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게 남편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제 몸은 점점 망가졌어요. 만성 피로에 시달렸고, 허리도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24년 12월, 그날이 왔습니다.

그날 아침은 평범했어요. 아니, 평범하다고 믿었습니다. 저는 아침 6시에 일어났습니다. 어젯밤 대리운전을 새벽 2시까지 했으니 겨우 4시간 잔 거였죠. 몸이 무거웠지만 일어나야 했어요. 회사에 가야 하니까요.

혜진이는 아직 자고 있었습니다. 혜진이는 출판사 일을 그만둔 지 2년이 됐어요. 임신이 잘 안 된다는 이유로 회사를 그만뒀죠. 하지만 임신 시도도 별로 안 했습니다. 병원 치료를 받으면 살찐다고 싫어했거든요.

저는 조용히 아침을 준비했습니다. 식빵에 계란 프라이를 해서 먹었어요. 커피를 마시면서 핸드폰으로 뉴스를 봤습니다. 날씨 예보에 오늘 밤 기온이 영하 15도까지 떨어진다고 나왔어요. 올겨울 들어 가장 춥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대리운전 손님이 많겠네.'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추운 날일수록 사람들이 택시나 대리운전을 많이 부르거든요.

7시 30분에 집을 나섰습니다. 혜진이 방문을 살짝 열어봤어요. 혜진이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고 있었습니다. 예쁜 얼굴이었어요. 잘 때는 천사 같았습니다.

'다녀올게.'

속으로 인사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회사는 여의도에 있었어요. 지하철로 1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출근길은 항상 혼잡했죠. 사람들에 치이면서 저는 핸드폰으로 웹툰을 봤습니다. 현실을 잊고 싶었거든요.

회사에 도착해서 오전 내내 업무를 봤어요. 저는 중소기업 자재 구매 팀에서 일했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이었죠. 월급은 세전 350만 원. 세후로 받으면 300만 원 정도였습니다.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식당에 갔습니다. 김치찌개 백반을 먹으면서 동료 김 대리가 말했어요.

"태준 씨, 요즘 얼굴이 왜 그래?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아, 별거 아니야. 요즘 잠을 좀 못 자서."

"건강 챙겨야지. 우리 나이에 건강 잃으면 안 돼."

"그러게. 고마워."

하지만 건강을 챙길 여유가 없었습니다. 저녁에 대리운전을 해야 하니까요.

오후 6시에 퇴근했습니다. 집에 들러 간단히 저녁을 먹었어요. 혜진이가 해놓은 음식은 없었습니다. 급하게 라면을 끓여 먹었죠.

혜진이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노크를 했더니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오빠, 나 오늘 친구들이랑 저녁 약속 있어. 대학 동창 모임."

"그래? 몇 시에 나가?"

"지금 나가야 해. 강남에서 만나기로 했거든."

"알았어. 조심해서 다녀와. 오늘 춥다는데 옷 따뜻하게 입고."

"알았어. 오빠도 조심하고."

문이 열리고 혜진이가 나왔습니다. 화장을 진하게 한 얼굴이었어요. 향수 냄새도 강했습니다. 검은색 원피스에 코트를 입고 있었죠.

"오빠, 나 좀 늦을 것 같아. 송년회 겸 모이는 거라서 끝까지 있어야 할 것 같거든."

"그래, 재미있게 놀다 와. 술 많이 마시지 말고."

"응, 다녀올게."

혜진이가 현관문을 나섰습니다. 저는 빈 집에 혼자 남았어요. 라면을 먹으면서 TV를 봤습니다. 6시 30분이었죠.

7시가 되자 저도 집을 나섰습니다. 대리운전 일을 하러 가야 했으니까요. 저는 항상 강남 쪽에서 일했어요. 콜이 많이 들어오는 지역이었거든요.

저는 지하철을 타고 강남역으로 향했습니다. 역 근처 편의점에서 핫팩과 따뜻한 커피를 샀어요. 그리고 대리운전 앱을 켰습니다. 금요일 저녁이라 콜이 벌써 몇 개 떠 있었죠.

첫 번째 콜은 7시 30분에 왔습니다. 강남역 근처 술집이었어요. 에쿠스를 몰고 온 손님이었죠. 집은 분당이었습니다. 왕복 1시간 반 정도 걸렸어요. 팁으로 만 원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 콜은 9시에 왔습니다. 이번에는 역삼동 고급 레스토랑이었어요. 벤츠 E클래스였죠. 손님은 중년 부부였고, 집은 서초동이었습니다. 30분 정도 걸렸어요.

세 번째 콜을 기다리면서 저는 편의점 앞에 서 있었습니다. 바람이 차가웠어요. 정말 날씨 예보대로 영하 15도는 되는 것 같았습니다. 손이 시려서 주머니에 넣고 있었죠.

9시 50분쯤,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새로운 콜이었어요.

강남역 3번 출구 근처, 소문난 고깃집. 제네시스 G80. 목적지는 미정.

