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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스카프 사건으로 뺨 맞고 쫓겨난 65세 시어머니

by 아들딸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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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gLmEAnm99MA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 수원에서 30년 넘게 살아온 75세 이순자입니다.

2024년 5월 5일 어린이날, 제 아들 집에서 저는 뺨을 맞았습니다. 그것도 며느리한테요. 이유가 뭔지 아세요? 제가 며느리 스카프를 세탁기에 넣어서 빨았다고요.

그날 오전 10시, 저는 아들 민수네 집에 갔습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42평 아파트였어요. 아들이 결혼하고 5년 만에 처음 초대받은 날이었어요. 며느리 지혜가 그동안 바빠서 시어머니 모시기 힘들다고 계속 미뤘거든요.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까 거실이 엄청 깔끔하더라고요. 하얀 대리석 바닥에 이탈리아산 가구, 벽에는 그림들이 걸려 있었어요. 며느리가 인테리어 디자이너라서 집이 잡지에 나올 것처럼 예쁘게 꾸워져 있었죠.

"어머님 오셨어요?"

며느리가 반갑지 않은 표정으로 맞았어요. 저는 가방에서 수원 시장에서 산 LA갈비 5킬로그램을 꺼냈어요.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거였거든요.

"민수가 좋아하는 갈비 사왔어. 오늘 저녁에 구워 먹으면 되겠다."

며느리 얼굴이 굳어지더니 한숨을 쉬었어요.

"어머님, 저희 오늘 저녁에 외식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민수 오빠는 요즘 다이어트 중이라 고기 안 먹어요."

"다이어트? 우리 민수가 뺄살이 어디 있다고?"

"어머님은 모르시겠지만 요즘 30대 남자들은 다 체형 관리해요. 건강 검진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게나왔다고요."

저는 할 말이 없었어요. 아들 건강을 저보다 며느리가 더 잘 안다는 게 서운했죠.

거실 소파에 앉으니까 옆 테이블 위에 명품 가방이 놓여 있었어요. 에르메스였나? 샤넬이었나? 잘은 모르겠는데 아무튼 비싸 보이는 거였어요.

"지혜야, 이거 진짜야? 가방이 엄청 비싸 보이는데."

"네, 샤넬이에요. 회사 프로젝트 성공해서 기념으로 산 거예요. 1,200만원 정도 해요."

1,200만 원이라니요. 제가 한 달 연금이 80만 원인데, 가방 하나가 15개월 치 연금이라니요.

점심 때 민수가 회사에서 들어왔어요. 반가워서 손을 잡았죠.

"우리 아들, 오랜만이다. 엄마가 갈비 사왔는데 너 다이어트 중이라매. 니가 살이 어디 있어서?"

민수가 어색하게 웃었어요.

"엄마, 요즘 건강 관리 좀 하는 거예요. 그리고 갈비는 나중에 먹을게요. 냉동실에 넣어두면 되잖아요."

점심은 며느리가 시킨 샐러드였어요. 양상추에 닭가슴살 몇 조각 올려놓은 거였죠. 저는 배가 안 찼지만 참았어요.

식사 후에 며느리가 말했어요.

"어머님, 저 오후에 중요한 클라이언트 미팅이 있어서 나가야 해요. 죄송한데 좀 일찍 가주실 수 있으세요?"

"그래? 그럼 설거지라도 하고 갈게."

"아니에요. 식기세척기 있어요. 그냥 가세요."

며느리는 방으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었어요. 나올 때 목에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는데, 그게 정말 예뻤어요. 분홍색에 금색 무늬가 있는 거였죠.

"지혜야, 그 스카프 예쁘다. 어디 거야?"

"샤넬이요. 이번 시즌 신상이에요. 300만 원 했어요. 이번 프로젝트 성공하면서 클라이언트가 보너스로 주신 거예요."

또 몇백만 원이에요. 스카프 하나가 300만 원이라니요.

며느리가 나가고 민수도 회사로 돌아가고 나니까 집에 저 혼자 남았어요. 뭔가 해야 할 것 같았죠. 시어머니가 왔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잖아요.

부엌을 들여다봤어요. 깨끗했어요. 설거지할 것도 없었고요. 그래서 화장실을 봤죠. 세면대 옆에 빨래 바구니가 있었어요.

안을 들여다보니까 옷들이 몇 벌 있었어요. 그 중에 아까 봤던 분홍색 스카프가 있었어요. 며느리가 미팅 가면서 다른 걸로 바꿔 매고 간 거였죠.

'이것들 빨아놓으면 며느리가 좋아하겠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시어머니가 와서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해주면 며느리가 고마워할 거라고요.

세탁기를 찾았어요. 베란다에 있었죠. 빨래 바구니에 있던 옷들을 전부 넣었어요. 그 스카프도 함께요. 세제를 넣고 버튼을 눌렀어요.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저는 뿌듯했어요. 며느리가 퇴근해서 깨끗하게 빨린 옷들을 보면 얼마나 기뻐할까 싶었죠.

한 시간쯤 지나서 세탁이 끝났어요. 빨래를 꺼내서 베란다에 널려고 하는데, 이상한 게 보였어요.

그 분홍색 스카프가 완전히 망가져 있었어요. 색깔이 바래고 구겨지고 가장자리가 풀어져 있었죠. 실밥들이 엉켜 있었고요.

가슴이 철렁했어요. 이게 300만 원짜리라고 했는데, 제가 완전히 망가뜨린 거예요.

손이 떨렸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죠. 그냥 빼서 버릴까? 아니면 솔직하게 말할까?

고민하다가 일단 널어놓았어요. 다른 옷들이랑 같이요. 며느리한테 솔직하게 말하고 새 걸로 사준다고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오후 6시쯤 며느리가 들어왔어요. 현관문을 열더니 베란다 쪽을 봤죠.

"어머님, 뭐 하신 거예요?"

목소리가 차가웠어요.

"빨래 좀 했어. 바구니에 있길래."

