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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얏삐 Nov 06. 2023

모든 것이 엉망이어도 괜찮은 도시, 런던

다른 나라에서 살아갈 결심을 한다는 것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까지도 런던에 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급하게 예약한 비행기표, 바쁜 일상 속 대충 챙긴 짐. 이번 여행의 목적은 관광이 아니었다. 특별한 여름휴가이자 영국에 있는 친구를 보러 간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사실 그것보다도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두 번째 나라라고 부를 만큼 애정을 가진 이 나라에서 내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 영국이라는 나라와의 궁합을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알아보고 싶었다.


한국에서의 내 심정은 그야말로 막다른 골목 같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과거를 바꿀 수는 없으니 달리 방법이 없어 보였다. 사방이 높은 벽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항상 떠올린 탈출구는 영국이었다. 꾹꾹 눌러 참아왔던 것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펑. 간신히 묶어둔 줄이 툭 끊어져 표정관리조차 되지 않자, 나는 런던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영국에서 내가 정말로 ‘이민자’가 되어 살 수 있을지, 내가 환상에만 젖어 현실성 없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풀타임 직장인이 될 수 있을지, 한국에서처럼 ‘경력’을 쌓을 수 있을지, 막연한 두려움인지 현실인지 직접 몸으로 부딪쳐 알아보기 전에는 알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으로 떠나기 전,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여러 군데 지원했다. 과연, 영국 학위도 없고, 일할 수 있는 비자조차 없는 나를 받아줄 곳이 있을까. 7월 8일부터 17일까지 인터뷰가 가능하다는 마무리와 함께 커버레터를 써 보냈다. 회사 이름도 틀리고, 터무니없는 연봉을 요구했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거절 메일을 받은 뒤였다. 거절을 받았음에도 이상하게 기대감이 커졌다. 일주일 사이에만 내가 원하는 직무 공고가 5-6개씩 생겨나는 런던이었다. 내가 원하는 직무를 찾을 수 없던 한국에 비하면, 승산이 있겠다 싶었다. 다음번에는 급하지 않게 잘 준비하면 될 것이라며, 워킹 홀리데이 비자가 있다면 더 가능성이 커질 거라는 기대감이 가시지 않았다.


얼렁뚱땅 직장에서의 가능성을 마음대로 단정지은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며 소셜라이징할 수 있을지, 내 의사소통 능력이 뒷받침이 될지 알아보고 싶었다. 이미 익숙해진 내 절친 말고 다른 사람들과도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은 어려웠다. 체력이 떨어질수록 말을 알아듣는 것도, 표현들을 생각해 내기도 더더욱 어려워졌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었다. 모국어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뉘앙스가 줄어들어 편안했고, 모국어가 아니니 표현이 미숙할 수 있다는 전제가, 모든 말에 조심스럽던 내 숨통을 트이게 했다. 하고 싶은 말들이 좁은 언어의 깔때기에 걸려 전달이 잘 되지 않을 때마다 이 환경에 노출되고 부딪쳐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어졌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다채로운 표현들을 흡수하고 싶었다. 실제로 쓰이는 표현들을 알아가고 싶었다. 내 말이 혹여나 틀릴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까 걱정하기보다는, 어떻게든 내 이야기를 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연결되고 싶었다. 어쩌면 지난 교환생활에서의 아쉬움에서 비롯되어, 새로 주어진 기회를 더욱 단단히 잡으려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용기 내어 건넨 내 이야기에, 친구는 웃으며 한국에서의 여행 이야기로 화답했다.


한국에 여행을 다녀온 그녀는, 한국에 비해 영국이 너무 지저분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뒤 며칠간 유심히 관찰한 런던은 엉망이었다. 더러운 시설, 후덥지근하고 냄새나는 지하철, 골목마다 자리한 홈리스, 약에 취한 듯 어딘가 이상한 사람들, 엉뚱한 코너에 대충 올려둔 상품들, 무더기로 쌓인 옷더미들. 그런데도 이상하게 거북하지 않았다. 별로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나도 어딘가 이상하고 모자라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오트밀 코너에 덩그러니 놓인 통조림처럼 어색해도 괜찮았다. 그럴 법도 한 게,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어떤 것이 이상하고, 어떤 것이 괜찮은 것인지의 기준은 수십만 가지였다. 각자의 출신에 따른 문화, 그에 따른 옷차림과 행동 방식, 출신지와 자라온 곳에 따라 섞여 나타나는 억양까지, 런던에서는 무엇이든 각자의 것들이 있었다. 따라야만 하는 기준이 있기보다 내가 선택하는 것이 나의 기준이 되는 곳이었다.


