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 작년 김장김치가 많다. 아직 그냥 먹기에 좋을 법도 하지만, 중간에 김치냉장고가 고장 난 바람에 김치가 심하게 쉬어 버렸다. 좋게 말하면 푹 발효된 것이지만, 그냥 생으로 먹기에는 쉰내가 강하다. 그래서 김치로 볶음밥도 해 먹고, 돼지고기나 통조림참치를 넣어 김치찌개도 하고, 볶음김치도 했지만 여전히 김치가 많다. 최근에는 김치를 지져 먹었더니 그 맛이 아주 좋아서 자주 해 먹고 있다.
묵은지지짐을 하려면 먼저 김치냉장고에 있는 다 쉬어 버린 김치 한쪽을 꺼낸다. 반 포기든 사분의 일 포기든 마음에 드는 녀석으로 커다란 한쪽을 꺼내어 대충 씻어낸다. 하얗게 굼떠 있는 게 보이거든 그 부분은 싹싹 씻어내지만, 양념이 완전히 달아날 정도로 자꾸 헹구지는 않는다. 적당히 씻어내도 양념이 거의 빠져나간다. 씻은 김치를 종종 썰어서 냄비나 팬에 넣고, 물을 지박하게 붓는다. 설탕을 한 큰술 넣고 멸치 한 줌, 다시마 몇 조각을 넣어 팔팔 끓이다가, 불을 줄이고 20분 정도 지지면 묵은지지짐 완성이다. 이 묵은지지짐은 그냥 먹어도 좋지만, 먹을 때마다 생들기름을 넉넉히 뿌려서 먹으면 잘 어울린다. 미리 멸치다시육수를 내어 두었으면, 멸치와 다시마를 넣지 않고 물 대신 멸치다시육수를 쓰면 된다. 굵은 멸치를 넣어도 되지만, 나중에 멸치를 건져내는 과정이 번거로울 수 있고, 굵은 멸치가 부서지면 보기도 좋지 않으니, 중간보다 잘은 볶음멸치를 쓰는 게 낫다.
오늘은 다른 반찬을 만들면서 묵은지지짐을 했더니 잠깐 사이에 물이 다 졸아들고 밑부분이 까맣게 타서 오래 지지지 않았지만 멸치 맛도 잘 어우러지고 맛있게 되었다. 묵은지지짐을 한 번에 넉넉히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어두면 며칠 동안 밑반찬 노릇을 톡톡히 한다. 생김치를 한쪽 자르면 먹는 속도가 더딘데, 지져두면 생각보다 소비가 빠르다. 마트에 가면 채소를 이것저것 사는데, 신선한 채소도 좋지만, 냉장고에 잘 숙성된 김치부터 부지런히 먹어야겠다. 뜨거운 여름이 오고 가을이 지나 해가 바뀔 때가 되면 또 김장김치를 담글 텐데, 새로 담근 김장김치를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묵은지를 먼저 먹는 게 우선이다. 양가에서 김장을 주시면 김치냉장고에 넣어두고 겨우내 잘 먹으려고 계획하지만, 조금 먹다 보면 겨울이 금방 지나고, 너무나 짧은 봄이 지날 무렵, 신선한 채소가 지천에 나오니 김장김치는 하염없이 냉장고 속에서 묵어간다. 이때, 묵은지를 먹기 만만하면서 맛있는 반찬, 묵은지지짐을 만들어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