며느리가 베란다로 뛰어갔어요. 그리고 빨랫줄에 걸린 스카프를 보더니 비명을 질렀어요.

"아악! 이게 뭐예요!"

"미안해, 지혜야. 내가 빨다가 실수로..."

"실수요? 실수? 어머님, 이게 얼마짜리인지 알아요?"

"300만 원이라고 했지. 내가 새 걸로 사줄게. 미안하다."

며느리 얼굴이 새빨개졌어요. 손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갑자기 제 뺨을 때렸어요.

찰싹!

뺨이 화끈거렸어요. 75년 인생 처음으로 누군가한테 뺨을 맞았어요. 그것도 며느리한테요.

"어머님, 지금 뭐 하신 거예요? 세탁기에? 샤넬 스카프를? 이거 드라이클리닝 해야 하는 거 몰라요?"

"미안해. 내가 몰랐어. 새 걸로 사줄게."

"새 걸로요? 이거 이번 시즌 한정판이에요. 전 세계에 100개밖에 없어요. 어머님이 뭘로 사줘요? 한 달 연금 80만 원으로요? 이거 클라이언트가 주신 건데, 다음 만남에 매고 가려고 했단 말이에요. 이걸 망가뜨리면 제가 무슨 면목으로..."

그 말이 가슴에 박혔어요. 제가 가난한 걸 비웃는 것 같았죠.

그때 민수가 퇴근했어요. 상황을 파악하더니 저를 봤죠.

"엄마, 뭐 하신 거예요?"

"민수야, 엄마가 실수로..."

며느리가 끼어들었어요.

"실수가 아니에요. 일부러 그런 거예요. 시어머니가 며느리 명품 질투해서 일부러 망가뜨린 거라고요! 제가 요즘 일 잘돼서 보너스 많이 받으니까 시샘하신 거예요!"

"아니야, 정말 모르고 그랬어!"

하지만 며느리는 들으려 하지 않았어요. 핸드폰을 꺼내더니 사진을 찍기 시작했죠. 망가진 스카프를, 세탁기를, 그리고 저를요.

"어머님, 나가세요. 지금 당장요. 다시는 우리 집에 발도 들이지 마세요."

"지혜야, 진짜 미안해. 내가..."

"나가요! 당장! 민수 오빠, 어머님 내보내요. 이제 클라이언트한테 뭐라고 말해요? 보너스로 받은 걸 이틀 만에 망가뜨렸다고요?"

민수가 제 팔을 잡았어요.

"엄마, 일단 집에 가세요. 지혜가 지금 흥분했으니까 나중에 제가 연락드릴게요."

"민수야, 엄마가 정말 실수로..."

"엄마, 제발 지금은 가세요. 제가 지혜 달랠게요."

저는 현관문 밖으로 쫓겨났어요. 문이 쾅 닫혔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눈물이 났어요. 좋은 일 하려고 했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핸드폰이 울렸어요. 친구 영숙이었죠.

"순자야, 너 지금 인터넷 봤어?"

"무슨 인터넷?"

"너 며느리가 인스타그램에 올렸어. 빨리 봐봐."

손이 떨렸어요. 인스타그램을 겨우 찾아 들어갔죠.

며느리 계정에 사진들이 올라와 있었어요. 망가진 스카프, 세탁기, 그리고 제 뒷모습까지.

글은 이랬어요.

"오늘 최악의 날입니다. 시어머니가 제가 아끼는 300만원짜리 샤넬 스카프 세탁기에 넣어 빨았어요. 클라이언트께서 이번 프로젝트 성공 보너스로 주신 한정판인데 이제 못 써요. 시어머니들 며느리 잘되는 거 못 보나봐요. 제가 요즘 일 잘되고 돈 벌으니까 시샘하시나봐요. 빨래 바구니에 있던 걸 왜 멋대로 빠나요? 경계 존중이 없어요. 해시테크 시월드 명품테러 시어머니질투 경계존중"

댓글이 벌써 500개가 넘었어요.

"언니 힘내세요. 시어머니 진짜 답이 없네요."

"요즘 시대에 무슨 며느리 잘되는 거 질투예요?"

"시어머니 교육이 안 된 거예요."

가슴이 무너졌어요. 전국 사람들이 저를 욕하고 있었어요.

그날 밤, 민수한테서 문자가 왔어요.

"엄마, 미안해요. 당분간 연락하지 마세요. 지혜가 너무 화나서 말이 잘 안먹혀요. 제가 달래볼게요."

아들마저도 제 편이 아니었어요.

다음날 아침, 상황은 더 악화됐어요. 며느리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5만 명이었는데, 그 게시물이 조회수 50만을 넘었어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도 올랐죠.

"샤넬 스카프 시어머니"

댓글은 수천 개로 늘어났어요.

동네 사람들도 다 알았어요. 수원 시장에 갔더니 아는 아주머니들이 쑥덕거렸죠.

"저 사람이 그 시어머니래."

"명품을 세탁기에 넣고 빤다니."

저는 고개를 숙이고 빨리 집으로 돌아왔어요.

3일 후, 며느리한테서 카톡이 왔어요.

"어머님, 이번 일로 제가 받은 정신적 피해가 큽니다. 어머니도 제 SNS보셨죠? 어머님이 공개 사과문 올려주시고 스카프 값 300만 원 송금해주세요. 그럼 게시물 내릴게요."

300만 원이요. 제가 어디서 그 돈을 구하나요.

저는 답장했어요.

"지혜야, 내가 정말 미안해. 근데 300만 원은 나한테 너무 큰돈이야. 조금만 시간을 줄 순 없을까?"

며느리한테 답장이 왔어요.

"어머님, 저 농담하는 거 아니에요. 일주일 안에 300만 원 안 보내시면 제가 다른 방법을 찾을 거예요."

일주일 동안 저는 잠을 못 잤어요. 은행 잔고를 봤죠. 250만 원이 전부였어요. 비상금으로 모아둔 거였는데, 그것도 300만 원에는 부족했어요.

