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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표심 May 11. 2023

[내 몸] 미네랄이 문제였어

영양실조였다니

  밥을 적게 먹기 시작하자, 병원 가는 횟수가 줄었다.

 

  그래도 가끔 머리가 휘청했다. 이거 빨리 죽는 거 아닐까. 내 걱정할 때가 아니지. 아내가 먼저 죽을지도 몰라.


  우리 집 승용차는 한 두 달에 한 번씩 구급차가 되곤 했다. 새벽 한 시. 지하주차장에서 엑셀러레이터를 꾹 밟는다. 차는 두두두득 진동과 굉음을 내며 지상으로 튀어 올라온다. 


  아내는 아파트 1층 현관에 축 처진 채 겨우 어깨 숨을 쉬고 있다. 쭈그려 앉아 천국과 지옥을 넘나드는 그녀의 등을 두드려 주면, 꿰액 꿰액 구역질을 해댄다. 입에선 침이 질질 뚜욱뚜욱 늘어진다. 이미 화장실에서 다 게워내 속이 텅 빈 탓이다.


  아내는 휴지 뭉치로 입가를 닦고, 겨우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한다. 부축해 차에 밀어 넣으면 그녀는 널브러진다. 응급실료를 추가로 받지 않는 가까운 병원으로 질주한다.


  응급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또 왔냐는 미묘한 표정으로 어디가 아프냐고 묻는다. 


  피검사 후 진경제 주사를 맞는다. 탁탁탁 엉덩이 두드리는 소리. 액체를 찍 뿜는 바늘이 내 뇌를 콕 찌르면 눈가 신경이 움찔한다. 링거를 꼽으면 그녀의 불안은 뛰쳐나가고, 평온함이 침대에 함께 눕는다. 임시로 이틀 치 장염약을 받는다. 


  "피검사 결과는 어떤가요?"

  "특별한 이유는 없고, 영양실조인 듯합니다."


  영양실조라니. 평소 얼굴이 백옥생인데, 이 건 창백한 건가.




  "왜 아픈 것 같아?"
  "잘 몰라요. 원체 약하게 태어나서"

  "자신이 병을 고쳐야 해. 먹는 것을 조절해서 고쳐야 하고."


  아내에게 들은 바로, 그녀는 약했다. 고등학교 때는 버스나 집에서 쿵 쓰러지기도 했다. 때론 자다가 유체이탈(幽體離脫, out-of-body experience)을 해 천장을 쏘다녔다. 그러다 육체로 귀환했다. 나랑 만나기 위해. 


  결혼 직전에는 수개월 폐결핵 약도 먹었다. 아~ 뭐 이런 여자와 결혼을 했을까. 우리 엄마도 약해서 국민학교 4학년 때 돌아가셨지. 그때 코끼리 같은 여자와 결혼하리라 다짐했는데. 기도 제목에 '예쁜 여자'를 넣고 '튼튼한 여자'를 빼먹은 게 문제였나?


  이렇게 약해빠진 여자가 막내아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살기나 할까? 나 또 결혼하는 거야? 오호훗. 에고.


  아내는 오랫동안 병을 고치지 못했고, 나는 골머리를 싸맸다. 건강 정보를 수시로 찾았다.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이집트 홍수 자료를 보았다.


  에티오피아 고원에 매년 5월에 내리는 계절성 폭우로 나일강은 9-10월에 범람했다. 물이 쓸고 온 부엽토와 부식토와 섞여 나일강 하류를 덮었다. 비옥한 검은 충적토에서 수확한 최고의 밀과 보리를 먹은 군사는 최강이었다. [1] 이렇게 쌓인 토양에 '미네랄'이 풍부했다는 내용을 읽었다.


  그래? 미네랄? 오호~ 미네랄.




  비염으로 봄날 이비인후과에 갔을 때 의사 선생님에게 물었다.

  "미네랄이 건강과 직결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우리 병원에서 파는 '캡슐형' 멀티비타민을 드셔 보세요. 흡수가 잘 되니까요."


  한 달치 5만 원인 영양제를 아내와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역삼투압 정수기는 왜 비싼 미네랄을 모두 걸러버리는 거야~ 건강에 좋다고 해 설치해 놨건만. 그냥 수돗물을 끓여 먹었다. 제발. 이 처방이 적중하기를...


  한 달이 돼 가면서 둘 다 체력이 좋아졌다. 아내 영양실조에 미네랄이 한몫을 한 거겠지? 이 걸로 몸이 좋아졌다면... 십여 년 사용해 오던 역삼투압 정수기. 너는 뭐냐?


  W사 코딱지 역삼투압 정수기. 이놈이 제일 의심스러워. 딸깍 딸깍 매달 2만 원 넘게 삼킨 너 말이야. 네 놈의 죄를 알렸다~ 놈을 매우 쳐라! 정수기를 철수시켰다.


  히마리가 없던 아내. 매가리가 없던 나. 메칸더 브이. 캡슐형 멀티비타민 덕분에 나는 다시 짱가( 고등학교 때 별명 )가 됐다.


  아~ 몸은 약 말고 '영양성분'으로 고쳐야 하는구나.




  캡슐형 멀티비타민은 온 가족이 먹기에 부담이 됐다. 코스트코에서 2만 원하는 멀티비타민으로 바꿨다. 딱딱한 터블렛형이지만 씹어 먹으면 흡수가 잘 될 거야. 웬걸 다시 몸에서 바람이 빠졌다. 효과가 없네. 다시 비싼 캡슐형 멀티비타민으로 갈아탔다. 다시 몸이 제대로 굴러가네. 거 신기하네.


  지금까지 몸을 위해 가장 잘한 일은 영양성분 미네랄에 신경 쓴 것이었다.


  십여 년 전 코딱지 역삼투압 정수기를 버리고, 멀티비타민을 먹기 시작한 것.


  우리가 빌빌댄 건 바로 너~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역삼투압 정수기는 자꾸 아니라고 하소연한다.

  그래? 뭐가 그리 억울한데?

  자신은 아무 잘 못이 없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 그 건 너 >

-작사 작곡 : 이장희


모두들 잠들은 고요한 이 밤에

어이해 나 홀로 잠 못 이루나

넘기는 책 속에 수많은 글들이

어이해 한 자도 뵈이질 않나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어제는 비가 오는 종로거리를

우산도 안 받고 혼자 걸었네

우연히 마주친 동창생 녀석이

너 미쳤니 하면서 껄껄 웃더군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전화를 걸려고 동전 바꿨네

종일토록 번호판과 씨름 했었네

그러다가 당신이 받으면 끊었네

웬일인지 바보처럼 울고 말았네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그건 너 그건 너


< 참고자료 >

[1] 경제사 뒤집어 읽기 4 나일강의 선물 이집트 - 생글생글, 한국경제신문 2011.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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