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알프스
코로나 확진으로 강제 국제 나그네가 된 우리 부부. 10일 간 프라하에만 있을 수는 없어 급히 구글 지도를 켜서 근처 나라들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결정한 곳은 오스트리아. 계획에 없던 10일 간의 오스트리아 여행이 시작되었다.
7년 전 혼자 유럽여행을 했을 때, 오스트리아는 내게 큰 감동이 있던 곳은 아니었다. 혼자 나선 여행이어서였을까. 할슈타트와 오버트라운의 자연은 아름다웠지만, 감동을 온전히 느끼기에 나는 당시 지쳐있는 상태였다. 배우자가 오스트리아를 가자고 처음 제안했을 때 솔직히 나의 마음은 시큰둥했다. 컨디션도 좋지 않은 탓에 다른 나라를 옮겨다니는 것이 귀찮기만 했다. 하지만 좋든 싫든 우리에게 주어진 10일이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인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비엔나를 거쳐 인스부르크를 향하기로 했다.
인스부르크는 나도 처음 방문하는 곳이었다. 배우자는 설레는 표정으로 인스부르크 사진을 내게 보여줬다. 알프스 산맥이 바로 눈 앞에 펼쳐진 인스부르크의 풍경 사진은 내 마음을 바로 사로잡았다.
하필 우리가 10일을 더 묵게 된 시기는 유럽의 숙박비가 솟아 오르고 있는 때이기도 했다. 이왕 돈을 더 쓰게 된 거 인스부르크에서 제대로 휴식을 취하자는 마음으로 꽤 괜찮은 호텔을 예약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호텔에서는 우리의 예약이 시스템 상 승인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모든 방이 꽉 차는 바람에 당일 예약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이미 호텔 값을 모두 지불한 상태였는데 말이다. 다행히도 호텔 매니저는 이 상황이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시스템의 오류이고 해당 호텔의 실수였다고 판단했다. 매니저는 바로 근처 다른 호텔의 방을 잡아주겠다고 했고, 우리가 예약했던 가격에 1.5배 더 비싼 곳이었다. 예약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지’라고 생각했지만, 새로운 호텔 방을 들어서자 모든 근심이 녹아내렸다. 알프스 산맥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 우리의 방은 코로나 확진으로 너덜해진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기 충분했다.
인스부르크는 크면서도 작고, 작으면서도 큰 도시 같았다. 인스부르크 공항과 대학교가 있고 동계 올림픽도 개최한 도시였다. 동시에 도보로 걸어다니기 충분한 크기여서 3일 내내 도시 구석구석을 누비며 다녔다. 무엇보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는 알프스 산맥은 볼 때마다 감동이었다. 길거리 악사들이 들려주는 음악은 제목을 ‘인스부르크’라고 지어도 좋을 정도로 도시의 매력을 더 돋보이게 해주었다.
인스부르크에서의 최고 경험은 단언컨대 알프스 산맥을 오른 것. ‘올랐다’고 하기에는 리프트를 타고 가긴 했지만, 꼭대기로 올라가 300m 정도는 험준한 경사를 직접 올라야 했다. 유럽인들의 산 사랑을 이날 느꼈다. 우리나라 산맥과 달리, 알프스 산맥은 평야에서 갑자기 솟아오르는 형태이고 그만큼 경사가 심하다. 그럼에도 리프트 아래로 펼쳐진 풍경 속에서 자전거로, 혹은 도보로 산맥을 오르는 유럽인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 경사를 맨 몸으로 오른다고?’ 싶을 정도이다.
꼭대기에서 만난 여행객들은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알프스의 경치를 함께 감탄했다. 아주대학교에서 대학원 과정을 갓 마치고 여행 중인 타지키스탄 사람도 만났다. 역시 여행객들은 서로에게 친절하다.
내가 이 풍경을 보려고 코로나에 걸렸었나보다. 이렇게 웅장한 자연 앞에서 코로나가 대수라고. 지금도 눈을 감으면 인스부르크에서 만난 알프스가 떠오른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인스부르크가 보고싶다.
계획에 없던 여행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최고의 여행지였다. 우리의 여행은 오스트리아가 진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