영숙이한테 전화했어요.

"영숙아, 나 50만 원만 빌려줄 수 있어?"

상황을 설명했죠.

결국 영숙이가 50만 원을 빌려줬어요. 저는 300만 원을 며느리한테 송금했어요.

하지만 며느리는 게시물을 내리지 않았어요.

5월 20일, 민수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엄마, 지혜가 당분간 엄마 만나고 싶지 않대요."

"민수야, 엄마가 돈도 다 줬는데..."

"엄마, 그게 문제예요. 요즘은 가족이라도 경계를 지켜야 해요."

전화가 끊겼어요.

그날 밤, 잠이 안 와서 남편 사진 앞에 앉았어요. 남편은 5년 전에 세상을 떠났죠. 폐암이었어요.

"여보, 나 어떡하면 좋아요?"

울면서 남편 책상 서랍을 뒤졌어요. 이번달 생활비가 빠듯해 숨겨놓은 비상 적금이라도 해지하려고 통장을 찾던 중이었어요.

서랍 맨 아래에서 낡은 서류 봉투를 발견했어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죠.

봉투를 열었더니 특허 등록증이라고 쓰인 서류들이 들어 있었어요.

"특허 제10-184617호. 발명의 명칭: 친환경 건축 자재 제조 방법. 특허권자: 이성호"

남편 이름이었어요. 남편이 30년 동안 작은 철물점을 운영하면서 틈틈이 연구했던 거였죠.

특허 등록증 옆에 편지가 하나 있었어요. 남편 필체였어요.

"순자에게. 내가 죽으면 이 특허 잘 지켜줘.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거야. 사람은 배신해도 기술은 배신하지 않아. 이걸로 내가 평생 고생시킨 당신이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손이 떨리고 눈물이 났어요 이 서류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다음날 아침, 특허 사무소에 전화했어요.

"여보세요. 특허를 하나 가지고있는데 이게 가치가 있는지 알고 싶어서요."

번호를 불러줬어요. 직원이 잠시 찾아보더니 놀란 목소리로 말했죠.

"고객님, 이 특허 대단한데요? 요즘 정부가 탄소중립 정책 추진하면서 이런 기술을 찾고 있어요. 특히 건설사들이요."

"그럼 얼마나 받을 수 있어요?"

"정확한 건 평가해봐야 하는데, 비슷한 특허가 최근에 50억에 거래됐어요."

50억이라고요?

일주일 후, 특허 사무소에서 연락이 왔어요.

"고객님, 대형 건설사 세 곳에서 관심 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에 미팅 어떠세요?"

5월 31일 금요일, 저는 서울 강남에 있는 대한건설 본사에 갔어요.

회의실에 들어가니까 정장 입은 사람들이 다섯 명 앉아 있었어요.

"특허 검토해봤는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다른 임원이 끼어들었어요.

"고객님, 특허권 전부 양도하시면 저희가 60억 드리겠습니다."

"아니면 사용료 방식도 가능합니다. 연간 5억 정도 예상됩니다. 20년 계약하면 총 100억이고요."

특허 사무소 변호사가 제 귀에 속삭였어요.

"후자가 나을 것 같네요."

저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사용료 방식으로 하고 싶습니다."

"좋습니다. 첫 해 계약금으로 10억 먼저 드리고요, 그 다음부터 매년 5억씩 20년간 드리겠습니다."

일주일 후, 제 통장에 10억이 들어왔죠.

진짜였어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지만 전혀 내색은 안했어요

특히 아들부부에겐 절대 말하고 싶지 않았지요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어요. 6월 말쯤이었나요.

뉴스에서 충격적인 소식이 나왔어요.

"강남 유명 인테리어 업체 대표, 고객 선금 12억 횡령 혐의로 구속"

화면에 며느리 얼굴이 나왔어요.

심장이 쿵쿵거렸어요.

뉴스는 계속됐어요.

"김지혜 씨는 15억 규모의 고급 레스토랑 인테리어 계약을 체결하고 고객으로부터 선금 12억을 받았으나, 이를 공사에 사용하지 않고 개인 명품 구입과 생활비로 탕진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사기 및 횡령 혐의로 고소했으며, 검찰은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며느리가 12억을 횡령했다고요?

핸드폰이 울렸어요. 민수였죠.

"엄마..."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어요.

"엄마, 뉴스 봤어요?"

"응, 봤어."

"지혜가 구속됐어요. 서울구치소에 있어요."

"민수야, 이게 무슨 일이니?"

"지혜가... 지혜가 고객 돈을 빼돌렸대요. 명품 사느라, 생활비 쓰느라... 엄마, 저 어떡해요?"

"민수야, 일단 진정해."

"엄마, 지혜가 실형 받을 수도 있대요. 변호사가 3년에서 5년 예상한대요."

전화를 끊고 저는 한참 생각했어요.

며느리가 돈을 횡령해서 구속이 됐다니요 믿을수가 없었지요

일주일 후, 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어요.

민수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엄마, 나 어떡해요 큰일 났어요."

"또 무슨 일이야?"

"저... 저 사고 냈어요. 교통사고요."

"많이 다쳤니?"

"제가 사람을 쳤어요. 엄마,."

머리가 하얗게 변했어요.

"뭐라고?"

“어떡해요 엄마. 지금 지혜도 없는데 저 너무 무서워요”

“진정해 민수야. 일단 보험 들어둔걸로 급한건 막을 수 있을 거야. 요새 보험은 민형사 사건도 다 해결해 준다며.”

"엄마 저 사실 음주운전이에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술 마셨어요. 지혜 일로... 그래서 술 마시고 운전했다가 사람을 쳤는데, 겁이 나서 도망쳤어요."

"민수야, 너 미쳤어?"

"엄마, 경찰이 저 찾고 있어요. CCTV에 다 찍혔대요. 피해자가 중상이래요. 다리 두 군데 골절에 갈비뼈 세 대 부러졌대요."