한국에서도 나만의 기준을 고집하며 살아가려 하지만 계속해서 흔들렸던 나였다. 다른 사람과 다르고자 하면서도 비슷하고 싶어 불안해하며 절뚝이며 살아왔다. 그런 내게 이 나라는 자유로웠다. 모든 것이 괜찮아야만, 괜찮아 보여야만 하는 한국과는 달랐다. 다 벗겨진 매니큐어가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개개인이 너무나도 다른 이곳에서 나는 계속해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니면 시간이 지나 소속감을 느낄 곳이 없어 불안정하게 살아가게 될까.


그런 나의 판단에 레퍼런스가 된 것은 오래전 유학을 와 정착해 살아가고 있는 아시안 친구들이었다. 부모님과 떨어져 낯선 곳에서 삶을 시작한 아이들은 자유롭고 독립적이었지만 그만큼 외로웠다. 스스로 자신을 돌보며 자라와 생활에 능숙하고 성숙한 듯 보였지만 때로는 처음 이 나라에 발을 디딘 그 순간의 아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우중충한 날씨의 타국에서 살아가며 정신을 멀쩡히 유지하기란 참 어려워 보였다. 술, 마약, toxic relationship, 자살 충동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까지 현실의 단면은 참 씁쓸했다. 나라고 이곳에서 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몇 번이고 우울이 찾아와도 이겨내는 친구를 보았다.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려는 친구들의 시도를 보고 난 뒤에, 자신에게도 자살이 하나의 선택지로 주어진 것 같다고 했다. 세상을 떠날 선택을 할 뻔한 고비를 몇 번 넘긴 뒤 이제는 주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도 행복해지겠다는 친구의 말은 누구보다 힘이 있었다. 태어난 나라와 자라온 영국, 그 어디에도 완전히 들어맞지 않는 반쪽짜리 정체성에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똑같이 절반의 정체성을 가진 친구들끼리 어울리고, 의지하고 또 연대하는 모습. 흔들리며 자라왔지만 또렷한 말투로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가치관을 말하는 모습까지도, 불안하고 약한 존재처럼 보였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꿋꿋이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친구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항상 자유롭고 넉넉해 보이는 그들이 부럽기만 했다. 영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하고 이 자유로운 문화를 누리고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이 부러웠다. 길거리에서도 박물관에서도 영국에서 오래 산 듯 보이는 사람들만 눈에 들어왔다. 전혀 동양의 문화가 느껴지지 않는 동양인들을 보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뻔한 진리대로, 좋아 보이는 것 이면에는 항상 그에 상응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난 내가 한국인인 게, 한국에서 자란 것이 싫었다. 한국의 사고방식을 가진 게 싫었다. 한국의 마인드를 싫어하면서도 그 모든 것에 익숙해져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행동하는 내가 싫었다. 한국은 내가 작은 행동을 해도 시선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신입이니까’ ‘너 나이 때는 이럴 테니까’ ‘여자니까’ ‘남자니까’ 나이와 성별에 따른 선입견이 싫었다. 모든 기대와 예측과 통제가, 생의 단계별로 사회에서 요구되는 것들을 해내야 하는 게 싫었다. 한국에서는 조금의 다름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지금의 회사에서 특히 내가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고, ‘넌 왜 그래?’라는 반응과 시선을 받을 때마다 괴로웠다. 내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게, 때로는 내가 진짜 잘못되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야만 하는 게 싫었다. 인천 공항에 내려 한글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났다. 아, 숨 막혀.


내가 열망하는 모습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그 싫은 모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용기를 내 떠나야만 한다. 다소 외롭더라도 나만의 삶을 만들어나가고 싶고, 새로운 곳에서 살며 달라지고 싶다. 열흘 동안의 여행이 아니라, 삶이 지속된다면 난 영국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어려움을 겪더라도 이겨낼 수 있을까.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너덜너덜 돌아와 한국에서 실패한 인생을 다시 시작하더라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위로할 수 있을까. 상상조차, 가늠조차 되지 않아 두려웠다. 두렵지만 원했다.


사람들의 조언이 자꾸 귀에 맴돌았다. 너를 위해선 이게 좋아, 어렵다고 들었어, 힘들지 않을까, 하는 말들. 현실적인 의견들을 뒤로하고 내가 용기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아무도 내가 되어 내 삶을 살아주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라도 내게 정답을 말해줄 수 없다. 내 선택을 대신해 줄 수 없다. 나조차도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선택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어떤 미래가 펼쳐지게 될지.


실패하더라도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며 살아가고 싶다. 내가 선택한 것의 결과를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다음 선택을 하고 싶다. 등 떠밀려 원치 않는 열차에 급히 올라타서 방향이 잘못되었다며 징징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주변의 눈치를 보며 발맞춰 따라가며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계속해서 문을 두드릴 것이다. 모든 게 엉망이어도 괜찮은 이 도시에서의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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