괜찮은 콜이었습니다. 제네시스면 팁도 잘 주는 편이거든요. 저는 콜을 잡았습니다.

고깃집까지는 걸어서 5분 정도였어요. 저는 서둘러 걸어갔습니다. 고깃집 앞에 도착하니 은색 제네시스 G80이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새 차였어요. 번호판에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습니다.

'돈 좀 있는 사람이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깃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안녕하세요, 대리운전입니다."

주인 아저씨가 안쪽을 가리켰어요.

"아, 네. 저기 룸에 계세요. 들어가 보세요."

저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안쪽으로 걸어갔습니다. 복도 끝에 룸이 하나 있었어요. 문이 반쯤 열려 있었죠. 안에서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문을 노크했습니다.

"대리운전입니다."

"아, 네! 들어오세요!"

남자 목소리였어요. 저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제 세상이 멈췄습니다.

룸 안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어요. 한 명은 낯선 남자였고, 다른 한 명은... 제 아내 혜진이었습니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숨이 막혔어요. 다리에 힘이 풀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했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였거든요. 대리운전할 때 항상 그렇게 하니까요.

혜진이는 완전히 취해 있었습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눈은 초점이 없었어요. 테이블 위에는 빈 소주병이 다섯 개나 있었습니다. 맥주병도 여러 개 보였죠.

남자도 비슷한 상태였습니다. 3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어요. 키는 저보다 작았지만, 옷차림새는 고급스러웠습니다. 명품 시계를 차고 있었고, 정장도 비싸 보였어요.

둘은 서로에게 기대 앉아 있었습니다. 남자의 팔이 혜진이 어깨에 걸쳐져 있었어요.

제 손이 떨렸습니다. 주먹을 꽉 쥐었죠. 하지만 참았습니다. 감정을 억눌렀어요.

"대리운전 기사입니다. 호출하신 분 맞으신가요?"

남자가 손을 흔들었습니다.

"네, 네! 여기요! 빨리 가요. 우리 급해요."

급하다는 말에 저는 이를 악물었습니다. 왜 급한지 뻔했으니까요.

혜진이는 저를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아니, 쳐다봤는데 못 알아본 거였어요. 술에 너무 취했고, 제가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렸으니까요.

"어디로 모실까요?"

"음... 일단 역삼역 쪽으로 가요. 가다가 말씀드릴게요."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일어나실 수 있으세요?"

"아, 네. 혜진아, 일어나. 가야 해."

남자가 혜진이를 일으켰습니다. 혜진이는 비틀거렸어요. 저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혜진이를 잡았습니다. 12년 동안 함께 산 아내였으니까요.

혜진이의 팔을 잡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습니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배신감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어요.

하지만 저는 목소리를 가라앉혔습니다.

"천천히 나가시죠.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저는 혜진이와 남자를 부축해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고깃집 주인 아저씨가 말했어요.

"손님들 많이 취하셨네요. 조심히 모셔다 드려요."

"네, 걱정 마세요."

밖에 나오니 바람이 얼음장처럼 차가웠습니다. 혜진이가 몸을 떨었어요.

"추워... 너무 추워..."

남자가 혜진이를 껴안았습니다.

"괜찮아, 금방 따뜻한 데 갈 거야."

저는 두 사람을 차로 데려갔습니다. 뒷문을 열고 혜진이를 안쪽에 앉혔어요. 남자도 비틀거리면 뒷좌석에 탔습니다.

저는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습니다. 손이 떨렸어요.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니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습니다.

룸미러로 뒷좌석을 봤습니다. 혜진이가 눈을 감고 축 늘어져 있었어요. 12년 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밝은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출발하겠습니다."

저는 가능한 한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강남역 주변은 금요일 밤이라 차들로 붐볐어요. 저는 조심스럽게 운전했습니다.

신호등에 걸렸습니다. 빨간 불이었어요. 저는 다시 룸미러를 봤습니다.

남자가 혜진이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하고 말했습니다.

"혜진아, 괜찮아?"

"응... 어지러워... 토할 것 같아..."

"조금만 참아. 금방 도착할 거야."

"고마워, 준혁아..."

준혁.

그 이름을 듣는 순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혜진이가 몇 달 전에 했던 말이었어요.

"오빠, 나 다음 주에 대학 동창 모임 있어. 준혁이가 한국 들어왔대. 얘 미국에서 사업한다며? 완전 대박 났다던데."

그때는 별생각 없었습니다. 그냥 친구 모임이려니 했죠. 하지만 지금 보니 아니었습니다.

신호등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액셀을 밟았어요.

뒷좌석에서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준혁아, 오늘 정말 재미있었어."

"나도. 혜진이랑 있으니까 시간 가는 줄 몰랐어."

"우리 언제 또 만날 수 있어?"

"다음 주에 또 보자. 내가 시간 비워둘게."

"좋아..."

