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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Aug 24. 2020

코로나 블루 : 낙인과 키스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만원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온 팔과 손을 30초간 흐르는 물에 씻는다. 책상 자리로 돌아와서는 휴대폰을 손 소독제로 닦은 뒤, 쓰고 온 KF 94 마스크를 책상 옆 고리에 걸어두고 깨끗하게 손빨래 한 면 마스크를 꺼낸다. 얼마 전 마스크가 닿는 얼굴 부분이 빨갛게 올라와 조퇴를 하고 피부과를 찾으니 의사는 실내에서는 당분간 면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권했다. 1시간의 지옥철 출근길에 마스크 안 얼굴은 땀범벅이었다. 휴대용 선풍기로 얼굴을 말리고 면 마스크를 착용한 후에야, 본체 전원 버튼을 꾹 누르고 자리에 앉았다. 


코로나 확산 이후 반복해온 아침 출근 의식이었다. 이제 드디어 업무를 시작하면 되는데

인터넷이 되지 않았다. 

네트워크 선을 다시 연결하고 컴퓨터를 다시 껐다 켜도 마찬가지였다. 시설팀에 전화하고 5분 뒤, 사무실 입구에서 중년 남성분이 컴퓨터 수리 어디입니까?라고 작게 물으시는 소리가 들렸다. 낡은 남색 유니폼을 입은 구부정한 자세의 중년- 아니 노년에 가까운 남성분이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고 계셨다. 


기사님께 컴퓨터를 맡기고 나는 휴가 중인 부장님 자리에 잠시 앉았다.  그분은 마스크를 코에 살짝 걸친 채 양쪽 팔을 책상에 기대며 이것저것 나의 마우스와 키보드로 만졌다.  거기까지는 다 괜찮았다.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으신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거야 내가 거리를 유지하면 되니까... 문제는   "예수님의 복되신 말씀이..." 성경 말씀이 온 사무실에 울려 퍼진 순간부터였다. 사무실에 있던 모두가 고개를 들며 흠칫 놀랐지만 기사님만은 느긋하게 전화를 받으며 "어 나 지금 일하는 중인데"라고 큰소리로 답하며 사무실 밖으로 나가셨다.  기사님이 전화를 받자 성경말씀은 그쳤고, 기사님은 1분 후 다시 구부정한 자세로 돌아오셨다. 


사랑 제일교회가 참가한 광화문 집회가 있었고, 정부는 참가자 명단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교회를 중심으로 집단 감염이 발생하고 있었고, 언론에서는 집회에 참가한 교인들이 검사를 회피한다거나, 동선을 숨긴다거나, 혹은 병원을  탈출했다는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기사님이 인터넷을 고친 후는 기사님이 머물었던 간 마우스 키보드 책상 앞에 앉았다. 나는 광화문 집회에 참가하거나, 사랑 제일 교회를 다니거나 그 어느 것이든 그분들이 어떤 모습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얼굴들은 정광훈과 유튜버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뉴스를 통해서 본 게 전부다. 하지만 왠지,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아까 기사분의 얼굴일 것 같았다. 성경 말씀을 벨소리로 하는 중장년 남성. 마우스와 키보드를 만지는 게 꺼려졌다. 하지만 손 소독제로 표면을 세척을 한다면 그건 나의 인터넷 연결을 도와준 그분을 병균 취급하는 것 같았다.


코로나 확산세가 거세진 후 나는 일상에서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기피해왔다.

대구 신천지 사태 때에는 길거리에서 말 거는 모든 사람들을, 

이태원 클럽 발 때에는 '게이처럼' (이라는 말이 전혀 무의미하고 혐오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그렇게 공부했음에도!) 보이는 사람들을,

지금은 중장년 노년층의 분들을. 


나의 서울 할머니는 이태원 클럽 발이 터진 후 젊은 애들을 보기만 하면 화가 난다고 하셨다. 

쟤네들은 무증상이니 저렇게 돌아다니는 거라고. 자신과 같은 늙은이는 걸리면 죽으니 돌아다닐 수도 없다던 나의 할머니는 지금 누구를 피하고 계실까. 