"민수야..."

"엄마, 변호사가 그러는데 음주운전에 중상 사고에 뺑소니면 5년 이상 실형 확정이래요."

"민수야, 그럼 자수해야지."

"엄마, 저 무서워요. 감옥 가기 싫어요."

"민수야, 도망치면 더 형량 늘어나."

끈질긴 저의 설득에 결국 민수는 다음날 자수하고 구속됐어요.

며느리는 서울구치소, 아들은 서울동부구치소에 수감됐어요.

연이어 일어난 사건에 저는 머리가 어지러웠죠.

7월 초, 며느리 변호사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어머님이시죠? 저는 김지혜 씨 국선변호사입니다."

"네."

"지혜 씨가 어머님께 연락해달라고 해서요. 보석 신청을 하려는데 보석금이 5억입니다."

5억이요.

"지혜 씨 집은 이미 경매로 넘어갔고, 재산이 없어서 보석금을 낼 수가 없습니다. 혹시 어머님이..."

"저도 돈이 없어요."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었어요. 내뺨을 때려놓고 아직 사과도 안했는데 어떻게 뻔뻔하게 돈을 달라고 할 수가 있는지 정말 기가 막혔죠.

다음날, 민수 변호사한테서도 전화가 왔어요.

"어머님, 민수 씨 보석 신청하려는데 보석금이 5억입니다."

"부부가 쌍으로 난리브루스를 치네요. 돈맡겨놓은적 있냐고 알아서 할라고 전해주세요."

결국 두 사람 다 구치소에 그대로 있게 됐어요.

한 달이 지났어요. 8월이었죠.

며느리 재판이 시작됐어요. 저는 방청석에 앉아 있었어요.

검사가 말했어요.

"피고인 김지혜는 고객 15명으로부터 총 12억 원의 선금을 받았으나, 이를 공사에 사용하지 않고 개인 명품 구입에 8억, 생활비로 4억을 사용했습니다. 명백한 사기 및 횡령입니다."

며느리가 울고 있었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판사가 물었어요.

"피해자들에게 변제할 의사는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돈이 없습니다."

"가족의 도움은?"

"가족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결국 1심 판결이 나왔어요.

징역 3년.

며느리는 그 자리에서 무너졌어요.

일주일 후, 민수 재판도 시작됐어요.

검사가 말했어요.

"피고인 이민수는 혈중알코올농도 0.15%의 만취 상태로 운전하여 보행자를 치고도 구호 조치 없이 도주했습니다. 피해자는 중상을 입어 6개월 입원 치료가 필요합니다. 음주운전, 치상, 뺑소니, 이 세 가지 모두 중대 범죄입니다."

민수도 울고 있었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판사가 물었어요.

"피해자와 합의는?"

"피해자께서 합의를 거부하셨습니다."

"변호인, 할 말 있습니까?"

"피고인이 깊이 반성하고 있고 초범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선처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판사는 엄격했어요.

1심 판결.

징역 5년.

민수는 고개를 떨구고 울었어요.

며느리는 징역 3년을 선고받았고, 민수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는데, 두 사람 다 억울하다면서 항소를 했죠. 항소심 준비 기간 동안 며느리는 서울구치소에, 민수는 서울동부구치소에 각각 수감되어 있었어요.

저는 그때 집에서 매일같이 고민했어요. 밤마다 잠을 설쳤죠. 도와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했거든요.

며느리는 저한테 뺨을 때렸잖아요. 그것도 75년 인생 처음으로요. 인터넷에 제 사진까지 올려서 전국민한테 망신을 줬고, 300만 원을 뜯어가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아들은 그때 뭘 했냐면, "엄마가 잘못했다", "요즘 시대는 경계가 중요하다"... 그런 말만 했죠.

그래도 제 아들이고 며느리잖아요. 아무리 미워도 감옥에 있다는 게 마음이 편하진 않더라고요.

밤마다 남편 사진 앞에 앉아서 한참씩 울었어요. "여보, 나 어떡하면 좋을까요? 민수를 도와줘야 할까요? 아니면 그냥 내버려둬야 할까요?"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면서요.

일주일을 그렇게 고민하다가 결심을 했어요. 보석금만 내주자고요. 딱 거기까지만 하고 끝내자, 그게 엄마로서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제 이름은 절대로 밝히지 않기로 했어요. 익명으로 내는 거죠.

9월 20일이었어요. 저는 며느리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여보세요. 저는 김지혜 씨의 지인인데요, 보석금을 내주고 싶습니다."

변호사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물었죠. "네? 정말이세요?"

"네, 정말입니다. 단, 제가 누구인지는 절대로 밝히지 마세요. 익명으로 하고 싶어요."

민수 변호사에게도 똑같이 전화했어요. "이민수 씨의 보석금을 내주고 싶습니다. 익명으로요."

변호사가 혹시 성함이라도 남겨달라고 했는데, 저는 단호하게 말했어요. "안 됩니다. 절대로 누구인지 밝히지 마세요. 약속하셔야 해요."

그렇게 해서 법원에 각각 5억씩, 총 10억을 보석금으로 냈어요. 며느리 앞으로 5억, 민수 앞으로 5억이요.

9월 25일 아침이었어요. 며느리가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났죠.

제가 구치소 근처에 차를 세워두고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며느리가 정문 밖으로 나오더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거예요. 3개월 만에 보는 하늘이었을 거예요.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며느리가 마중나온 변호사에게 물었어요. "누가... 누가 5억이나 되는 돈을 내준 거예요?"

"잘 모르겠습니다. 익명으로 하셨대요."

"익명이요? 도대체 누가..." 며느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어요.

같은 시각, 서울동부구치소에서 민수도 풀려났어요. 교도관이 말했죠. "이민수, 보석금 납부되어 나가셔도 됩니다."

민수도 똑같이 물었대요. "네? 보석금이요? 누가 냈는데요?"