두 사람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저는 다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운전석과 뒷좌석이 그리 멀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이를 악물었습니다. 턱에 힘이 들어갔어요.

조수석의 준혁이 말했습니다.

"기사님, 근처 제일 가까운 모텔로 가주세요. 깔끔한 데로요. 아시죠?"

제 손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핸들을 꽉 쥐었어요. 손가락 마디에서 뚝뚝 소리가 났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저는 간신히 대답했습니다.

뒷좌석에서 혜진이가 중얼거렸어요.

"준혁아... 나 진짜 취했어. 머리 너무 아파."

"괜찮아, 혜진아. 조금만 참아. 거기 가서 쉬면 돼."

"응... 고마워."

신호등이 또 걸렸습니다. 저는 룸미러로 뒷좌석을 다시 봤어요.

남자가 혜진이를 껴안고 있었습니다. 혜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혜진아, 나 아내랑 이혼할 거야."

혜진이가 눈을 떴습니다. 취했지만 그 말에는 반응하더군요.

"진짜? 준혁아, 거짓말 아니지?"

"진짜야. 이미 변호사랑 상담도 했어. 다음 달이면 정리될 거야."

"오빠... 정말?"

"응. 혜진이랑 정식으로 만나고 싶어. 더 이상 이렇게 숨어서 만나기 싫어."

혜진이가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나도 이혼하고 싶어. 진짜로. 태준이는 좋은 사람이긴 한데..."

제 이름이 나왔습니다. 혜진이 입에서.

"...돈을 너무 못 벌어. 대리운전까지 뛰는 거 보면 불쌍하기도 하고. 근데 나도 내 인생이 있잖아.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어."

불쌍하다. 그 단어가 제 가슴을 찔렀습니다.

"대리운전? 와, 힘들겠네. 요즘 시대에 그렇게 살아서 집이나 한 채나 마련하겠어?"

"그니까. 솔직히 좀 창피해. 친구들 만나면 남편 직업 물어보잖아. 그럴 때마다 애매하게 얼버무리게 돼."

창피하다.

저는 혜진이한테 창피한 존재였습니다.

"근데 걔 눈치 안 챌까? 우리 만나는 거."

"괜찮아. 걔는 매일 밤 나가서 일하느라 바빠. 나한테 관심도 없어. 돈 벌어 오는 것만 생각해."

저는 핸들을 더 세게 쥐었습니다. 손가락이 아팠어요. 하지만 그 육체적 고통이 오히려 정신을 차리게 해줬습니다. 저는 그 순간 결심했습니다.

신호등이 바뀌었고 저는 액셀을 밟았어요. 하지만 역삼역 쪽이 아니라 반대 방향으로 핸들을 꺾었습니다.

"기사님, 어디 가세요? 방향이 반대인데요?"

준혁이 물었습니다.

저는 침착하게 대답했어요.

"아, 죄송합니다. 지금 이쪽이 막혀서요. 이쪽으로 돌아가는 게 더 빠릅니다."

"그래요? 기사님이 잘 아시겠죠."

"네, 걱정 마세요. 빨리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저는 차를 몰았습니다. 강남을 벗어나 동쪽으로 향했어요. 뒷좌석에서는 계속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혜진아, 우리 만난 지 얼마나 됐지?"

"음... 6개월?"

"나 이제 혜진이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진짜로."

"나도 그래..."

6개월.

혜진이는 6개월 동안 저를 속였습니다. 그동안 저는 매일 밤 대리운전을 뛰었어요. 혜진이를 위해서요. 손이 부들부들 떨려 핸들을 놓칠 것 같았지만 있는 힘을 다해 정신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차는 점점 외곽으로 향했습니다. 도심의 불빛이 사라지고, 주변이 어두워졌어요.

"기사님, 여기 어디예요? 너무 외진 것 같은데요."

준혁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조금만 더 가시면 됩니다. 제가 아는 좋은 곳이 있어요."

"그래요? 빨리 가주세요."

"네."

저는 계속 운전했습니다. 이제 완전히 외곽이었어요. 가로등도 없고, 다른 차도 거의 없었습니다.

뒷좌석에서 혜진이가 중얼거렸습니다.

"준혁아... 배고파..."

"조금만 참아. 거기 가서 시켜 먹자."

"응..."

혜진이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습니다. 잠이 드는 것 같았어요.

준혁도 고개를 떨구고 있었습니다. 술에 취해 정신이 몽롱한 모양이었죠.

저는 경기도 광주시 방향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그곳에는 깊은 산이 있었거든요. 대리운전하면서 몇 번 가본 적이 있었어요.

30분쯤 더 갔을까요. 이제 완전히 산속이었습니다. 포장도로도 끝나고, 비포장 산길로 접어들었어요.

차가 덜컹거렸습니다. 준혁이 깜짝 놀라 눈을 떴어요.

"여기... 여기 어디예요?!"

"조용히 하세요. 금방 도착합니다."

"무슨 소리예요?! 당장 차 세워요!"

