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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Oct 18. 2020

가짜 사나이와 밀레니얼 세대

애인과 함께 보내는 밤이었다. 호텔 앞 편의점에서 야식을 사 와 유튜브를 보면서 컵누들과 육개장을 먹기로 했다. 아이패드로 유튜브를 클릭하는 애인에게 최근 어떤 영상이 인기 있는지 물었다. 애인은 '가짜 사나이'가  큰 인기라며 나에게 가짜 사나이 시즌 1의 영상 중 하나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영상을 튼 지 5분 만에 나는 애인에게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렇게 폭력적인 장면이 불편하지 않아?

특수부대 체험이 어떤 지점에서 궁금해?

이 교관들이 멋있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데?


애인의 대답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나에게는 군대가 인상 깊은 삶의 경험이었고, 따라서 미국의 특수부대가 어떤 방식의 훈련을 택하는지 궁금했으며, 여기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변화하는 과정을 따라 보는 데 재미가 있다'였다. 내가 추가 질문을 하자 애인은 자기를 분석대상으로 바라보지 말아 달라며  불은 컵라면을 내 앞에 가져다 놓았다.  약 두 달 전의 일이다.


그 이후로 우리 사이에, 그리고 사회에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가짜 사나이 시즌1이 누적 조회수 5천만을 넘기고, 엄청난 인기에 시즌 2가 제작되었다.  

시즌 1의 주역들이 광고 및 TV에 나오고 카카오, CGV와 같은 대기업들이 가짜 사나이 콘텐츠에 가지고 유튜브 콘텐츠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던 중 출연진들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출연진에 대한 논란은 치명적이었고 가짜 사나이 2는 방영을 중단하게 된다.


나와 애인 사이에서는 일종의 술래잡기가 이어졌다. 출연진들에 대한 논란이 있기 전, 그러니까 가짜 사나이가 인기가 치솟을 때의 일이다. 나는 그에게 왜 이 콘텐츠를 좋아하는지 물었고, 생각 없이 좋아하다 내 질문에 이유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그는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계속 대답을 회피했다. 

우리는 가끔씩 한국의 군대 문화에 대해, 폭력의 전시에 대해, 명령과 순종으로 이뤄지는 권력관계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글을 나눠 읽었다. 이야기가 깊어지면 그는 미디어 속 재현이 현실세계와 얼마나 긴밀하게 영향을 미치는지 의문스러워했다.


콘텐츠는 콘텐츠일 뿐 아니야?

미디어 재현에 있어 무언가를 주의해야 한다면 그 주의점은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거야?

차별과 혐오로 이어지는 콘텐츠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솔직히 그게 만들어질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 너무 어려워


그의 질문들은 미디어 재현을 둘러싼 논쟁들과 맞닿아 있었다. 이는 기안 84의 웹툰을 둘러싼 논쟁, 혐오 표현의 해악에 대한 여러 학자들과의 논의와도 연결된다. 그의 질문들에 나는 우리가 이렇게 대화하는 것 또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답하곤 했다.



출연진 논란으로 방영 종료가 되자 애인과의 대화는 멈췄지만, 나에게는 여러 질문들이 남았다. 특히 가짜 사나이 속 주요하게 다뤄지는 '퇴교종'이 자꾸만 남았다. 퇴교 종은  이 극한의 상황에 참여한 것도, 나가는 것도 모두 참여자의 자율적 선택으로 이뤄진다는 전제의 상징이다. 하지만 사실 이 종은 참가자들의 자율성에 기반하진 않는다.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참가자들의 욕망이 강조되는 서사인 만큼, 퇴교는 (여러 상황이 존재하지만 어쨌든) 자신과의 싸움에서의 패배로 그려지기 쉽다.  


더 나아가 참여자들에게 '가짜 사나이'는 주목을 통한 수익창출의 기회이다. 퇴교라는 행위는 주목 경제를 통해 돌아가는 유튜브 생태계와도 맞물려있다. 따라서 종과 출연진들의 관계는 독립적이지 않다. 하지만 출연진들 각각의 의지력만 강조되는 서사 속 구조는 사라지고 개개인에 대한 평가만 남는다


유튜브 피지컬 갤러리 캡처본 (C) 네이버 블로그 씨조 로그


사회학을 공부를 할수록 인간이 사회 구조와 얼마나 얽혀있고  관계 맺음을 통해 본인을 정체화하는지 깨닫게 된다. 나 혼자 개썅 마이웨이는 환상이라는 것. 

하지만 나 조차도 사회와 나의 관계를 정확히 설명해내지 못하겠다. 거칠게 말하면


그래 씨발 이게 다 거지 같은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일이라는 건 알겠는데 

아는 건 아는 거고 지금 내가 처한 거지 같은 상황이 다 내가 부족한 탓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 어쩌라고. 


요새 제니퍼 M. 실바의 <커밍 업 쇼트>를 읽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밀레니얼 노동 계급 청년들을 분석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이 책의 초반은 구조가 문제인 걸 알면서도  취약한 삶이 다 내 탓인 것 같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었다.


내가 인터뷰한 대다수 남녀는 안전한 성인의 삶을 꾸리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장애물을 설명할 때 정치를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이들은 아주 개인적인 층위에서 성인이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과거에 겪은 고통의 치유를 성인 정체성의 기반으로 삼아 해방되고 변형된 성인 자아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부모나 조부모 세대가 청년이던 시절에는 작업 현장에서 고되게 일해 집을 사고 가정을 꾸리면 성인기의 존엄과 의미를 획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기에 나와 이야기한 청년들은 감정 층위에서 자아를 관리하고 계획을 세워 심리 변화를 꾀하는 식으로 존엄과 의미를 재형성하고자 고투하고 있었다.


'작업 현장에서 고되게 일해 집을 사고 가정을 꾸리는' 삶이 불가하다는 것을 아는 지금 한국의 20대는 냉소를 무기로 주식 투자에 몰려든다. 코로나로 더욱 악화된 불안정한 삶 속에서 사람들이 개인의 감정에 몰두하는 것을 '존엄과 의미를 재형성하고자 하는 고투'로 읽어낼 수 있을까.


<비커밍 쇼트>는 노동 계급 청년들이 무드 경제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불확실한 사회 속 청년이 자아를 개념화하는 방식이 무드 경제를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당시 미국에서 치료(therapy) 언어와 제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시기와 맞물린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치료 모델은 심리적 감정적 성장에 집착한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주변 친구들을 자주 떠올리게 되었는데, 우리는 최근 '마음'을 잘 챙기라는 말을 서로에게 자주 하곤 한다. 만나서는 최근 어떤 우울감을 느꼈는지 등을 공유하며 우울해도 괜찮아와 같은 말들을 서로에게 전해주곤 했다. 어떻게 하면 '기분'을 좋게 할 수 있을지, 작은 소비품목들을 공유하는 게 큰 재미였다.


 <비커밍 쇼트>에서 진단한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분석이 가짜 사나이가 인기 있을 수 있었던 이유와 맞물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극한의 가학적인 상황에 출연진들을 몰아가는 것을 가짜 사나이는 개인의 감정적 정서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치료 프로그램의 일종으로 이를 정당화했다고 분석할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개개인들이 아무리 감정적 변화를 만들어 낸다고 하더라도 불안정한 노동 환경 시장에서 탈피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 참고문헌  제니퍼 M. 실바 지음, 커밍 업 쇼트, 리시 올, 2020년. 

- 게시글 메인 사진은 왓챠 피디아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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