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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Sep 28. 2020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뭐지?

이 지겨운 질문에 또다시 봉착했다. 

 내가 펜을 들 때는 대부분 비슷하다. 인생의 답이 없다는 답답함과 이대로는 안된다는 불안으로 머리가 가득 찰 때. 세상이 말랑말랑한 귀여운 젤리로 가득 차있는 것처럼 아늑할 때는 글을 잘 쓰지 않게 된다. 딱히 쓸 말도 없고 책상 앞에 앉아 있을 시간에 행복한 세계를 더 온전히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꾸준히 글 쓰는 분들은 정말 대단하시다는 감탄을 매번 하게 된다. 특히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글쓰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정세랑 와 이슬아 작가의 글을 읽으면 이 세계에 좀 더 살고 싶다는 용기를 준다. 일상 속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아름다움 들을 글이라는 렌즈를 통해 더 아름답게 비춰내는 일. 정말로 존경하는 글쓰기다.


 절망적 이게도 내가 존경하는 글쓰기와는 매우 멀게... 나란 애는 싫은 걸 어떻게 싫은지 아주 구체적으로 잘 말하는 애다.  얼마 전 '밤쉘' 속 케이트 맥키넌이 한 대사처럼 "나는 유해한 환경에서 잘 성장하는" 애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뭔가 불합리한 상황 속에서 오히려 정신이 똑바로 든달까.  돌아가는 게 이상하다는 직감이 스치면 그때부터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주위를 둘러본다. 내 머릿속은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분석과 절망 고민 상념들로 가득 차게 되고 머리가 풍선처럼 너무 빵빵해지면 풍선의 공기를 빼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쓴다. 


얼마 전부터 사람들이  나의 내년 계획을 묻는다. 계약이 내년 1월에 끝나는 회사에서는 내년에도 일해줄 수 있는지를 묻고, 엄마는 내년에 대학원 돌아갈 건지 묻는다. ( 올해 1학기 일반 대학원에 다니다 휴학했다) 한 달 전에 나는  "요즘도 글 자주 써?" 하는 친구의 질문에 "아니 요새 삶이 평온해서 글 안 써도 돼"라고 답할 정도로 한동안 평온하고 말랑한 세계에서 지냈었다.  사람들이 자꾸만 미래를 묻길래 도대체 왜 이러세요 라면서 달력을 보았더니 9월이 끝나가고 있었다. 2020년이라는 완벽해 보였던 숫자가 약 3개월 남은 것이다. 이제 유예의 시간은 끝났고 다시 생각의 시간이다. 내년에 어떻게 할 거냐고요? 저도 도통 모르겠네요 정말! 


내년에도 일을 할 거냐는 부장님의 질문에는 계약직이란 신분이 빠져있다. 작년에 비해 높아진 업무량이지만 월급은 너무 적게 올랐고, 무엇보다 계약직이라는 신분 때문에 내 경력을 쌓을 수 있는 대외활동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내년에도 내가 일해주었으면 하는 부장님의 바람은 내 능력을 인정해주는 것이라는 알기에 감사하지만 분명 정규직이 필요한 자리에  프로젝트 매니저를 기용하면서, 계약직은 언제든 관들 수 있기에 여러 대외활동의 기회를 주지 않는 회사 내부 결정엔 화가 난다. 하지만 더  슬픈 건 그 결정들이 납득이 된다는 것이다. 내가 상사라도 계약직보다 정규직에게 더 기회를 주겠지.


내년에 대학원 돌아갈 것이냐는 엄마의 질문. 학비를 모두 내가 스스로 번 돈으로 충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원은 점점 더 빈곤해지는 선택이다. 짧은 한 학기의 시간 동안 만났던 대학원 선배들은 얼른 지금이라도 자퇴하는 게 답일 수도 있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당신은 문화연구를 공부한 석사생의 미래를 알고 있는가? 얼마 전 직장 동료가 사회학 석사를 졸업한 친구를 만나 나의 고민을 나눴다. 사회학 석사를 졸업하신 그분은  점성술사처럼 나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며  "그분의 미래에는 두 가지의 길이 있어. 활동가와 글 잘 쓰는 활동가"라고 답했다고 한다.  너무 맞는 말이어서 전해 들은 대답을 듣고 한동안 깔깔 웃었다.


 대학원 휴학 후 돌아간 직장인의 삶은 대학원생의 삶보다 훨씬 수월했다. 직장인의 삶이란 9시부터 6시까지만 특정한 일에 집중하면 되고(대학원은 매 순간이 공부다) 주말에는 마음껏 퍼질러도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학원은 휴일이 없다)  월말이면 작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아지는 월급이 들어오고, (대학원은 내 돈 600만 원 내고 이 괴로움들을 감수해야 한다) 회사 사람들은 내가 조금만 열심히 해도 칭찬을 마구마구 해준다! (대학원은 늘 부족한 나 자신을 자각하는 연속이다) 


보드게임 위에 서있는 기분이다.

자 내 앞에는 3가지의 선택 길이 있다 

1) 대학원으로 돌아가세요. 2) 이직을 하세요. 3) 지금 회사에 머무르세요.

3가지의 선택지는 내가 뽑은 카드이기도, 이 사회 구조 속에서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들이기도 하다.

이 3가지의 카드 중 하나를 택하는 건 나의 몫이다. 나는 각 선택지들의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고민한다.


2) 또는 3)을 택하면 나는 그렇게 원하던 독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00도 안 되는 월급이지만,

그래도 아끼고 버티면 혼자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은 될 것이다. 당장 어디로 이직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1)의 선택지. 독립은 물 건너가고 2년간 가난한 일상을 살아야 할 것이다. 대학원을 졸업하면 31살이다. 나이를 신경 쓰고 싶지 않지만 압박감을 느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졸업 이후 나에게 어떤 가능성들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계속 문화 연구 관련된 일을 한다면, 석사는 언젠가는 따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머릿속이 핑핑 도는 것 같다가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여진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뭐지?

이 지겨운 질문에 또다시 봉착한 것이다.


서점에서 우연히 양귀자 작가의 소설 <모순>을 발견했다.  책 뒤에 있는 문구에 한참 동안 헤어 나오지 못하다가 바로 책을 사서 집에 왔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이 소설을 부디 천천히 읽어주기를 바라는, 작가의 말에 적힌 작가의 소망에 따라 한 페이지씩 오랫동안 책을 읽고 있다. 여전히 초반에 머문 독서지만, 위의 문장은 강하게 남았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에 대한 질문은 앞으로도 내 인생에 끊임없이 던져질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먼저 앞서 고민하고 애쓰기보다는 먼저 살아가는 쪽을 택해야겠다는 것.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든 실수는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되풀이되는 실수와 지겨움으로 가득 찬 것이 인생일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체념. 그리고 모순적이게도 그 체념을 통해서만 비롯되는 마음이 있다. 어차피 실수할 건데 고민해 봤자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 이상한 모양의 용기가 생긴다. 


머릿속 빵빵했던 고민들과 상념들에 얇은 바늘 하나가 톡 찌르고 간 느낌이다. 

상념들과 고민들은 조금 가벼워지고 드디어 내일 출근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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