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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Sep 24. 2018

뭐가보여, 니가 불쑥 들어온 곳

<뭐가 보여>


오늘은 처음으로 음악에 대한 평론? 감상?을 가볍게 적어보려고 한다. 


가볍게 라기에는 노래가 너무 무거운 것 같기도 하다. 


얼마전에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적의 <같이 걸을까>를 듣게 되었는데, 그 때 같이 했던 말이 '와! 나 고3 때 이적 노래 진짜 많이 들었는데!' 였다.


이적이라는 가수를 내가 한마디로 정의해보자면, '음유시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노래들의 가사가 호소력이 짙고 굉장히 진정성이 느껴진다. 노래 역시 굉장히 잘 부르시는데, 자신이 적은 노랫말에 꼭 맞는 그의 감성으로 불러낸다. 그래서 팍팍한 고 3에게 이적의 노래만한 위로가 없는 것 같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노래는, 그러나 따뜻한 위로의 노래는 아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인간의 본질, 내면에 대한 노래이다. 


예전에 인간관계의 심리학이라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거기서 4 개의 자아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 정확한 지는 잘 모르겠고, 내가 전공자도 아니라 내가 지금부터 설명하는 용어에 대해서 맹신하지는 말아주었으면 한다. 내 기억으로는 그 4개의 자아의 구분은 내가 아는자아, 내가 모르는 자아, 상대방이 아는 자아, 상대방이 모르는 자아에 대해서 2*2의 표로 구분이 되어있는 자아였다. 

이 중에 내가 아는데, 상대방은 모르는 자아가 '숨겨진 자아'라고 한다.


'숨겨진 자아'라는 공식적인 명칭도 있듯이,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사람에게는 감추고 싶은 자신만의 비밀이 있다. 그것이 드러나질때, 무슨 생각이 들까. 감추고 싶은 것은 대게 어두울 것이고, 자신의 깊은 내면에 있는 것일 것이다. 

자신의 깊은 내면을 타인이 본다면, 모른 체 해주기를 바랄 것이고 못봤기를 기도할 것이다. 


이 감정을 이적은 <뭐가 보여>라는 노래에 너무나 잘 담아내었다. 다른 노래들과는 사뭇 다르게 그는 그의 짱짱한 내지르는 고음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깊은 곳을 어루만지는 듯한 낮고 울리는 목소리로 '내 허락 없이 불쑥 들어간 그 곳에서, 뭐가 보이냐고' 읊조린다. 


이 노래를 들어본다면, 숨겨진 자아가, '나'이기는 하지만 언제나 숨겨져야 하는 '내'가 위로받는 것을 느낄 것이다.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남들에게 절대 드러내고 싶지 않은 가시. 나의 치부. 

오늘 하루는 이 노래를 통해 그 숨겨진 '나'에게 위로의 인사를 건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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