"익명으로 납무하셨기 때문에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5억을... 누가요?" 민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어요. "말도 안 돼. 누가 저한테 5억이나..."

두 사람은 각자 집으로 갔어요. 대치동 집은 이미 경매로 넘어간 상태라서 친구 집에 신세를 지고 있었거든요.

저녁 때 두 사람이 만났어요. 카페에서요. 제가 또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민수가 먼저 말을 꺼냈어요.

"보석금 누가 냈는지 도저히 모르겠어."

"나도 그래. 5억을 누가..."

"우리한테 그런 돈 내줄 사람이 누가 있어?" 민수가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며느리도 생각에 잠겼죠. "모르겠어. 진짜 이상해. 우리 친구들은 다 알거든, 우리 상황을."

"혹시... 엄마?" 민수가 조심스럽게 말했어요.

며느리가 고개를 저었어요. "어머님이 무슨 돈이 있어. 한 달 연금 80만 원 받으시는데 5억을 어떻게..."

"그럼 도대체 누가..." 민수는 여전히 의문투성이었어요.

"일단 내일 어머님한테 전화해보자. 혹시 모르니까." 며느리가 제안했죠.

다음날 아침, 민수가 제게 전화를 걸었어요. 하지만 저는 받지 않았어요. 며느리도 전화했는데, 역시 받지 않았죠.

두 사람은 점점 더 어리둥절해졌어요. "엄마가 전화를 안 받네."

"내 전화도 안 받으셔."

"이상하다. 혹시 진짜 엄마가 낸 거 아닐까?"

"근데 어머님이 무슨 돈이..." 며느리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어요.

9월 28일이었어요. 민수가 수원 시장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영숙이를 만났거든요.

"이모님!" 민수가 반갑게 인사했죠.

영숙이가 깜짝 놀라면서 돌아봤어요. "어머, 민수야? 너 나왔어?"

"네, 보석으로 나왔어요. 이모님, 혹시 우리 엄마 어디 계세요? 전화를 아무리 해도 안 받으세요."

영숙이가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어요. "응? 순자가? 그게... 요즘 좀 바쁜가봐."

"그런가요? 그리고 이모님, 혹시 저희 엄마 로또라도 맞으셨어요?" 민수가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제 보석금이 5억인데, 누군가 익명으로 내줬거든요. 혹시 엄마인가 싶어서..."

바로 그때였어요. 영숙이가 실수를 한 거죠. 순간 방심했던 거예요. 제가 50만원이 급했을 때 영숙이가 도와준 게 고마워서 돈을 갚으면서 영숙이한테만 살짝 귀뜸을 했줬거든요

"아, 순자가 요즘 돈이 좀 생겼는데..." 영숙이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 화들짝 놀라며 입을 막았어요.

하지만 이미 늦었죠. 민수 눈이 커졌거든요.

"네? 엄마가 돈이 생겼다고요?" 민수 목소리가 떨렸어요.

영숙이가 당황하면서 말을 더듬었어요. "아, 그게... 내가 말하면 안 되는데... 순자가 비밀로 하래서..."

"이모님, 제발요. 말씀해주세요." 민수가 영숙이 손을 꽉 잡았어요. "엄마한테 무슨 일이 있었어요?"

영숙이가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어요. "네 아버지가 남긴 특허가 있었어. 친환경 건축 자재 특허라고 하던데, 그게 건설사에 고액에 팔렸대."

"특허요?" 민수는 처음 듣는 얘기였어요.

"응. 계약금으로만 10억을 받았다고 했어. 그리고 앞으로 매년 5억씩 20년간 받는대." 영숙이가 조용히 말했어요.

민수가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어요. "10억... 그리고 매년 5억씩이요?"

"총 110억이야. 그러니까 네 엄마는 이제 억만장자가 된 거지." 영숙이도 한숨을 쉬었어요.

민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온몸이 떨렸죠. "그럼... 그럼 제 보석금 낸 사람이..."

"아마 네 엄마일 거야. 지혜 것도 냈겠지." 영숙이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민수는 그 자리에서 바로 며느리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손이 떨려서 핸드폰을 제대로 잡기도 힘들 정도였죠.

"지혜야! 큰일이야!"

며느리 목소리가 놀라서 물었어요.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엄마한테 갑자기 엄청 많은 돈이 생겼대! 숨겨둔 아버지 특허가 팔려서!" 민수가 숨을 헐떡이면서 말했어요.

"뭐라고?"

"계약금 10억! 그리고 매년 5억씩 20년간! 총 110억이야!" 민수 목소리가 점점 커졌어요.

며느리가 잠시 말이 없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어요. "110억...? 그럼..."

"그럼 보석금 낸 사람이..."

전화기 너머로 며느리의 숨소리가 거칠어졌어요.

"어머님이야. 분명히." 지혜의 목소리에 흥분이 섞여 있었어요.

"지혜야, 우리 어떡해? 엄마가 전화를 안 받아." 민수가 초조하게 말했어요.

"당장 수원으로 가야지! 어서!" 며느리가 소리쳤어요.

두 사람은 그날 저녁 바로 수원으로 내려왔어요. 제가 사는 빌라 앞에 도착했는데, 현관문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죠.

민수가 문을 두드렸어요. "엄마! 엄마! 계세요?"

하지만 대답이 없었어요. 저는 그날 일부러 영숙이네 집에 있었거든요. 그들이 올 걸 알고 있었어요.

"어떡해. 안 계셔." 민수가 당황했어요.

"전화해봐." 며느리가 재촉했죠.

민수가 제게 전화를 걸었어요. 저는 영숙이네 거실에서 핸드폰이 울리는 걸 보면서도 받지 않았어요.

"안 받으셔." 민수 목소리에 초조함이 묻어났어요.

"이모님한테 가보자. 그 영숙 이모님." 며느리가 말했죠.

하지만 영숙이는 이미 제가 부탁을 해둔 상태였어요. "절대로 내가 어디 있는지 말하지 마."

