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거리는 회피성향
내가 가진 현재 상황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갑자기 버겁게 느껴져서 다 포기하고 싶은 그런 때. 남들이 보기에는 예민하게 받아들일 게 아니지만, 유독 내게는 크게 와닿아 마음에 돌덩어리가 얹어진 느낌. 결혼이라는 시스템이 내게 주는 기대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출산을 하고 배우자를 보필하며 내 자신은 죽여야 하는 기대에서 보란 듯이 탈출하고 싶다.
이혼하고 싶은 마음과는 또 다르다. 지금의 배우자를 좋아하고 함께 있을 때 즐겁다. 배우자와는 함께하고 싶지만, 결혼이라는 체제에서는 자유롭고 싶다.
나는 회피 성향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냥 포기하고 싶고 극단적인 생각으로 치닫는다. 결혼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가슴이 먹먹할 때면 다 내려놓고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작년부터 다시 해외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완전히 다른 사회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욕구가 끓어오른다.
오늘 배우자가 새로 이직한 교회에 첫 주일 예배를 드리고 왔다. 새로 왔으니 모르는 사람 투성이고, 낯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새로운 동네, 새로운 집, 새로운 사람들. 내가 새로운 일상을 시작할 곳. 그 모든 것을 처음 마주하니 여러 마음이 든다. 내가 잘 생활할 수 있을까? 낯설다. 먹먹하다. 별로다. 이건 좋네. 내가 선택한 건 아니었는데. 모두가 나를 '사모님'이라고 부른다. 목사인 배우자와 언제나 한 세트로 묶여서 살아야 하는 삶. 내가 과연 평생에 걸쳐 잘 견딜 수 있을까?
배우자는 오늘도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사택을 둘러보고 나니 궁금증이 해결되면서도, 반대로 더 막막해지는 마음도 든다. 내 얼굴에 심난함이 나타난 것을 눈치챈 배우자는 내가 좋아할만한 것들을 말하며 내 기운을 북돋기 위해 노력한다. 고맙다. 내가 좀 더 무던한 아내였다면 좋았을걸.
내 삶에 책임을 지는 어른이 되고 싶다. 싫다고 찡찡거리는 게 아니라 당당히 직면하고 깨뜨리는 내가 되고 싶다. 책임지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결혼을 통해 배운다. 결혼생활, 쉽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