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UX Writing Lab Aug 11. 2022

증권사에서 경험한 나쁜 글의 사례

이 글은 어려운 글 때문에 벌어진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담고 있습니다. 


한 증권 거래 서비스에 쌓인 짜증이 격분으로 바뀐 것은 

암호풀듯 해독해야 하는 어려운 글, 

그리고 나의 어려움에 대하는 직원들의 한결같은 차가움 때문이다. 



1. 이 서비스와의 인연 


먼저 이 증권사 앱에 대한 평소의 감정을 이야기 해보자면, 나의 시간과 감정을 잡아먹는 서비스라고 표현하고 싶다. 


어려운 설명

찾기 힘든 메뉴

이렇게 만들기도 힘들었겠다 싶을 정도로 복잡한 단계

중복은 넘치는데 필요한 건 찾기 어렵다. 

상품마다 다른 거래 방식 


시스템 안에서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해 몇 시간을 헤매다 고객 센터에 전화하거나 지점을 찾아가기 벌써 여러 번이다. 


이 많은 이체는 다 어떻게 다른가, 사용자들은 이렇게 다양한 용도로 이체하나? 


로그인 첫 화면. 내가 제일 보고 싶은 내 자산은 어디로 가야 할까



간단한 거래 하나를 할래도 단단히 마음을 무장해야 하지만 그래도 다른 증권사로 쉽사리 옮기지 못하는 이유는 해지하고 옮기기를 귀찮아하는 소위 '가둬진' 고객인 탓이다.  


절망하고 짜증이 난 나는 나를 상대하는 직원 또한 일상이 힘들고 아무 잘못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짜증 섞인 하소연을 하고 만다. 


나: 도대체 서비스가 왜이리 어려워요. 

증권사 직원: 쓰다 보면 어렵지 않아요


쓰다 보면? 


얼마나 더 써야 할까? 

몇 시간, 몇 일 헤맨 것으로는 아직 충분치 않은 것인가? 

어려운 학문을 달성하듯 이 서비스 사용법을 평생 동안 숙지하기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정말 신기한 것은, 

풀다 풀다 못푼 암호를 들고 화난 상태에서 만난 서로 다른 직원 모두가 

동일하게 답한다는 것이다. 


고객이 실수하면 고객을 탓하기 
서비스는 아무 잘못도 없다고 발뺌하기


고객 대응 매뉴얼에 고객 탓으로 돌리라는 항목이 있는 걸까? 

서로 다른 응대원들의 대답이 무섭게 일관되다. 


나는 이렇게 이 서비스에 대한 인상을 형성하게 되었다. 

어려운 글, 어려운 절차

고객에게 책임 전가



2. 사건의 발단. ISA 계좌 개설 이벤트


2.1. 이벤트 참여하기

세금 혜택을 위해 ISA 계좌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평소 거래하던 이 증권사에서 계좌 개설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어차피 가입해야 하니 이왕이면 상품권을 받고 싶다. 


글은 어렵고, 조건은 복잡해 보이지만 

상품권을 받겠다는 나의 의지가 강하니 글을 꼼꼼히 읽고 조건을 충족시켜 보기로 결심했다. 



상품권 지급 조건. 


내가 파악한 조건은 2+1이다. 

1. 이벤트 신청하는 달까지 순입금액에 해당하는 금액을 거래하고

2. 다음 달까지 잔액을 유지한다. 

-> 그 후에 이 페이지로 다시 돌아와 이벤트 신청을 꼭! 하라. 


계좌 개설, 조건 충족, 이벤트 참여를 마치고 나는 룰루랄라 상품권 받기를 기다렸다. 

 


2.2. 상품권을 받지 못하다

6개월이 지났을까.. 상품권을 받지 못한 것을 깨닫고 고객 센터에 전화를 했다. 


고객님,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해요. 

1. 필요 금액을 예치해야 하고요, 

2. 거래를 해야 해요. 

3. 잔고를 유지해야 합니다.

-> 그리고 나서 이벤트 신청을 해야 합니다.  


이상하다. 분명히 조건을 만족시키려고 꼼꼼히 따졌는데 뭘 잘못 했을까.  3가지 조건이 이렇게 명확하다면 한 가지를 뭉터기로 빼어둘 리는 없는데... 그러나 지금은 이미 6개월이나 지난 시점..  정확히 기억할 리가 없다. 


나: "고객님은 거래를 하지 않으셨어요"

직원: "거래를 안했나요? 그렇게 분명한 조건이 있다면 제가 거래를 안했을 것 같지 않은데.. "

        "2월에 신청하고 2월에 거래해야 했는데 고객님은 3월에 거래하셨어요."