두 사람은 일주일 내내 저를 찾아다녔어요. 시장도 가보고, 동네 경로당도 가보고, 제가 다니던 성당도 가봤대요.

저는 그 일주일 동안 영숙이네 집에 조용히 있었어요. 창문 너머로 가끔 민수 차가 지나가는 걸 봤죠.

10월 3일, 개천절이었어요. 제 핸드폰에 민수한테서 문자가 왔어요.

"엄마, 제발 전화 좀 받아주세요. 엄마한테 꼭 드릴 말씀이 있어요.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싶어요."

제 가슴이 쿵쾅거렸어요. 혹시... 혹시 진짜 뉘우치는 걸까?

그 다음 문자가 또 왔어요.

"엄마,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그동안 엄마 마음을 너무 몰랐어요. 지혜도 정말 반성하고 있어요. 엄마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고 싶어요."

눈물이 났어요. 제 아들이 정말 변한 걸까? 정말로 뉘우치는 걸까?

영숙이가 옆에서 말했어요.

"순자야, 속지 마. 돈 때문일 거야."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진짜 반성하는 걸 수도 있어." 저는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어요.

"110억이야, 110억. 사람이 그 돈 앞에서 진심이 나올까?" 영숙이가 고개를 저었어요.

하지만 저는 마음 한구석에 희망이 있었어요. 그래도 제 아들인데... 그래도 며느리가 정말 잘못을 깨달았을 수도 있는데...

며느리한테서도 문자가 왔어요.

"어머님, 저 김지혜입니다. 그동안 정말 죄송했습니다. 어머님께 용서받을 자격도 없지만, 제발 한 번만 만나주세요. 무릎 꿇고 사죄하겠습니다."

저는 핸드폰을 꼭 쥐었어요. 손이 떨렸죠.

'혹시... 혹시 진심일까?'

시월 오일, 저는 결심했어요. 한 번만 만나보자고. 진심인지 아닌지 확인해보자고.

민수한테 문자를 보냈어요.

"시월 칠일 일요일 오후 두시. 수원역 앞 카페에서 보자."

답장이 바로 왔어요.

"엄마! 네! 꼭 갈게요! 감사합니다!"

시월 칠일 일요일이 됐어요. 저는 일부러 30분 일찍 카페에 갔어요. 구석 자리에 앉아서 기다렸죠.

오후 1시 50분, 민수와 지혜가 들어왔어요. 두 사람 다 깔끔하게 차려입었더라고요. 민수는 정장을 입었고, 며느리는 수수한 원피스를 입었어요. 명품은 하나도 안 보였죠.

민수가 저를 보자마자 달려왔어요.

"엄마!"

저는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민수가 제 앞에서 바로 무릎을 꿇었어요. 며느리도 마찬가지였고요.

카페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다들 쳐다봤어요.

"엄마, 정말 죄송합니다." 민수가 고개를 숙였어요.

"어머님, 용서해주세요." 며느리도 눈물을 흘렸어요.

저는 가슴이 뜨거워졌어요. 정말... 정말 뉘우치는 걸까?

"일어나거라. 사람들이 다 쳐다본다." 제가 말했어요.

두 사람이 자리에 앉았어요. 며느리가 먼저 입을 열었죠.

"어머님, 그동안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어머님 뺨까지 때리고... 인터넷에 올리고... 돈까지 뜯어내고..." 며느리가 흐느꼈어요.

"엄마, 저도 그때 엄마 마음 아프게한거 정말 후회하고 있어요." 민수도 눈물을 닦았어요.

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어요. 그들을 가만히 지켜봤죠.

"구치소에서 정말 많이 생각했어요." 며느리가 계속 말했어요. "제가 왜 이렇게 됐나... 왜 명품에 집착했나... 왜 어머님한테 그렇게 했나..."

"엄마, 제가 보석금 낸 게 엄마라는 걸 알았어요." 민수가 조심스럽게 말했어요.

"감사해요. 정말 감사해요." 민수가 제 손을 잡았어요. "5억이나... 어떻게 구하셨어요?"

저는 손을 빼냈어요.

"그건 나중에 얘기하자. 그것보다 너희 재판은 어떻게 되니?"

"항소심이 다음 달에 있어요." 며느리가 대답했어요. "변호사님이 그러는데 잘하면 형량이 줄어들 수도 있대요."

"그래." 저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며느리가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어머님, 혹시... 혹시 항소심 변호사 비용을... 저희가 너무 뻔뻔한 거 아는데... 죄송하지만..."

아, 결국 나왔구나. 돈 얘기가.

제 가슴이 서늘해졌어요.

"변호사 비용이 얼마나 드는데?" 저는 차갑게 물었어요.

"각자 3천만 원씩이요..." 며느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그리고 피해자 합의금도 필요한데... 저는 12억을 돌려줘야 하고, 민수 오빠는 피해자한테 5억 정도..."

제 머릿속이 복잡해졌어요.

"그러니까 합의금이랑 변호사 비용 해서 총 17억 6천 정도가 필요하다는 얘기지?" 제가 물었어요.

민수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엄마, 저희가 너무 뻔뻔한 거 알아요. 근데 정말 절박해요. 이대로 실형을 살면..."

"민수야." 제가 아들을 똑바로 쳐다봤어요.

"진짜 미안하니? 아니면 내가 갑자기 돈이 생겨서 미안하니?"

아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어요.

"엄마... 그게 아니에요..."

저는 가방에서 녹음기를 꺼냈어요. 작은 녹음기였죠.

"이게 뭐예요?" 민수가 물었어요.

저는 재생 버튼을 눌렀어요.

녹음기에서 며느리 목소리가 흘러나왔어요.

"110억... 그럼 우리가..."

"당장 찾아가야 해. 그 돈 생각하면 무릎이고 뭐고 다 꿇을 수 있어."

민수 목소리도 들렸어요.

"그래. 엄마한테 잘 보여야 해. 우리 형편이 이런데 엄마가 도와주실 수밖에 없어."

