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 엠 러브(I am love, 2009) 리뷰
이성에 묻혀 있던 감성의 세계
<아이 엠 러브>의 주인공 엠마는 엄격한 이탈리아의 상류사회에 동화되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녀가 결혼한 레키 가문은 완벽한 품위와 이성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가문이다. 초반부 그녀는 레키 가문의 규율과 전통 속에서도 남편의 현숙한 부인으로, 장성한 아들과 딸의 엄마로 훌륭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엠마는 평소에도 빛을 피해 커튼을 치고 지내는 등 대궐 같은 저택의 답답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태생이 이탈리아 귀족 가문 출신이 아닌 러시아인 것 또한 외로움을 가중시키는데 일조하는 역할을 한다. 러시아와 이탈리아 어디에도 편입되어 있지 않는 듯한 불안감은, 그녀가 매사 조심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을 통해 드러난다.
반면에 엠마의 딸은 그녀의 욕망을 선취한 인물이다. 딸은 지금까지 오랜 시간 배웠던 전통적인 예술 공부를 그만두고 사진가의 길을 선택한다. 완성까지 오랜 시간을 요구하는 전통적 회화에서 순간을 포착하는 현대 예술인 사진으로 옮겨가면서, 그녀의 작품세계는 기존의 관습적 세계와 결별한다. 또한 약혼자였던 남성과 파혼하고 예술가인 여자 친구를 만나는 등 전통과 이성의 상징이었던 집에서 떠나 자신의 감정과 자유에 충실한 삶을 선택한다. 엠마는 딸의 선택을 응원해 주면서도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휩싸인다. 그 후 엠마의 단단하고 견고한 전통의 세계는 아들의 친구인 안토니오를 만나면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뛰어난 요리사인 안토니오는 엠마가 잊고 있었던 황홀한 감정을 일깨워준다. 엠마는 안토니오의 음식을 맛본 뒤 잊고 있던 감각에 온 몸에 전율을 느낀다. 정성이 가득한 음식들은 엠마의 의식 저 너머에 있던 본능적인 감각의 흔적을 찾아낸다. 가장 원초적인 감각인 미각을 통해, 그녀는 감각의 욕망을 다시금 느낀다. 엠마는 깨어난 감각이 주는 희열감에 곧 도취되었고, 이후 안토니오를 떠올릴 때마다 자신이 다채로운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리고 마침내 안토니오를 만나기 위해 그의 별장이 위치해 있는 곳까지 찾아가기에 이른다.
가장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사랑
안토니오는 이 영화에서 가장 원초적인 인물이다. 훌륭한 요리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산의 정상 부근에서 식재료를 키우는 등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사랑하고 가까이 둔다. 가식이나 위선을 부리지 않으며 매 순간 엠마에게 자신의 생각과 욕망을 꾸밈없이 드러낸다. 이는 엠마와 안토니오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도 가장 극대화되어 나타난다. 엠마의 환한 얼굴이 비치는 장면 사이사이에 꽃과 들판의 풀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 벌이 꿀을 찾아 날아다니는 모습을 병기함으로써 사랑의 원초적 아름다움을 효과적으로 묘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안토니오는 감각이 중심이 되는 감성적인 세계로 이성으로 얼어붙은 엠마의 세계를 녹여낸다. 오감의 측면에서 모두 완벽했다. 시각의 황홀경은 물론 음식이 등장할 때마다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하는 미각의 성찬, 엠마와 안토니오가 정사를 나눌 때 살과 살이 맞부딪치는 감촉과 더불어 서로의 체취, 풀이나 흙냄새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촉각적인 세계. 안토니오는 엠마에게 오감을 생생하게 일깨우는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어 그녀의 육신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둘에게 있어 서로는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세계였던 것이다.
영화의 결말부에서 엠마는 레키가를 떠나 자유를 되찾는다. 자신을 없는 사람이라 말하던 남편에게서, 숨 막히는 전통과 관습으로부터, 그리고 그 모든 심리적인 압박감과 의무감으로부터 벗어난다. 이는 안토니오와의 교류 덕분이었다. 엠마와 안토니오의 만남은 사회 속에서 결핍된 자신을 자연에서 찾으려는 인간의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에로스는 모두 상실한 본성의 온전함을 회복하도록 이끌어 가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합하고 합쳐져서 둘이 하나가 되는 것, 이 상태야 말로 우리들의 원초적 본성은 하나였고 한 몸이었다는 느낌을 갖게 해 주기 때문이다.
*다음 글은 3부(完)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