저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계속 운전했어요.

"야! 차 세우라고!"

준혁이 제 어깨를 잡았습니다. 저는 그 손을 뿌리쳤어요.

"손 떼세요."

제 목소리가 낮았습니다. 평소와 달랐죠. 준혁이 움찔했어요.

뒷좌석에서 혜진이가 중얼거렸습니다.

"준혁아... 무슨 일이야..."

"혜진아, 이 사람 이상해!"

차는 계속 산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5분쯤 더 갔을까요. 저는 차를 세웠습니다. 완전히 인적이 없는 곳이었어요. 주변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나무들만 빼곡히 들어서 있었습니다.

저는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바깥 공기가 얼음장처럼 차가웠어요. 입김이 하얗게 나왔습니다. 손이 금방 시려왔죠.

저는 핸드폰으로 날씨를 확인했습니다. 영하 15도. 체감온도는 영하 20도였어요.

뒷좌석 문을 열었습니다. 준혁이 겁에 질린 얼굴로 저를 봤어요.

"당신... 뭐 하는 거예요?"

저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천천히 마스크를 벗었어요. 그리고 모자도 벗었습니다.

준혁이 제 얼굴을 봤습니다. 하지만 저를 모를 거예요. 처음 보는 사람이니까.

"내려요."

"뭐... 뭐라고요?"

"내리라고요."

저는 차갑게 말했습니다. 준혁이 몸을 떨었어요. 추위 때문인지, 공포 때문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여기가 어딘데요?! 왜 이래요?!"

저는 준혁의 멱살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차 밖으로 끌어냈어요. 준혁이 비명을 질렀습니다.

"아악! 놔! 놔요!"

저는 준혁을 눈 쌓인 바닥에 내팽개쳤습니다. 준혁이 엉덩방아를 찧었어요.

뒷좌석에 혜진이가 완전히 잠들어 있었어요.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거였죠.

저는 혜진이를 보았습니다. 12년 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얼굴. 하얀 원피스를 입고 웃던 그 모습. 초승달 같은 눈.

하지만 지금 제 앞에 있는 건 배신자였습니다.

저는 혜진이를 끌어냈습니다. 조심스럽게요. 아직도 제 손은 떨렸으니까요.

혜진이를 눈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혜진이가 추운지 몸을 움츠렸지만, 눈은 뜨지 않았어요.

준혁이 소리쳤습니다.

"당신 미쳤어?! 여기가 어딘지 알아?! 사람 죽이려고?!"

저는 준혁을 봤습니다.

"두 분이 사랑한다며? 그럼 이 정도는 함께 이겨낼 수 있겠죠."

"이 자식이!"

준혁이 달려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피했어요. 그리고 준혁의 가슴을 밀었습니다. 준혁이 뒤로 넘어졌죠.

저는 차에 다시 올라탔습니다.

준혁이 차 문을 잡았습니다.

"야! 이 새끼! 문 열어!"

저는 시동을 걸었습니다.

"문 열라고!"

저는 액셀을 밟았습니다. 차가 천천히 움직였어요. 준혁이 차에 매달렸지만, 곧 놓쳤습니다.

"야아아악!"

준혁의 비명이 점점 멀어졌습니다.

저는 룸미러로 뒤를 봤어요. 어둠 속에 두 사람이 눈 위에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곧 완전히 사라졌죠.

저는 산길을 빠져나왔습니다.

손이 떨렸어요. 온몸이 떨렸습니다. 하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어요.

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악몽 같았습니다. 핸들을 잡은 손이 계속 떨렸어요. 정신이 혼미했습니다. 방금 제가 뭘 한 건지 믿기지 않았거든요.

영하 15도. 아니, 체감온도 영하 20도.

그 추위 속에 두 사람을 버리고 왔습니다.

저는 차를 세웠습니다. 산길 중간쯤이었어요. 손이 너무 떨려서 더 이상 운전할 수 없었습니다.

핸들에 머리를 기댔습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어요.

'돌아가야 하나? 아니, 돌아가면 안 돼. 그럼 내가 뭐가 되는 거야?'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온갖 생각이 뒤엉켰어요.

'혜진이가... 혜진이가 날 배신했어. 6개월 동안. 내가 대리운전 뛰는 동안.'

분노가 다시 치밀어 올랐습니다.

'창피하다고? 나한테? 내가 누구 때문에 대리운전 뛰는데?'

주먹으로 핸들을 쳤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손이 아팠지만 계속 쳤어요. 그래야 이 분노를 삭일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10분쯤 지났을까요. 저는 다시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산을 완전히 내려왔어요.

시간은 자정이 넘었습니다. 12시 40분이었어요.

저는 강남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제네시스를 원래 있던 고깃집 앞에 주차했어요. 그리고 차 안을 훑어봤습니다. 제 흔적이 있는지 확인했죠.

다행히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대리운전 기사였고, 장갑을 끼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차에서 내려 문을 잠갔습니다. 그리고 고깃집 앞 우체통에 차 키를 넣었어요.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CCTV가 있었지만 저는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보이지 않을 거예요.

