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r Gray Apr 05. 2020

70. 핸드 메이드 감자전

(Week 41) 엄마, 아프지 마요


저녁 메뉴를 고민하다 감자 하나를 꺼내 들었다. 웬만한 어른 주먹 두 배 정도는 돼 보이는 큼지막한 아이다호 감자다. 삼분의 일 가량은 잘게 썰어 볶음밥에 넣고 나머지는 채를 썰어 볶아먹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문득 어릴 적 먹던 감자전이 떠올랐다. 엄마가 직접 갈아 만들어주시던 그 맛이 나기를 기대하며, 나 역시 강판을 꺼내어 남은 감자를 갈기 시작했다.


얼마 갈지도 않았는데 팔이 아파왔다. 왼팔로 바꾸자 왠지 어색한 느낌에 손을 다칠 것만 같아 다시 오른팔로 감자를 넘겼다. 5분이나 되었을까, 꾹꾹 눌러 갈고 나니 손바닥 정도 크기로 두 장은 부칠만큼의 재료가 준비되었다. 걸쭉하게 갈린 감자를 보며 아픈 팔을 주무르다 보니 어릴 적 엄마가 감자전을 해주실 때면 왜 항상 직접 갈아 만든 거라고 강조하셨는지 이해가 되었다.



김치전에 밀려 자주는 아니었지만, 가끔씩 해주시는 감자전이 나는 참 좋았다. 고소한 맛과 쫄깃한 식감을 좋아하는 나에겐 사실 그만한 간식도 없었다. 엄마는 감자전을 만드실 때면 믹서기를 사용하는 대신 꼭 직접 강판을 꺼내 갈아주셨다. 믹서기 날로 가는 것보다 강판으로 가는 게 더욱 식감이 좋다고. 믹서기로 갈아 만든 감자전을 먹어보지는 못했기 때문에 그 둘의 차이를 비교해볼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직접 갈아주신 감자전은 언제 먹어도 맛있었다.


갓 구워진 뜨끈한 감자전을 간장에 살짝 찍어 입에 넣고는 맛있어요를 연발하면 엄마는 이게 직접 손으로 갈아 만든 거니 맛있을 수 밖에라고, 자동반사처럼 늘 해오시던 말씀을 역시나 또 하셨다. 그때는 왜 그렇게 그 말씀을 꼭 덧붙이셨는지 알지 못했지만, 직접 갈아보니 나 역시 그 말이 입에 쩍쩍 붙는다. 아이가 뜨거운 감자전을 호호 불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자 묻지도 않은 그 말이 내 입에서도 나온다.


"맛있지? 이거 아빠가 직접 갈아 만든 거야."


미국에 온 지 9개월, 찬장에는 늘 감자가 한두 알 정도는 있었지만 이상하리만치 감자전을 부쳐먹을 생각이 나진 않았다. 주로 깍둑썰기로 잘라 볶음밥이나 찌개, 카레 정도에 넣었을 뿐. 그런데 오늘, 왜 하필 오늘은 감자전이 떠올랐을까.






엄마는 천만 도시 서울에 혼자 계신다. 그 북적대는 대도시에서, 여전히 크고 작은 성당 활동으로 분주하게 사람들과 교류하고 계시지만 큰 아들은 영국에 작은 아들은 미국에 살고 있으니 엄마는 혼자 서울에 살고 계시는 셈이다. 세상이 좋아져 언제든 맘만 먹으면 영상 통화를 할 수 있기에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얼굴을 보며 안부 인사를 드리지만, 그래도 엄마는 혼자 계신다.


전화를 드리면 대개 바로 받으시거나 못 받는 경우엔 어떤 사정으로 못 받으셨는지 곧장 문자를 주시는데 가끔은 받으시지도, 문자를 답을 주시지도 않을 때가 있다. 낮잠을 주무시는 줄만 알았는데 몇 차례 그런 일이 있고 반복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답을 하지 않으실 때는 대개 엄마가 어딘가 편찮으실 때였다. 목소리뿐 아니라 얼굴 표정까지 드러나는 영상 통화를 하게 되면 그걸 들킬까 봐, 멀리서 아들이 걱정할까 답을 하지 않으시고는 내가 잘 시간에 잘 지내니 나중에 통화하자는 문자를 남기셨다.




지난주에도 전화를 받지 않으셔 다음날 다시 전화를 드렸더니, 화면 속 엄마는 아니나 다를까 좋지 않아 보였다. 1년 이상 엄마를 괴롭혀온 아토피가 나을 듯 말 듯하다가 또다시 심해진 모양이다. 괜찮다 말씀하시는 엄마의 얼굴이 정말로 안 괜찮아 보여 한 걸음에 서울로 내딛고 싶었지만, 내가 간다 한들 달라지는 게 뭐가 있을까 자조 섞인 한숨만 나온다. 전화라도 자주 드리자 생각해 보다가도 엄마도, 내 마음도 불편하기만 하니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다.


며칠 엄마 걱정에 마음이 좋지 않더니, 그래서였을까? 엄마가 해주시던 감자전이 떠오른 것은. 강판에 꾹꾹 눌러 감자를 갈다 보니 팔이 아프다가도 문득문득 헛웃음이 새어 나온다. 왜 그렇게 직접 갈아 만드셨다고 강조를 하셨는지, 나는 또 왜 그 말을 반복하고 있는지.


기계가 아무리 편하다 한들 직접 손으로 만들어야 더 맛있다던 그 말씀이 맞는지 틀린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리 세상이 좋아져 영상 통화가 쉬워진다 한들 직접 만나 손을 잡아 보고, 안아도 보고,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가 더 맛있는지 정도는 이해하게 되었다. 원래 알던 사실이라도 어떤 것들은 종종 더 뚜렷하게 알게 되는 기분이 드는데 요 며칠이 그랬고, 오늘 감자전을 먹다 보니 더욱 그렇다.





매거진의 이전글 69. 홈스쿨링, 잔소리의 화살은 나를 향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