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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라 Aug 01. 2023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영화관에서의 클레임

주말 저녁 9시.

조금은 허름한 영화관엘 갔다.

영화는 류승완 감독의 밀수였다.

그렇게 중요한 디테일은 아니다.

영화 상영이 3분의 1쯤 되었다.

다방 주인으로 분한 고민시 배우가 나왔다.

김혜수와 마주 앉는 장면에서 ‘그나저나-’

라고 말을 하는데 화면이 갑자기 블랙아웃 되었다.

고민시의 맛깔스러운 목소리만 계속 흘러나왔다.


행동력있는 남자 관객 한명이 나갔다.

뒤이어 다른 사람도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아마 영화관 관계자와 이야기를 했겠지.

그리고 곧 문제해결한다는 답변을 들었으리라.


예상대로 영화관 내의 조명이 환하게 켜졌다.

파트타임으로 영화관 안내를 하는 분이 들어왔다.

20대 초중반의 여성이었다.

곧 영화를 재상영 할테니 기다려달라고 했다.

죄송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몇 분 지나지 않아 한 남성이 들어왔다.

영화관 관리자 급으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영사기를 재부팅 중이니 3-5분 대기를 요청했다.

죄송하다는 말도 다시 덧붙였다.

그리고 일정이 급하다면 환불을 해주겠다고 했다.


높은 톤의 20대 여성 관객이 날카롭게 질문한다.

- 환불은 어디서 받아요?


관리자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 카운터에서 도와드리겠습니다.


 50대 남성이 일어나 걸어가며 이야기했다.

- 5분인지 10분인지 정확히 좀 해주세요.


한 30대 남성이 목소리 높여 질문한다.

- 영화를 처음부터 틀어요?


관리자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 3분에서 5분 사이 입니다.

- 재부팅에 시간이 걸립니다.

- 영화는 보시기 직전부터 다시 틀어드립니다.


영화관은 곧 조명이 꺼졌다.

영화는 3분이 지나지 않아 재상영되었다.

장면은 끊긴 1분정도 전부터 시작됐다.

고민시의 그나저나- 대사가 다시 나왔다.


우리는 모두 침착하게 영화를 끝까지 봤다.




영화는 몇번을 다시 틀어도 닳지 않는다.

큰 화면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잠시 끊긴 것이 몰입에는 방해가 되었다.

하지만 치명적이진 않았다.


내게 놀라운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회의실에서 쓰는 프로젝터도 로딩엔 시간이 걸린다.

하물며 영화관의 영사기야.

다음 영화 스케줄도 있으니 마냥 대기할 순 없다.

이정도야 아마 다들 알고 있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화를 냈을까.

인기 작가의 대화시간처럼 조바심난듯한 질문들.

조금은 억지스러운 내용의 비난섞인 질문.

왜 그런 클레임을 사람들은 너도나도 걸었을까?

무엇보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결론은 그러는 게 요즘의 덕목이기 때문이다.




요즘의 덕목이란 내가 아는 어떤 사람과 같다.


그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알뜰한 사람이다.

재테크는 스무살때부터 했다.

카드 포인트와 항공 마일리지의 귀재다.

놓쳐서는 안될 이벤트나 할인 정보의 보고다.

누구나 인정하는 브랜드를 세일기간에 직구로 산다.

일을 열심히하고 그 공적은 100% 인정받는다.

최신 트렌드와 유행어, 밈을 모두 알고 있다.

건실한 직장에 사이드 잡은 기본이다.

물론 블로그로도 몇십만원씩 벌고 있다.

그는 절대로 손해보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요즘 그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그와 같은 사람을 우리는 ‘똑똑하다’고 말한다.




영화관에서 그런 질문이 오간 것은 그래서 그렇다.


- 나는 똑똑한 사람이어야 한다.

- 바보처럼 손해를 봐서는 안된다.

- 모든건 정확하게 계산을 해야 한다.


그러는 게 이 시대의 덕목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다.

내가 알기론 덕목이 달랐던 것 같다.


-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람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 이해하고 양보하는 신사적인 사람이 되자.

- 여유를 가지는 삶이 행복하다.


사회적인 덕목의 내용이 바뀌게 된 데 혼란했다.

배려와 양보는 이제는 손해로 규정이 된다.

여유는 무지한 사람들이 부리는 것이다.

우리보다는 내가 더 중요하다.

나 자신의 영달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내가 체감하는 시대의 방향성은 개인의 이익이다.

덕목이었던 배려나 여유는 지나간 사상이다.

배려와 여유를 지향하기에는 외로운 시대다.

사회는 변한다.

그리고 이미 변했다.

‘똑똑’한 사람으로 사는 데 기쁨을 느껴야 한다.

이전의 덕목에 만족을 느끼는 사고를 조정해야 한다.


행복한 글을 쓰기 위해 돌아왔는데,

첫 글이 이렇게 쓸쓸해질 줄은 몰랐다.


왜냐면 혼자는 쓸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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