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막걸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병천 Apr 23. 2024

오산막걸리 이야기

아버지 고향에서의 추억이 담긴 맛


내 아버지의 고향은 경기도 오산의 지곳리다. 현재는 동네 이름도 바뀌었지만, 본적을 적어야 하는 서류를 작성할 때 자주 봤던 지명이다. 1984년에는 아버지가 중동에 떠나 계셨다. 누나와 함께 엄마의 손을 잡고 시외버스를 타고 세마대(洗馬臺)라는 정류소에 하차한 후 다시 버스를 한 번 타야 할아버지의 산소 근처에 다다를 수 있었다. 기억에는 하루에 두 번 정도 버스가 다녔다. 버스를 놓치면 비싼 택시를 타야 했기 때문에 항상 출발 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세마대에 도착했다. 버스정류장은 볼 것도 별로 없었고 주변에 구멍가게라고 불리던 조그마한 상점이 있었다. 그곳에서 엄마는 시골집에 살고 있는 친척을 위해 선물을 샀다. 지곳리 혹은 서랑리라고 부르던 시골의 지명보다 세마대는 왠지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서울에도 강감찬 장군의 탄생지인 낙성대가 있는데, 세마대는 어떤 곳일지 궁금했다. 근처에는 독산성이 있는데,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수만의 왜병을 무찌르고 성을 지켰다고 한다. 이곳의 전설이 있는데, 지형 상 물이 부족한 것이 이 성이 가진 취약점이었다. 그래서 왜병이 물을 지게에 올려보내 조롱을 했는데, 권율장군은 말을 끌어 흰쌀을 끼얹어 말을 씻기는 연출을 했다. 멀리서 보면 마치 물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말을 씻길 정도로 물이 풍부할 것으로 속아 퇴각했다는 이야기다. 세마는 ‘말을 씻기다’라는 표현이고 그곳이 세마대라고 불리게 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당시 추석 때 봤던 황금들녘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만큼 벼농사가 잘 되는 곳이었다. 그곳의 쌀로 밥을 지어먹으면 입에서 살살 녹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그런 쌀로 술을 담그니 그 술맛 또한 얼마나 맛이 좋을까. 1987년에 아버지가 사막의 나라에서 귀국한 후 몇 년 후인 1990년대 초반에 집에 자동차가 생겼다. 성인이 된 나는 가족과 함께 설날에 서랑리에 성묘를 위해 내려갔다. 엄마와 버스를 갈아타고 갔을 때와 달리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할아버지 산소에 다녀온 후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에게 아들을 소개하러 지인들의 집에 데리고 다녔다. 세배를 하고 덕담을 들으면 안주인이 주안상을 내왔다. 운전으로 인하여 아버지는 술을 마다했고 덕분에 내가 그 집의 가양주를 맛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당시에는 집집마다 술을 빚어서 마셨던 모양이다. 어느 순간 가양주 문화가 사라져서 이후엔 그 맛을 볼 기회가 없었다. 그러니까 당시에 세배드리고 마셨던 술이 내겐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셈이다. 어떤 집에서는 꽃무늬가 그려진 동그란 양은 상에 술과 안주가 나왔고 다른 집에서는 나무로 된 상에 나왔다. 상의 모양과 안주는 달랐어도 술은 주전자에 담아 나왔다. 서울에서 온 친구의 아들에게 덕담을 해준 어르신들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투박한 손으로 간장 종지만 한 방짜유기에 술을 따라주던 모습은 기억난다. 소싯적 아버지와 가장 친했다던 집부터 갔는데 그 집에서 마신 술맛은 30년 정도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아니, 어떻게 술이 이렇게 맛이 좋을 수 있지? 당시 무척 맛없고 독한 알코올 25%의 소주를 한창 마시던 때라 처음 맛본 가양주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그 맛을 언어로 표현하기 참으로 부족하다. 달지 않으면서 단맛이 나고 알코올이 낮은 도수가 아닌데도 불쾌하지 않았다. 식도를 자극하지 않고 달래듯 부드럽게 넘어가는 것이 술은 술술 넘어간다는 각설이 타령의 가사가 생각나기도 하고 방짜유기의 묵직함이 옛 선비의 기품을 더해주기도 했다. 안주에 손이 가지 않을 정도로 잔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한 주전자가 비워질 때에도 접시의 안주는 줄어들지 않을 정도였다. 술이 이렇게 맛이 좋을 수 있냐고 감탄하는 청년을 보며 어르신들이 미소를 지며 했던 말도 기억한다.

“맛이 좋다고 해도 계속 마시면 취하니 적당히 마셔야 한다.”

인사를 마치고 다음 집으로 이동해서 인사를 드렸다. 그곳에서도 역시 주안상이 차려져 나왔고 술잔은 방짜유기였다. 가양주의 특성 때문인지 비슷한 술이었지만, 맛이 미묘하게 달랐다. 맛있는 술을 처음 마셔보는 모습이 재미있는지 아버지는 “녀석아, 그렇게 마시면 취해!”하며 껄껄 웃으셨다. 그렇게 네 곳 정도 세배를 드리며 집집마다 내어준 가양주 덕분에 난 차에 타자마자 바로 기절했다.


오산막걸리 사진 <사진 출처 : 오산양조>


추억의 맛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연남동에 있는 술집에 즐겨 마시는 막걸리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거의 마셔본 막걸리였지만, 그중 마셔보지 않은 막걸리가 눈에 띄었다. 병이 얇은 것도 특징이었지만, ‘오산’이란 단어는 옛 기억을 소환하기 충분했다. 처음 보는 막걸리라고 말하자 주인장은 흔쾌히 시음을 권했다. 시음용 잔에 받아서 맛본 막걸리의 맛은 아버지 고향에서 세배할 때 마셨던 그 맛과 무척 닮아있었다. 당시에 마셨던 술은 약 13~16% 알코올의 약주였고 시음을 한 술은  6%의 막걸리였다. 세마대의 쌀로 빚었다는 막걸리를 마시면서 아버지 생각이 났다. 양조장 전화번호를 메모해 두고 며칠 후에 아버지 댁으로 배달을 시켰다. 어릴 적에 맛본 가양주와 맛이 비슷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아버지는 정말 고향의 맛이라고 대답하셨다. 오산막걸리는 아버지 고향의 추억이 떠오르는 막걸리로 가끔 찾게 되었다. 합성감미료 없이 은은한 달콤함을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막걸리다. 같은 양조장에서 나오는 오매백주라는 술이 세배를 다닐 때 마셨던 술과 알코올 함량(12%)과 맛은 비슷했지만, 걸쭉한 원주(물을 섞지 않은 탁주)라는 점이 달랐다. 오매백주와 비슷한 맛을 내는 막걸리는 배혜정도가에서 나오는 우곡생주이다. 세마대 근처의 정남에서 만들어서 그런지 맛이 비슷하다. 오산막걸리보다는 단맛이 강한 호랑이 생막걸리도 풍미가 비슷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막걸리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