나: "2월까지 거래하라는 조건이 명기되었나요?"

직원: "그럼요."

나: "혹시 이 때 페이지가 남아 있나요? 제가 조건을 충족시키려고 꼼꼼히 체크했거든요.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어요."

직원: "이번 달 이벤트가 동일하니 이 페이지에서 확인해 보시죠."


상품권 지급 조건. 


다시 읽어보니 2+1이 아니라 3+1이다.


내가 이해한 이벤트 참여 조건: 2+1

1. 이벤트 신청하는 달까지 순입금액에 해당하는 금액 거래

2. 다음 달까지 잔액 유지

-> 그 후 이벤트 신청


이 글에서 요구하는 이벤트 참여 조건: 3+1

1. 필요 금액 예치

2. 거래

3. 잔고 유지

-> 그 후 이벤트 신청


인생은 얄궂게도 시험볼 때는 답을 모르는데 정답을 알고 나면 정답이 보인다. 


내가 오해한 건 두 가지다. 

1. 조건 1번을 액션 하나로 오해했다. "기간 중 순입금액에 해당하는 금액 거래"는 "입금을 하고," "금액을 거래하는" 두 가지 조건이지만 번호 하나로 표기되어 있어 한 가지 액션으로 생각했다. 

2. '거래'를 더 큰 의미로 생각했다. '이체'도 '거래'의 하나로 생각했다.  


나는 1번 조건에 따라 ISA 계좌에 돈을 이체했고, 이체한 행위로 1번의 거래 조건을 완료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정답을 알고 나니 보이는 정답. 

분명 내 실수다. 



2.3. 왜 나는 이 서비스에서 자꾸 실수를 저지르는가 + 내가 화난 이유


왜 나는 이 서비스만 들어오면 간단히 해결할 일도 서비스를 붙들고 씨름해야 하는가?

내 문해력은 도저히 만족시킬래야 만족시킬 수 없는 극단의 범주에 속하는가? 


허탈해서 고객 응대원에게 하소연을 한다. 


나: "이렇게 써놓으시면 어떡해요. 3가지 조건이 아니라 2가지 조건으로 오해했잖아요." 

직원: "고객님은 이러이러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해 이벤트에 당첨되지 못하셨습니다." 

나: "알아요. 하지만 조건을 2개로 써놓으셔서 착각했잖아요."


조용. 


나: "너무해요. 상품권 받으려고 가입했는데.. "

직원: "그럼 이 글을 쓴 서비스 팀에 전달할까요?" 


감정이 극도로 치달은 건 바로 이 순간이다. 

들어도 들어도 기분 나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책임을 지겠다는 차가운 답변. 

그 일관성을 또 마주한다. 


어려운 글, 어려운 절차

고객이 실수하면 고객을 탓하기 

서비스는 어떤 잘못도 없다고 발뺌하기


고객 응대 근로자들은 나쁜 글 때문에 잘못 하나 없이 내 화를 받아야 하는 극도의 노동을 수행중이다. 


알지만...  화가 누그러지지 않는다. 



3. 불분명한 글과 고객의 감정을 읽지 못하는 대응으로 이 서비스는 무엇을 잃었을까


한 인간이 서비스나 기업과 하는 상호 작용은 인간이 다른 인간과 상호 작용하는 것과 동일하다. 


이 증권사는 자꾸 내 인내심을 테스트한다. 나의 잘못을 들쑤신다. 


서비스를 향한 미움이 마구 마구 피어난다. 


이 서비스에 질릴대로 질린 나는 '잘 바꾸지 않는 충성도 높은 보수적인 성향'의 사용자 속성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인 주식 거래를 위한 사용성 좋은 증권사 앱을 다운받았다.  


불분명한 글과 고객의 감정을 읽지 못하는 대응으로 이 서비스는 무엇을 잃었을까. 


글이 좋았다면

잃지 않았을 고객

잃지 않았을 고객의 혜택

고객이 목적을 잘 끝내서 줄어들었을 문의

분노한 고객들의 토로를 받지 않아 덜 힘들었을 고객 센터 직원

 

피치 못할 상황에서 고객의 감정에 적절하게 대응했다면                

누구러들었을 고객의 감정

급기야 폭발한 고객으로 인해 이런 글이 노출되지 않아 유지했을 브랜드 이미지 



좋은 글은 

존재감이 없다.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좋다 나쁘다의 판단이 들지 않는다. 



나쁜 글은 

생각하게 만든다. 

실수를 낳는다. 

존재감이 무지막지하다. 서비스탓을 하다, 이해못하는 자신을 자책한다.  

작은 갈등을 낳기도, 때로는 이별을 낳기도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