며느리 목소리가 또 들렸죠.

"진짜 눈물 연기 제대로 해야 돼. 어머님이 원래 마음 약하시잖아. 우리 무릎 꿇고 울면 넘어가실 거야."

"합의금이랑 변호사 비용 받아내고, 나중에 특허 돈도 조금씩 받아내자. 110억이면 우리 평생 놀고먹을 수 있어."

녹음기가 멈췄어요.

카페 안이 조용해졌어요.

민수와 며느리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어요.

"이게... 이게 어떻게..." 며느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어요.

"영숙이가 너희 뒤를 밟았어." 저는 차갑게 말했어요.

"너희가 정말 뉘우치는 건 아닐까... 정말 엄마를 찾는 건 아닐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대했어."

"엄마..." 민수가 울먹였어요.

"닥쳐." 저는 손을 들어 막았어요. "70년 넘게 살면서 이렇게 실망한 적이 없었어. 그것도 내 아들한테."

며느리가 말했어요. "어머님, 저희가 잘못했어요. 진짜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제발 한 번만..."

"다신 나 찾지마. 절대 너희가 찾자못하는 곳으로 갈꺼니까"

"엄마, 어딜 가실려구요?" 민수가 놀라서 물었어요.

"왜 또 찾아와서 구걸하게?"

며느리가 다급하게 말했어요. "어머님, 그럼 저희 재판은요? 항소심은요?"

저는 며느리를 차갑게 쳐다봤어요.

"그건 너희가 알아서 해. 너희가 저지른 일이잖아."

"어머님!" 며느리가 소리쳤어요.

"그리고 보석금 10억." 제가 덧붙였어요. "그건 내가 낸 거 맞아. 근데 그게 끝이야. 더 이상은 없어. 구상권 청구하기 전에 그만해."

"엄마, 제발..." 민수가 매달렸어요.

저는 카페 문을 열고 나왔어요. 뒤에서 민수와 며느리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돌아보지 않았어요.

10월 5일 저녁이었어요. 영숙이가 배웅을 나왔죠.

"순자야, 정말 가는 거야?" 영숙이가 눈물을 글썽이면서 물었어요.

"응. 가야지." 저는 조용히 대답했어요.

"민수랑 지혜가 너를 찾아대서 미칠 지경이야. 매일 나한테 전화하고, 어디 갔냐고 묻고..." 영숙이가 말했어요.

"영숙아, 얘네가 왜 나를 찾는지 알아?" 제가 쓸쓸하게 웃었어요.

"알아. 네 돈 때문이지." 영숙이가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맞아. 진짜 미안해서 찾는 게 아니야. 돈이 탐나서 찾는 거야." 제가 한숨을 쉬었어요.

"영숙아, 나는 이미 내 할 일 다 했어. 보석금 10억 냈잖아. 그걸로 충분해. 이제 더 이상은 못 해. 그 애들이 원하는 건 내 돈이지, 나를 원하는 게 아니니까." 제가 단호하게 말했어요.

"순자야..." 영숙이가 눈물을 흘렸어요.

"고마웠어, 영숙아. 50만 원 빌려줘서. 그리고 그동안 친구 해줘서." 저는 영숙이를 꽉 안아줬어요.

"너도 행복하게 살아." 영숙이가 울먹이면서 말했어요.

"응, 그럴게." 저는 영숙이 등을 토닥였어요.

저는 출국장으로 들어갔어요. 뒤돌아보지 않았어요. 뒤돌아보면 마음이 흔들릴 것 같았거든요.

비행기에 올랐어요. 몰디브행이었죠. 좌석에 앉아서 창밖을 봤어요. 비행기가 이륙하면서 서울이 점점 작아졌어요.

'여보, 나 이제 진짜 자유예요.' 저는 마음속으로 남편에게 말했어요. '당신이 남긴 특허 덕분에 이렇게 살 수 있게 됐어요. 그 애들은 나를 원한 게 아니라 돈을 원했어요. 이제 알았어요. 고마워요, 여보.'

시월 육일,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에메랄드빛 바다, 하얀 모래사장, 야자수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죠.

리조트에 체크인하고 방에 들어갔더니 발코니 너머로 바다가 한눈에 보였어요. 저는 발코니에 나가서 바다 바람을 맞았어요. 75년 인생을 살면서 처음 느끼는 자유로움이었어요.

한국에서는 그 시각, 며느리와 민수가 여전히 저를 찾아 헤매고 있었지요.

그렇게 한 달이 흘렀어요. 11월이었죠. 며느리와 민수의 항소심 재판이 열렸어요.

며느리 항소심 재판정에서 검사가 말했어요. "피고인은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피해자들에게 단 한 푼도 변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보석 기간 동안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고 시도한 정황이 있습니다. 반성의 태도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며느리 변호사가 변론을 했지만, 판사는 고개를 저었어요. "피고인의 범행은 계획적이고 죄질이 매우 불량합니다. 원심을 유지합니다."

항소 기각. 징역 3년 확정이었어요.

며느리는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어요. "안 돼... 어머님... 어머님이 도와주셔야 하는데..." 그녀는 중얼거렸어요.

일주일 후에는 민수 항소심이 열렸어요. 검사가 말했죠. "피고인은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치고도 도주했습니다. 피해자는 아직도 병원에 입원 중입니다. 피고인은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피해자에게 단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고, 어떠한 사과나 배상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족의 재산을 노리는 데만 집중했습니다."

민수 변호사도 변론을 했지만 판사는 단호했어요. "음주운전, 치상, 뺑소니, 세 가지 모두 중대한 범죄입니다. 원심을 유지합니다."

항소 기각. 징역 5년 확정.

민수도 고개를 떨어뜨리고 울었어요. "엄마... 엄마..." 그는 중얼거렸어요.

두 사람 다 마지막으로 대법원에 상고를 했지만, 대법원에서도 기각되었어요. 더 이상 방법이 없었죠.