저는 지하철역으로 걸어갔습니다. 마지막 전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전철 안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사람이 별로 없었죠.

저는 구석 자리에 앉았습니다. 창밖을 봤어요. 어둠만 보였습니다.

'혜진이는... 괜찮을까?'

그 생각이 스쳤습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어요.

'아니야. 걔네가 알아서 하겠지. 핸드폰도 있고, 깨어나면 119에 전화하면 돼.'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습니다.

'술에 취해서... 깨어나지 못하면?'

그 생각을 하자 식은땀이 났습니다.

'아니야. 괜찮을 거야. 추우면 깨어날 거야.'

저는 스스로를 안심시켰습니다.

집에 도착한 건 새벽 1시 30분이었어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집은 텅 비어 있었어요. 어둡고 조용했습니다.

거실 불을 켰습니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어요.

지금 제가 뭘 한 건지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핸드폰을 꺼냈습니다. 혜진이한테 전화할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뉴스를 검색했습니다. 혹시 사고 소식이 있나 해서요.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당연했죠. 아직 아무도 모를 테니까.

저는 샤워를 했습니다. 뜨거운 물로 온몸을 씻었어요. 하지만 죄책감은 씻겨 나가지 않았습니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눈을 감으면 혜진이가 보였어요. 눈 위에 누워 있는 혜진이.

'일어나. 일어나서 119에 전화해.'

저는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하지만 불안감은 점점 커졌습니다.

새벽 3시, 4시, 5시.

시간은 흘러갔지만 저는 한숨도 잘 수 없었어요.

새벽 6시쯤, 저는 일어나 거실로 나갔습니다. TV를 켰어요. 뉴스 채널로 돌렸습니다.

아직 아무 소식도 없었습니다.

'다행이야. 아직 발견 안 된 거야. 그럼 둘이 깨어나서 나왔을 수도 있어.'

저는 스스로를 안심시켰습니다.

하지만 7시가 되자 뉴스 속보가 떴습니다.

"경기도 광주시 한 야산에서 남녀 2명 변사체 발견"

제 손에서 리모컨이 떨어졌습니다.

화면에 나온 장소가 보였어요. 제가 어젯밤에 갔던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오늘 새벽 6시경, 경기도 광주시 한 야산에서 30대 남녀 2명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등산객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으며, 경찰은 두 사람이 술에 취해 길을 잃고 헤매다가 동사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화면에 현장 영상이 나왔어요. 눈 쌓인 산. 경찰 차량. 그리고 하얀 천으로 덮인 두 구의 시신.

"사망자는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30데 이씨와 김씨로 37세로 확인됐습니다. 경찰은 두 사람이 어제 저녁 강남에서 술을 마신 후 이곳까지 온 경위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김씨. 제 아내일 터였습니다.

심장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온몸에서 힘이 빠졌어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죽었어... 혜진이가... 죽었어...'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뉴스는 계속됐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어젯밤 기온이 영하 15도까지 떨어진 점을 고려할 때, 술에 취한 상태에서 추위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저는 화면을 멍하니 봤습니다. 믿기지 않았어요.

'내가... 내가 죽인 거야...'

손이 떨렸습니다. 온몸이 떨렸어요.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어머니였어요.

저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보세요..."

"태준아..."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습니다.

"혜진이가... 혜진이가..."

"네... 어머니... 뉴스 봤어요..."

"경찰한테 연락 왔어... 혜진이가 어젯밤에 사고를... 태준아, 이게 무슨 일이니..."

어머니가 우셨습니다.

"어머니... 제가... 제가 지금 가겠습니다..."

저는 전화를 끊고 옷을 입었습니다. 손이 떨려서 단추를 끼우기도 힘들었어요.

경찰서로 가야 했습니다. 신원 확인을 해야 했으니까요.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 9시였습니다. 어머니가 먼저 와 계셨어요. 눈이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태준아..."

어머니가 저를 보자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안아드렸어요.

"어머니... 죄송합니다..."

"무슨 소리니... 네 잘못이 아니잖니..."

하지만 제 잘못이었습니다. 제가 두 사람을 그곳에 버렸으니까요.

경찰관이 나왔습니다.

"유족분이신가요?"

"네... 저는 김혜진의 남편 김태준입니다."

"아, 네. 신원 확인 부탁드립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저는 경찰관을 따라 갔습니다. 영안실이었어요.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때렸습니다.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죠.

경찰관이 하얀 천을 들어 올렸습니다.

혜진이가 누워 있었습니다.

얼굴은 창백했어요.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습니다. 눈은 감겨 있었죠.

마치 잠든 것 같았습니다.

"신원 확인 가능하신가요?"

"네... 제 아내 김혜진 맞습니다..."

제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경찰관이 천을 다시 덮었습니다.

"유족분께는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경찰관이 말했습니다.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습니다. 사무실로 가시죠."

