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리뷰
그해, 여름 손님
영화 <콜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2017)>의 엘리오(티모시 샬라메役) 역시 올리버(아미 해머役)를 통해 스스로에게 잠재되어 있던 욕망과 감각을 깨닫는다. 이탈리아 북부의 여름, 엘리오에게 낯선 손님 올리버가 찾아온다. 올리버는 엘리오 부모님의 초대로 보조 연구원으로 머물게 되는데, 미국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그는 박식하면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다. 엘리오는 왠지 올리버가 첫눈에 신경 쓰였다. 그러나 곧 자유분방하면서도 천진하고 신비한 매력으로 사람을 매료시키는 올리버에게 이끌리기 시작한다.
올리버를 만나기 전 엘리오의 세계는 음악 그리고 책이 삶의 전부였다. 엘리오는 현명한 부모님과 매일 지적인 대화를 나누고, 직접 작곡을 하고 피아노와 기타 연주를 하는 등 예술과 학문에 대한 조예가 깊은 소년이다. 엘리오의 일상은 누구보다도 평탄하고 안정적이고 유복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올리버가 나타난 이후 엘리오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 시작한다. 박식함에 있어 누구보다 뒤지지 않을 엘리오의 아버지에게 살구의 어원을 잘못 알고 있었다고 되짚어주고, “I know myself(나는 나 자신을 잘 알아)”를 확신하듯 말하는 올리버를 괜히 친구들과 가족들 앞에서 놀리지만, 어느새 이런 심리상태 자체가 자신이 그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임을 깨닫는다.
곧 올리버로 상징되는 어른의 세계는 청소년인 엘리오에게 강렬한 자국을 남기기 시작한다. 엘리오는 올리버가 어깨를 주무르기만 해도 참을 수 없이 간지러운 욕구를 느끼고, 다른 여자랑 춤을 추거나 외박을 하고 들어오는 날에는 뜬 눈으로 밤을 새운다. 또 올리버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를 참지 못하고 그의 팬티를 뒤집어쓰거나, 그를 생각하며 엎드려 자위한다. 엘리오는 온몸을 강타한 심리적 동요를 천천히 음미하며, 차츰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본 영화에서 복숭아는 에로스적 사랑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특히 첫 장면에 복숭아를 따는 미장센 컷은 마치 에덴동산에서 금지된 사과를 따는 이브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건드려서는 안되는 금단의 열매는 너무나도 달콤했다. 엘리오의 감정 곡선은 서로를 향한 감정을 고백한 이후 복숭아로 자위하는 장면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엘리오는 나무에서 딴 복숭아가 짐짓 엉덩이와 비슷하게 생긴 것을 깨닫고 복숭아로 자위를 한다. 올리버가 자위를 하느라 멍든 과일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며 이를 먹으려고 하자 엘리오는 그만 울음을 터트린다. 그 순간 엘리오는 지금까지 살면서 타인이 자신에게 이렇게 친절하거나 자신이 이만큼 남을 위해 마음을 내어준 적이 없음을 깨닫고, 그와 있는 시간들이 행복한 동시에 무서웠던 것이다.
감성의 세계에 눈뜨다
한편 엘리오와 올리버의 만남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교류(1부 참조)와 흡사한 모습을 보인다. 나르치스는 골드문트가 수도원의 규율과 관습 금욕에는 어울리지 않는 섬세하고 감성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가 지성이 아닌 감성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길 바란다. 자신이 갖고 있는 본능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는 친구에게 지성만큼 감성도 우월하다고 말하며 이와 같은 인생은 성자인 사람 역시 건너와야 하는 길이라 말한다.
올리버는 이성을 대변하는 나르치스처럼 엘리오를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차원의 감성적 세계로 이끌고자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감정을 다루는 데 미숙한 엘리오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다. 엘리오는 분명 동요하고 있었다. 자신을 마치 모두 파악하는 양 행동하는 올리버의 뻗대는 태도가 거슬렸던 탓일까. 여기에 더해 올리버는 주저 없이 엘리오의 가치관과 신념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모습을 보이거나, 때로는 엘리오를 아직은 미숙한 어린아이처럼 대하기도 한다.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거짓인가? 엘리오는 자신의 삶을 잡아 흔드는 올리버에게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차갑고도 뜨거운 사랑
엘리오와 올리버의 관계는 사회 속에서 결핍된 자신을 자연에서 찾으려는 인간의 욕망을 닮았다. 사랑받는 자의 유일성, 그리고 사랑받는 자와 함께 있음으로서 느끼는 즐거움은 타자에 대한 욕망인 에로스가 육체적 행위 이상의 수준을 넘어선다는 것을 뜻한다. 각각의 사람은 하나였다가 둘로 나뉜 반 편의 존재와 같다. 그래서 끊임없이 다른 반편을 찾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 이 상태야 말로 우리들의 원초적 본성은 하나였고 한 몸이었다는 느낌을 갖게 해 주기 때문이다. 결국 서로가 합쳐지고자 하는 노력이 사랑인 것이다.
엘리오와 올리버는 벅찬 가슴을 끌어안고 교제를 시작한다. 올리버와의 교제는 엘리오를 한 차원 더 높은 세계로 데려다 놓는다. 연인과 깊은 시심을 나누고, 눈빛을 주고받으며 이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합일의 기쁨을 맛보기도 한다. 하지만 엘리오는 자신의 일렁이는 감정을 감당하지 못한다. 자신의 욕망이 너무나 거대하고, 또 어디에서 어떻게 솟구치는지도 모르는 채 마음을 누르기에 바쁘다. 처음 느껴보는 합일의 욕망, 즉 사랑의 감정은 엘리오에게는 너무나 낯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정신적 피로는 동시에 둘을 지치게 만들었다. 여름 방학에 잠깐 크레마에 머물게 된 올리버는 결국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엘리오는 어쩔 수 없이 올리버를 황망히 떠나보내게 되지만, 올리버는 곧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한다. 엘리오는 전화를 통해서 자신의 심장이 여전히 요동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결혼을 앞둔 그에게 열렬한 사랑고백을 퍼부울 수 없다. 그저 추운 겨울 따듯한 벽난로 앞에서 여름의 뜨거운 흔적을 더듬는 것 외에는 말이다. 처음 겪어 본 사랑의 기쁨은 열렬하지만 동시에 차가웠다. 달콤한 복숭아의 맛, 그리고 차갑게 흐르는 눈물의 짠맛이 한데 섞여 있다. 사랑의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