2025년 1월 15일, 며느리는 청주여자교도소로, 민수는 안양교도소로 정식 수감됐어요. 보석 기간이 완전히 끝난 거였죠.

교도소 호송 버스 안에서 며느리가 창밖을 바라봤어요. '어머님... 110억... 다 날아갔어...' 그녀는 생각했어요. 여전히 돈 생각뿐이었죠.

민수도 버스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엄마... 내가 잘못했어... 엄마가 돈 때문에 온 거 알고 얼마나 실망하셨을까...' 민수는 뒤늦게 후회하기 시작했어요.

한편 저는 몰디브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2025년 2월 1일이었어요. 저는 몰디브 리조트 발코니에 앉아서 편지를 썼어요. 민수 앞으로요. 그리고 며느리 앞으로도 편지를 썼죠.

편지를 쓰면서 눈물이 났어요. 하지만 써야 했어요. 이게 마지막이라고, 이걸로 정말 끝이라고 말해줘야 했거든요.

민수야, 잘 지내니?

엄마는 지금 몰디브에 있단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보이는 리조트에서 편하게 지내고 있어.

너한테 할 말이 있어서 이 편지를 쓴다.

민수야, 네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엄마는 너 아빠가 남긴 특허 덕분에 돈을 받게 됐단다. 계약금으로 10억을 받았고, 앞으로 매년 5억씩 20년간 받기로 했어. 총 110억이지.

엄마는 혹시나 했어. 혹시 너희가 진짜 뉘우치고 사과하러 온 건가, 보석금 내준 것에 감사해서 온 건가 싶었어.

근데 아니었어. 너희는 돈 때문에 온 거였어. 110억이 탐나서 온 거였지.

감옥에서 나온 후에도 여전히 돈 생각만 하고 있었어.

민수야, 엄마가 보석금을 낸 건 너희를 용서해서가 아니야. 그냥 엄마로서 마지막 도리를 다한 거야.

하지만 너희는 그것마저도 당연하게 여기고, 더 많은 걸 원했어. 110억을 나눠달라고, 너희 빚을 갚아달라고.

민수야, 너가 그때 진심으로 뉘우쳤다면 아빠의 특허권은 너에게 넘어갔을 거야. 미워도 어쩌겠니 내 아들인걸. 그런데 엄마는 너희를 더 이상 도와줄 수가 없어. 보석금 10억으로 끝이야.

엄마는 너희를 놓아줄 거야. 너희도 엄마를 놓아줘. 엄마를 찾지 마.

엄마는 이제 엄마 인생을 살 거야.

민수야, 엄마는 75년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나 자신을 위해 산 적이 없었어. 너 아빠 뒷바라지하고, 너를 키우고, 며느리 눈치 보면서 살았지.

이제는 엄마가 엄마를 위해 살 거야.

몰디브에서 6개월 지내고 나면 유럽도 갈 거야. 파리도 가보고 싶고, 로마도 가보고 싶어. 남미도 가보고 싶단다.

민수야, 너한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교도소에서 제대로 반성해. 네가 왜 거기 있는지, 네가 뭘 잘못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봐.

출소하면 제대로 살아. 술 마시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고, 사람을 돈으로 판단하지 마.

민수야, 건강해라. 그리고 출소하면 제대로 된 사람이 되어라.

이게 엄마가 너한테 하는 마지막 말이야.

-엄마가

저는 편지를 봉투에 넣고 한국으로 보냈어요. 안양교도소 이민수 앞으로요.

며느리한테는 조금 다른 편지를 썼어요.

지혜에게.

나는 네가 나한테 뺨을 때렸을 때도, 인터넷에 올렸을 때도, 300만 원을 뜯어갔을 때도 참았어.

언젠가는 네가 깨닫겠지 싶었어.

근데 너는 보석으로 나온 후에도 여전히 돈 생각만 하고 있었어.

110억을 나눠달라고, 네 빚을 갚아달라고, 지혜야, 너는 끝까지 변하지 않았어.

나는 너를 더 이상 며느리로 생각하지 않을 거야.

다시는 연락하지 마.

-이순자

2025년 2월 10일, 민수는 교도소에서 편지를 받았어요. 발신처는 보니 "몰디브"라고 적혀 있었어요.

손이 떨렸어요. '엄마...'

편지를 뜯었어요. 그리고 읽기 시작했어요.

한 줄, 두 줄 읽을수록 눈물이 났어요.

"엄마,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민수가 울면서 말했어요.

"제가 돈 때문에... 엄마를 돈으로 본 게...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민수는 편지를 가슴에 안고 울었어요. 소리 내서 울었죠.

"엄마, 용서해주세요. 제발... 한 번만..."

하지만 편지에는 이미 답이 적혀 있었어요. "엄마를 찾지 마." "이게 엄마가 너한테 하는 마지막 말이야."

민수는 바닥에 엎드려 울었어요.

같은 날, 며느리도 편지를 받았어요. 청주여자교도소에서요.

편지를 읽으면서 며느리는 얼굴이 굳어졌어요.

하지만 며느리는 울지 않았어요. 대신 화가 났어요.

"110억... 다 날아갔어..." 며느리는 이를 갈았어요.

"어머님이 저렇게 매정하게 나올 줄이야..." 며느리는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어요.

그리고 저는요? 저는 몰디브에서 매일 아침 바다를 보면서 커피를 마셨어요. 오후에는 해변을 산책하고, 저녁에는 노을을 보면서 와인을 마셨죠.

75년 인생을 살면서 처음으로 제 자신을 위해 사는 시간이었어요.

남편 사진을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자주 꺼내 봤어요.

"여보, 나 정말 행복해요." 저는 사진 속 남편에게 말했어요.

"고마워요, 여보. 당신 덕분에 나는 자유로워졌어요."

여러분, 제 이야기 어떠셨어요?

이제 저는 저를 위해 살 거예요. 남은 인생, 행복하게요.

끝까지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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