사무실에서 경찰관이 질문했습니다.

"고인께서 어제 저녁 어디 가신다고 하셨나요?"

"대학 동창 모임이라고 했습니다."

"몇 시쯤 나가셨나요?"

"저녁 6시 30분쯤요."

"혹시 같이 가신 분들 연락처 아시나요?"

"아니요. 잘 모릅니다. 제 아내가 그런 얘기를 잘 안 해서요."

경찰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했습니다.

"현장 상황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어제 밤 고인과 이준혁 씨는 강남역 근처 고깃집에서 술을 드신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고깃집 주인 진술에 따르면 두 분이 상당히 취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네..."

"그리고 밤 10시쯤 대리운전을 불렀습니다. 고깃집 앞에 이준혁 씨 명의의 제네시스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었거든요."

저는 숨을 죽였습니다.

"대리운전 기사가 두 분을 어디론가 모셨을 텐데, 이상하게도 차량은 다시 고깃집 앞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차 키는 근처 우체통에서 발견됐고요."

"그게... 무슨 뜻인가요?"

"저희도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대리운전 기사가 두 분을 목적지까지 모셔드린 후, 차를 다시 원위치로 가져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리운전 기록이 없어요. 정식으로 앱을 통해 부른 게 아니라 콜택시나 비인가 대리운전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

"그리고 두 분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경기도 광주시 야산까지 가셨습니다. 거기서 차에서 내리셨고... 아마 화장실을 찾으시다가 길을 잃으신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어젯밤 기온이 영하 15도까지 떨어졌습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는 추위를 제대로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경찰관이 말을 흐렸습니다.

"두 분 모두 저체온증으로 사망하셨습니다. 부검 결과 다른 외상은 없었습니다. 순수하게 추위로 인한 사망이에요."

"네..."

"혹시 고인께서 평소에 이준혁 씨와 친분이 있으셨나요?"

"대학 동창이라고 들었습니다. 가끔 모임에서 만난다고요."

"그렇군요. 이준혁 씨는 결혼하신 분이던데, 부인분도 있으셨습니다."

"네..."

"두 분 사이에 특별한 관계는 없으셨나요?"

그 질문에 저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말해야 하나? 아니면...'

하지만 말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제 아내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은 없어요."

"알겠습니다. 현재로서는 대리운전 기사를 찾는게 급선무입니다. CCTV를 확인했는데, 안타깝게도 고깃집 주변 CCTV가 강추위로 오작동을 일으켜 녹화가 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어요.

"일단 일대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탐문수사를 통해 용의자를 특정하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네... 알겠습니다..."

경찰서를 나와 어머니와 함께 장례식장으로 갔습니다. 혜진이 부모님도 와 계셨어요.

장모님이 저를 보자 울면서 말씀하셨습니다.

"태준아... 우리 혜진이가... 우리 딸이..."

"죄송합니다, 어머니..."

"그 애가... 그 애가 왜 그런 데를 갔는지..."

장인어른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딸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고 계셨죠.

장례는 3일장으로 치렀습니다. 조문객들이 왔어요. 혜진이 친구들, 친척들.

다들 안타까워했습니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술 조심해야 하는데..."

"요즘 대리운전 기사들도 문제야..."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조문객들을 맞이했어요.

장례식이 끝나고 이틀째 되던 날, 한 여자가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30대 후반쯤 되어 보였어요. 눈이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실례지만... 김혜진씨의 남편분이신가요?"

"네, 제가 남편입니다."

"저는... 이준혁의 아내 김미선입니다."

순간 숨이 막혔습니다.

준혁의 아내.

"아... 네... 여긴 어떻게..."

"남편 일로...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저희야말로..."

김미선 씨는 이준혁 차량의 내비게이션에서 우리집의 주소를 찾았다고 했습니다. 자주가는 목적지가 바로 이곳이었다면서요.

그리고 저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될까요?"

"네..."

"혹시... 혜진 씨와 제 남편이... 특별한 관계였나요?"

그 질문에 저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지..."

"남편 핸드폰을 봤습니다. 혜진 씨와 나눈 문자들... 통화 기록들... 그리고 호텔 영수증들..."

김미선 씨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6개월 전부터였더군요. 제 남편이... 혜진 씨와..."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도... 최근데 알았습니다. 대리운전을 하다가..."

"그렇군요..."

김미선 씨가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아이러니하네요. 두 사람 다 배우자를 속이고... 그리고 함께 죽었네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슬프지 않아요. 오히려 후련합니다. 이제 이혼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김미선 씨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습니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그녀가 떠난 후, 저는 주저 앉고 말았습니다.

'혜진아... 왜 그랬어... 왜...'

눈물이 났습니다. 처음으로요.

슬픔인지, 분노인지, 죄책감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아마 다 섞여 있었을 거예요.

모든 게 끝났습니다.

텅 빈 집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켰습니다. 뉴스가 나왔어요.

