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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레네 Mar 19. 2023

가벼운 글쓰기

크리스티앙 보뱅의 <가벼운 마음>을 읽고

나는 글을 쓸 때 잉크로 쓰지 않는다. 가벼움으로 쓴다. 설명을 잘했는지 모르겠다. 잉크는 구매할 수 있으나 가벼움을 파는 상점은 없다. 가벼움이 오거나 안 오는 건 때에 따라 다르다. 설령 오지 않을 때라도, 가벼움은 그곳에 있다. 이해가 가는가? 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 어름비의 도도한 서늘함에, 침대맡에 팽개쳐둔 펼쳐진 책의 날개들에, 일할 때 들려오는 수도원 종소리에, 활기찬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음에, 풀잎을 씹듯 수천 번 중얼거린 이름에, 쥐라산맥의 구불구불한 도로에서 모퉁이를 돌아가는 빛의 요정 안에, 슈베르트의 소나타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가난 속에, 저녁마다 덧창을 느릿느릿 닫는 의식에, 청색, 연청색, 청자색을 입히는 섬세한 붓질에, 갓난아기의 눈꺼풀 위에, 기다리던 편지를 읽기 전에 잠시 뜸을 들이다 열어 보는 몽글몽글한 마음에, 땅바닥에서 ‘팡’하고 터지는 밤껍질 소리에, 꽁꽁 언 호수에서 미끄러지는 개의 서투른 걸음에, 이 정도로 해두겠다. 당신도 볼 수 있듯, 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벼움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드물고 희박해서 찾기 힘들다면, 그 까닭은 어디에나 있는 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기술이 우리에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 크리스티앙 보뱅, <가벼운 마음> p.68 -

스무 살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꾸준히 글을 써 왔다. 대학생 때는 소소한 일상이 글의 소재가 되었다. 새로 만난 사람들, 공강 시간에 친구들과 나눴던 이야기들, 서로의 꿈을 나누고 반짝거렸던 순간들을 썼다. 시간이 흘러 말라위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내 마음이 구겨져 있었을 때, 그때 언저리부터였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내 글의 뮤즈는 화, 비판, 답답함이었다. 경향성이 두드러지는 내게 불편하다고 다가오는 일이 있다면 나는 글을 쓴다. 분노의 타이핑을 할 때도 있다. 누군가는 말로써 감정을 해소하고, 나에게는 글이 그 창구이다. 그러던 중 위의 책을 읽게 되었다.


글을 좋아하는 나지만, 아직도 글의 소재로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세상을 향해 소리 지르고 싶은 답답함이 없다면 어떤 주제로 글을 쓸 수 있을까? 이제는 조금 가벼운 무게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크리스티앙 보뱅이라는 작가를 만난 것은 기쁨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내 방식이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하지는 않은지 생각할 때가 있다. 가끔은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직관적인 감정에 충실하며 느끼고 싶은 때가 있다. 20대 때는 단순함, 가벼움, 안정성이라는 단어를 배척했다. 항상 진중하고 무겁고 복잡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을 멋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다. 이미 살아가기 만만치 않은 이 세상, 그 가운데 오히려 가벼움을 찾는 것이 더 멋진 모습 아닐까?


가벼움으로 글을 쓰게 된다면 무엇보다 글을 더 오래 쓸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화나는 상황이 없으면 글을 안 쓰게 된다.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글을 썼다면, 이제는 글을 더 가까이에 두고 싶다. 숨을 쉬는 모든 순간이 글로 연결되었으면 좋겠다. 며칠만 지나면 새로운 곳으로 생활 반경을 옮기게 된다. 그곳에서 다른 무엇보다 가벼움을 발견하고 싶다. 새로운 일상에서 찾게 되는 가벼움을 글에 담고 싶다. 그렇게 될 때 주어진 삶에 감사하는 나 자신이 되기를, 소소한 기쁨을 발견하는 내가 되기를, 우리 모두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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