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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얏삐 Nov 06. 2023

결정불가의 순간들

내 선택의 결과에 책임질 용기


밀라노의 두오모 대성당을 방문했을 때, 2가지 종류의 티켓이 있었다.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는 티켓과 조금 더 돈을 지불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티켓. 둘의 금액 차이는 6유로, 한화로 8000원 정도였던 것 같다. 나는 키오스크 앞에 서서 둘 중 어떤 것을 고를지 몰라 한참을 눈을 굴리고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서 있었다.


대체 그때 왜 그 둘 중 하나를 고르는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는지 아직도 이해하기 어렵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여행을 하는 가난한 학생의 마음에서 그랬다고 하더라도, ‘돈을 아낀다’ ‘편하게 올라간다’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던 건지 모르겠다.


이후로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결정불가’의 순간은 수도 없이 많았다. 매번 나는 선택지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결정을 내리지 못해 미루고 미루다 급한 마음에 아무거나 선택하거나,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들으며 선택지 사이에서 진자 운동을 계속하다 혼자 지쳐 나가떨어져 버리거나, 내 마음대로 ‘내 인생의 대법관’ 감투를 한 사람에게 (마음속으로) 씌워놓고 그 사람의 결정에 따르거나. 의사결정의 오답노트를 쓰라면 한 달 내내도 쓸 수 있을 정도로, 갖은 잘못된 방식으로 결정을 내리고, 후회했다.


내가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던 이유는 두 가지다. 결정을 내릴 나만의 잣대가 없었고,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책임질 용기가 없었다.


누군가 내게 선택의 방법에 대해 조언해 주었다. 경제학과답게, 가능한 모든 선택지들을 두고, 각각의 경우의 기회비용을 따져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이때 각 선택지의 편익과 비용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로부터 정보를 얻으라고 했다. 아무런 정보 없이 내 마음대로 결정을 내렸다가 후회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만 듣고 선택했다가 나에게 맞지 않아 후회하기 일쑤였던 내게, 사람들의 ‘의견’과 ‘조언’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얻되, 내가 선택을 내린다는 점에서 이 방식은 완벽했다. 다만 한 가지, 사람들에게서 수집한 정보로부터 ‘편익’을 계산하는 것이 어려웠다. 초콜릿을 먹을 때의 편익은 사람마다 다 다르게 계산되는 거니까, 내가 저 기회를 놓쳐도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에 비해 난 별로 아쉽지 않을 수 있으니까, 모든 계산에 ‘나’에 대한 고려가 필요했다. 내가 어떤 것을 얼마나 더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에 대해 더 잘 알아야만 했다.


또한 나는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한 협력사 대표님이 말했다. 일은 ‘운명’ 같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하되, 그 이후의 결과는 그저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한 회사를 이끄는 대표로서 일의 수주와 성과에 간절할 것 같았지만, 그는 오히려 덤덤했다. 반면에 나는 항상 선택의 결과에 연연했다. 내 손을 벗어나 운명의 심판을 기다려야만 하는 순간에도, 내가 원하는 대로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안절부절못했다. 어떻게든 결과까지도 바꿔보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세상에는 내 의도대로 바꿀 수 없고, 그래서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내린 선택이 가져온 나쁜 결과에 대해 책임질 자신이 없었다. 내가 내린 결정으로 일어난 좋지 못한 부분까지도 수용하고 묵묵히 책임질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틴더의 슬로건처럼 '틀린 선택'은 없다. 좋아 보이는 선택이 어떤 문제를 불러올지, 나쁜 선택이 어떻게 반전의 행운을 가져다줄지 모른다. 에에올의 내용처럼 그저 다양한 길이 있을 뿐이다. 그 모든 길에서 우리는 배울 수 있다. 지금까지의 그 어떤 선택의 상황보다 난 더 큰 결정을 마주하고 있다. 한 순간의 선택으로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뒤바뀔지도 모르는 선택. 나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각각의 길 중에 내가 정말 원하는 것, 내게 좋은 것을 생각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 나중에 어떤 일로 이어지더라도 겸허히 받아들이려고 한다. 오히려, 선택이 가져올 예측불가한 미래를 모험이라 여기고 즐거이 헤쳐나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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