"지난 주말 경기도 광주시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남녀 2명에 대한 경찰 조사가 CCTV 확보에 난항을 겪으면서 사건은 미궁속에 빠지고 있습니다. ."

미궁속으로...

안도감이 채 들기도 전에 그날 밤부터 악몽이 시작됐습니다.

꿈에서 혜진이가 나타났어요. 눈 쌓인 산에서 제게 손을 뻗었습니다.

"태준아... 추워... 너무 추워..."

저는 손을 뻗었지만 혜진이에게 닿지 않았어요.

"태준아... 왜... 왜 날 버렸어..."

"미안해... 미안해..."

"차가워... 너무 차가워..."

혜진이의 얼굴이 파랗게 변했습니다. 입술이 얼어붙었어요. 눈에서 눈물이 얼음이 되어 흘러내렸습니다.

"태준아... 살려줘..."

저는 비명을 지르며 깼습니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어요.

이런 악몽이 매일 밤 반복됐습니다.

2주가 지났습니다.

저는 회사에 복직했어요. 하지만 일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동료들이 걱정했습니다.

"태준 씨, 괜찮아요? 많이 힘드시죠?"

"네... 괜찮습니다..."

하지만 괜찮지 않았습니다.

밤에는 잠을 잘 수 없었고, 낮에는 혜진이 생각뿐이었어요.

그리고 죄책감.

끊임없는 죄책감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한 달이 지났을 때, 저는 결심했습니다.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한국에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으니까요.

저는 회사에 사직서를 냈습니다. 상사가 놀라서 붙잡았지만 저는 단호했어요.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태준 씨, 부인 돌아가신 거 저희도 알아요. 하지만 여기서 일하면서 마음을 추스르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아니에요. 저는 떠나야 합니다."

결국 퇴사했습니다.

어머니께 말씀드렸어요.

"어머니, 저 잠깐 외국에 다녀올까 합니다."

"외국? 어디?"

"중국이요. 대학 친구가 칭다오에서 식당하는데, 거기 가서 일 좀 배우고 올게요."

어머니는 잠시 망설이시더니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래... 그것도 좋겠구나. 여기 있으면 혜진이 생각나서 힘들 테니."

"네. 그리고 어머니는 고모네 가서 계세요. 제가 중국에서 돈 벌어서 모셔올게요."

"알았다, 아들. 조심해서 다녀와라."

하지만 저는 돌아올 생각이 없었습니다.

저는 칭다오에 있는 친구 민수에게 전화했습니다.

"민수야, 나 좀 도와줘."

"태준아? 무슨 일이야? 목소리가 왜 그래?"

"나... 한국 떠나고 싶어."

"왜? 무슨 일 있었어?"

"말 못 해. 그냥... 여기 있기 힘들어."

민수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습니다.

"알았어. 우리 식당에서 일할래? 중국어 배우면서."

"정말 그래도 돼?"

"그래. 언제든 와. 내가 도와줄게. 근데 태준아, 너 무슨 일 있었지? 목소리가 심상치 않아."

"나중에 얘기할게. 고마워."

하지만 합법적으로 중국에 가면 기록이 남습니다. 만약 나중에 경찰이 의심하면 추적할 수 있죠.

저는 불법적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인터넷에서 밀항 브로커를 찾았어요. 어렵지 않았습니다. 다크웹에 들어가니 여러 업체가 있었죠.

한 브로커에게 연락했습니다.

"중국 칭다오까지 갈 수 있나요?"

"가능합니다. 비용은 500만 원입니다."

"언제 출발하나요?"

"다음 주 화요일. 인천항에서 출발합니다."

"알겠습니다."

저는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했습니다. 500만 원. 그리고 추가로 1,000만 원을 더 인출했어요. 중국에서 쓸 돈이었습니다.

출발 전날, 어머니를 고모 댁에 모셔다 드렸습니다.

"태준아, 몸 조심해라. 그리고 너무 힘들어하지 마. 혜진이도 하늘에서 네가 행복하길 바랄 거야."

"네, 어머니. 부디 몸조심하세요."

저는 어머니를 끌어안았습니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음 날, 저는 인천항으로 갔습니다. 브로커가 알려준 장소였어요.

낡은 창고 같은 곳이었습니다. 안에는 저 말고도 5명 정도가 더 있었어요. 다들 각자의 사연이 있어 보였습니다.

브로커가 나타났습니다.

"돈 준비했습니까?"

"네. 여기있습니다."

저는 현금 뭉치를 건넸습니다. 브로커가 세어보고 고개를 끄덕였어요.

"좋습니다. 배는 밤 11시에 출발합니다. 그때까지 여기서 대기하세요."

밤 11시, 작은 화물선이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배의 화물칸에 숨었어요.

좁고 어두웠습니다. 공기도 탁했죠.

배가 출발했습니다.

저는 어둠 속에 앉아 생각했습니다.

'이제 돌아갈 수 없어. 나는 도망자야.'