한 가지 짚고 갈 것은  이태원 클럽 발 사건 때 클럽에 갔던 사람들이 검사를 받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과, 지금 광화문 집회 참가자들이 진단 검사 거부를 하는 것은 같은 다른 맥락이라는 것이다. 최근 손희정 작가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나는 ‘k-방역’ 성공 요인 중 하나는 한국 사회의 강력한 낙인 효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낙인이 먹히지 않는 집단이 등장했다. 그러니까 “개독”은 확실히 혐오표현이 아닌 셈이다. 낙인 효과가 없는 건 그냥 쌍욕이지 혐오표현이 아니다 


 이태원 클럽 발 때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진단 검사를 꺼렸던 것은, 그들의 성 정체성이 드러나게 될 경우 마주하게 될 사회적 편견과 억압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랑 제일교회 관련 확진자들이 유튜브를 통해 병상을 상세히 공개하며 이것이 '음모'라는 주장을 펼치고 이들의 발언이 매 순간 기사로 실리는 것은 정치적 영향력의 행사다. 그러니 내가 똑같이 누군가를 기피한다고 하더라도, 그 영향력과 효과는 다르다. 손희정 작가의 말처럼 사랑 제일교회 관련 자들은 "낙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삶 속에서 혐오는 두려움, 기피 등의 감정 등과 구분되어서 다가오지 않기에 어렵다.  한 문장이 남았다. 그동안 한국의 코로나 방역이 낙인 효과를 통해 이뤄졌다는 점.  어디서 어떻게 걸렸는지, 동선 은 어떠했는지 등 확진자 관련 정보가 나낱이 공개되는 일상 속에서 나는 "내가 확진자가 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타자화 배재화를 통해 두려움을 심는 것. 그것이 지금까지 한국이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택해 온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제 정은경 본부장의 말처럼 "누구나" 확진자가 될 수 있다. 감염 경로를 모르는 확진 수가 20%까지 증가하고 있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다가도 확진자가 될 수도 있다. 

이제 두려움은 자기 자신으로 향한다.

나의 잘못된 선택이 나를 확진자로 만들 수 있다. 


출퇴근 길에 kf94가 아닌 비말 마스크를 썼다. 

점심시간에 회사 식당에서 거리두기를 하면서 먹는데 내 뒤에 떠드면서 먹는 사람이 앉았다. 

얼굴 부분이 너무 간지러워 잠시 마스크를 벗고 자리에서 일하고 있는데 하필 그때 누가 와서 잠시 대화를 했다.

필수적인 회의 후 카페에 갔는데 음료를 마시느라 잠시 마스크를 벗고 있었다. 

편의점에 갔는데 점원분이 턱걸이 마스크를 하고 계셨다. 

코로나 확산이 심해지기 전 밀폐된 식당에 갔었는데 아직 2주가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큰 고민. 

나의 애인 




코로나 확산세가 심해졌던 지난주 나는 모든 약속과 회의를 취소했다.

그런데 하필  내일은  2주 만에 나의 애인을 볼 수 있는 날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번 주말이 지나면  앞으로 2주간 서로 못 볼 사이다. 우리에게는 2 주전에 예약해 놓은 호텔방이 있다. 그와 나는 오래 얼굴을 못 본 상태에서 전화로만 쌓여가는 소통에 지쳐있다. 그는 식당과 카페를 전혀 가지 않고 호텔방 안에만 있자고 제안했다.  나는 확신할 수 없다. 이건 국가가 말한 필수적인 만남인 걸까.  혹시라도 그가 감염이 된 상태면 어쩌나. 호텔은 안전한가? 호텔 홈페이지를 들어가니 매일 소독을 하고, 직원들 및 투숙객 대상으로 발열 검사를 실시한다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무증삼 감염자도 많은 걸. 그리고 비말감염 중 최고는 키스 아닌가. 


 잠깐, 나는 지금 그를 얼마큼 좋아하고 있는 거지?  그에게서 코로나에 감염되어도 좋을 만큼 그를 좋아하나? 내가 그에게 코로나가 전염되어서, 나의 가족들이 걸려서 혹시라도 우리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나는 그를  이 선택을 분명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 만약 내일 약속을 미뤄서 2주 뒤에 우리가 만나게 된다면 그때까지 우리는 함께 일 수 있을까. 이 사람을 놓치게 되는 건 아닐까. 2주 뒤에는 안전한 거 맞아? 근데 지금 국가의 시급함 앞에서 이런 고민이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닐까. 최대한 밖을 안나온 채 호텔 방안에서만 하룻밤을 보내는 건 외출이 아닐지도 몰라. 


이 글을 쓰면서도 수 많은 검열을 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마치 "정답"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동시에 도대체 뭐가 정답인지 모르겠다.  보이지 않지만 인간의 착취의 결과물이 분명한 바이러스가 만들어낸 불확실성 속에서.


누군가에게 피해 주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매순간 시험에 답을 적는 기분으로 살아가는 나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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