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에세이
죽음 때문에 삶은 고행이다. 그 어떤 노력을 해도, 생명체는 죽음을 필연적으로 겪기 때문에 삶은 허무하며, 고뇌와 번민의 연속이다. 죽음의 과정은 의학적으로 죽음을 겪는 당사자에게 큰 고통을 동반할 뿐만 아니라 죽음을 맞이하는 자와 연결된 모든 사람들과 관계를 단절시킴으로서 남은 자들에게 커다란 심리적 고통을 유발한다.
21세기의 발달된 자본주의 현대 문명이 제공하는 즐거움과 편리성을 누리며 삶을 살아가는 현대 인류는 20세기 이전의 인류에 비해 훨씬 발전된 산업으로 생활의 필요한 물품을 쉽게 공급받고, 농수산업 및 유통의 발달로 식생활이 풍족하며, 의학의 힘으로 훨씬 더 건강하고 오래 산다. 적어도 생존에 필요한 필수 요건에 있어서는 10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진일보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발달한 과학 문명과 의학의 눈부신 발전도 인간을 죽음의 운명을 막지는 못한다. 결국 우리가 궁극적으로 답해야 하는 질문은 ‘불가피하게 닥쳐오는 자연적인 인간의 생로병사, 시시각각으로 예측 불허하게 일어나는 각종 사건사고, 자연적 재앙으로 인한 손상과 죽음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며,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 인 것이다.
의료인으로서 나는 많은 죽음을 목도한다. 어떤 분은 최선의 치료에도 불구하고 질병의 진행으로, 어떤 분은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으로, 어떤 분은 사고를 통해 이 세상을 떠나고, 나는 세상을 떠난 그 분들이 의학적으로 사망했음을 검증하고, 사회적/법률적으로 사망을 증명하는 자료를 작성한다. 특히 질병의 진행으로 적절한 의학적 치료에도 반응이 없어 사망하는 경우 죽음의 과정을 적지 않은 기간동안 지켜보는 경우가 많고, 그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종종 있다.
죽음 앞에 선 인간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많은 분들은 신체적 고통보다도 죽음 이후에 대한 심한 두려움과 공포를 느낀다. 사후경험과 관련한 죽음학(Thanatology, 죽음 과정과 이후에 대한 과학적 연구)에 대한 의학적 연구가 서서히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아직 주류 분야는 아니다. 더 나아가 죽음의 과정은 오롯이 혼자 견뎌야 하기에 절대적인 외로움이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감을 악화시킨다.
그렇다면 죽음 앞에 선 인간은 무엇을 후회할까? 적어도 내가 겪은 좁은 경험의 범위에서는 사람들은 본인의 사회적 성취나, 부의 축적을 충분히 하지 못한 것보다, 인간 관계적 측면에서 삶의 후회를 가장 많이 했다. 사랑하는 가족과 충분히 행복한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 것, 서로 상처를 주어 관계가 멀어진 것, 형제 자매, 친구와 오해로 오랜 시간동안 단절하고 지낸 것 등이다.
앞서 말한 두려움, 공포, 극심한 불안과 후회를 하지 않았던 분들도 드물게나마 본적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한 분을 소개하고싶다. 문학을 전공하신 대학 교수님이셨는데, 나에게 어떤 자세로 죽음을 맞이해야하는가에 대한 모범 답안을 제시해주셨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혈액암을 진단받아 항암 치료 후 재발하여 돌아가셨는데,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 및 임종 때까지 항상 모든 의료진과 가족에게 항상 감사해하셨다. 임종 때 사랑하는 가족 및 친구들에게 부족하고 미숙했던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자신으로 상처받고 힘들었던 모든 사람들에 대해 용서를 구하였고, 사랑한다는 것을 아낌없이 표현하셨다. 그는 아마 본인 스스로 어떤 인간으로 삶을 살아왔는지 진지하게 성찰하고, 본인의 불완전함과 부족함을 인정한 후, 있는 그대로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자신과 주변인들을 사랑하고 배려하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셨었다. 질병으로 무너져가는 육체에 깃든 정신이 얼마나 숭고해질 수 있는지 알려주신, 죽음 앞에 선 인간의 훌륭한 모범 답안이었다.
삶은 부조리하고, 고행의 연속이다. 난 프랑스 작가 알베르 까뮈의 ‘시지프스의 신화(Le Mithe de Sisyphe)’를 무척 좋아한다. 언덕위로 고통스럽게 돌을 끝내 밀어 올려도 다시 원점으로 굴러 떨어지는 형별을 받은 존재인 시지프스는 부조리의 무환 순환을 겪는, 죽음 앞에 선 인간 그 자체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 부조리한 삶 자체를 뜯어 고칠 수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좌절하고 포기하고 순응해야 하는가? 허무한 삶 앞에서 순간적인 쾌락만을 좇아야 하는가?
외부에서 우리를 압도하는 거대한 운명론적 수레바퀴와 불안한 미래 앞에서, 우리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을 해야 한다. 바로 삶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이 부조리와 허무에 내 존재가 다해 스러질 때까지 끈질기게 저항하는 것이다. 작고 일상적인 것에 감사하고,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최소한 불행과 시련을 적게 주기 위해서라도 내가 맡은 작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실패와 고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고, 찾아온다. 사람의 삶은 잠깐 성장이 멈출 수 있고, 좌절을 겪을 수 있다. 당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것은 시련과 고통을 겪지 않는 것이 아니라, 겪더라도 고꾸라지지 않고 한번이라도 더 일어서는 것이다.
의료인으로서 많은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고, 말을 할 수 있고, 먹고 마실 수 있고, 걸어 다닐 수 있고, 학교와 직장을 다닐 수 있고, 사람들과 만나서 의사소통 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절절하게 느낀다. 평범하고 건강한 사람들의 일상을 하루만 살 수 있다면 어떠한 대가라도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안다. 그러기에 나도 의료인으로서, 아니 죽음 앞에 선 한 평범한 인간으로서 허락된 삶 동안 충실하게 내 역할을 다할 수 있기를, 내 가족에게 행복과 안정을 줄 수 있는 책임감 있는 존재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