배는 3일 동안 항해했습니다. 그동안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어요.

마침내 3일 후, 배가 멈췄습니다.

"도착했습니다. 칭다오입니다."

우리는 몰래 배에서 내렸습니다. 새벽 4시였어요. 항구는 조용했죠.

저는 민수에게 전화했습니다.

"민수야, 나 도착했어."

"어디야? 지금 마중 나갈게."

30분 후, 민수가 차를 몰고 왔습니다. 저를 보자 놀란 표정을 지었어요.

"태준아, 너 얼굴이 왜 그래? 완전 해쓱해졌잖아."

"나중에 얘기할게. 일단 네 집으로 가자."

민수는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민수 집에 도착해 샤워하고 밥을 먹었습니다. 3일 만에 제대로 된 식사였어요.

"태준아, 무슨 일 있었어? 솔직히 말해봐."

저는 망설이다가 모든 것을 말했습니다. 혜진이의 외도, 그날 밤 일어난 일, 그리고 두 사람의 죽음.

민수는 충격받은 표정으로 저를 봤습니다.

"그러니까... 너가 두 사람을 산에 버렸고, 그래서 죽었다는 거야?"

"응..."

"태준아... 그건..."

"나도 알아. 내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야."

민수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한숨을 쉬었어요.

"힘들었겠다. 정말로."

"응..."

"알았어. 여기서 숨어 지내. 내가 도와줄게."

"고마워, 민수야."

"그런데 태준아, 한국 경찰이 수배령 내리면 어떡하려고?"

"경찰은 나를 의심하지 않아. 하지만... 나는 여기서 새로 시작하고 싶어."

"알았어. 우리 식당에서 일해. 중국어도 배우고."

그렇게 저는 칭다오에서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6개월은 정말 힘들었어요. 중국어도 못 하고, 문화도 달랐으니까요.

하지만 민수가 많이 도와줬습니다. 중국어를 가르쳐주고, 식당 일도 알려줬어요.

저는 하루 12시간씩 일했습니다. 그래야 혜진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요.

1년이 지났습니다.

중국어도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됐어요. 식당 일에도 익숙해졌고요.

어느 날, 한 여자 손님이 왔습니다. 리메이라는 이름의 중국 여자였어요.

"맛있어요, 사장님. 한국 음식 정말 좋아요."

"감사합니다."

리메이는 단골이 됐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씩 왔어요.

그리고 6개월 후, 리메이가 제게 고백했습니다.

"사장님, 나... 사장님 좋아해요."

저는 놀랐습니다.

"저는... 저는 사연이 많은 사람이에요."

"알아요. 사장님 눈에 슬픔이 있는 거. 근데 괜찮아요. 나는 기다릴 수 있어요."

리메이는 착한 여자였습니다. 순수하고 밝았어요.

저는 고민했습니다. 다시 사랑할 자격이 있는지.

하지만 외로웠습니다. 곁에 있어줄 사람이 필요했어요.

결국 저는 리메이와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1년 후, 우리는 조촐하게 결혼했어요.

그리고 또 1년 후,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한중이라고 이름 지었어요.

어머니도 칭다오로 모셔왔습니다.

"태준아, 여기 살기 좋구나. 공기도 맑고."

"네, 어머니."

"리메이도 좋은 아이고. 손주도 귀엽고. 엄마는 이제 아무 걱정 없다."

그로부터 5년이 더 지났습니다.

저는 여전히 칭다오에서 식당을 하고 있어요. 장사는 잘됩니다. 지점도 두 개 더 냈어요.

리메이와는 여전히 사이좋게 지냅니다. 리메이는 제 과거를 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 그냥 지금의 저를 사랑해준다고 합니다.

아들 한중이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한국어와 중국어를 둘 다 잘해요.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저는 가끔 생각합니다.

만약 그날 밤,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후회해봤자 소용없으니까요.

다만 죄책감은 여전합니다.

매년 12월이 되면 악몽이 되살아납니다. 눈 쌓인 산, 그곳에 누워 있는 혜진이.

그럴 때마다 저는 술을 마십니다. 취해서 잠들 때까지요.

리메이는 그런 저를 그냥 안아줍니다.

"괜찮아요. 다 지나갈 거예요."

하지만 지나가지 않습니다. 평생 가지고 갈 짐이에요.

저는 아직도 혜진이를 꿈에서 봅니다.

"태준아... 추워... 너무 추워..."

그 목소리가 평생 제 귀에 맴돌 겁니다.

이것이 제 벌입니다.

저는 이 벌을 받아들이고, 매일 속죄하며 살고 있습니다.

아들 한중이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리메이에게 좋은 남편이 되려고 합니다.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니까요.

자, 이제 저는 식당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오늘도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행복하세요, 여러분.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사연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오디오북으로 정성스레 만들어 드립니다.

좋아요와 구독은 큰 힘이 됩니다. 오늘도 좋은하루 보내세요. 내일 오후 세시에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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