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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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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iii Aug 24. 2019

마당에 꽃과 방울토마토가 있는 집

* 영화 <우리집>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으신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공교롭게도 <우리집>을 보기 전날 밤, 땅바닥에 누워 집 매물을 보았다. 이 가격이면 이렇게, 이곳에서 살 수 있는 거구나 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고 일 년에 최대로 모을 수 있는 양의 돈을 헤아렸다. 컴컴한 천정 밑으로 제대로 서 있을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그저 바라는 것은 창문을 마음 놓고 열기 힘든 일층이 아닌 이층으로 올라가는 일과 작은 방 두 개가 딸려있는 곳이었지만 서울의 집값은 늘 그렇듯 만만치 않았다.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이번 해에는 월세를 벗어나 보겠다는 목표는 다음 해로 넘어가버렸다.



  영화는 흔한 부부싸움 사이에 어쩔 줄 몰라하는 소녀의 얼굴로 시작한다. 하나의 엄마와 아빠는 가사노동의 분담과 그 외의 문제에 대해 소리를 지른다. 하나는 싸움의 원인이 장을 보고, 밥을 하고 설거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자신이 가사노동을 하게 되면 싸움이 일어나지 않겠지 생각한다. 그리고 몇 해 전 갔던 가족여행을 떠올린다. 그 여행을 다녀온 후 사이가 좋아졌던 엄마와 아빠를 떠올린다. 하나는 우리집을 지키고자 한다. 반찬을 하고 이뤄지지는 않는 '밥 먹자.'라는 말을 계속 내뱉는다. 아빠의 휴대폰과 엄마의 여권을 숨긴다. 그리고 그녀가 한 가닥 잡을 수 있는 가족여행이라는 희망을 성사시키기 위해 분투한다.


  엄마와 아빠는 자주 다투지는 않았지만 가끔 안방 문을 잠갔다. 그것은 들어오지 말라는 신호였고, 시간이 흘러 방문을 열고 아빠가 집을 나가고 나면 열린 문틈 사이로 엄마가 우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초등학생 때는 우리집을 우리집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중학생이 된 이후로는 그러지 못했다. 종종 친구와 혼자 사는 집에 대한 상상을 펼치는 놀이를 하곤 했다.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고, 방은 세 칸이면 좋겠다. 방은 각각 침실, 작업실, 강아지 방이라는 용도로 사용하는. 나름의 평면도를 그리면서 놀았던 기억이 있다. 나는 하나처럼 우리집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다. 다만 벗어나고자 했다.


  멀리 일을 하러 나간 엄마와 아빠 없이 유미와 유진은 집을 지킨다. 이사를 여섯 번쯤 한 아이는 누구와도 관계를 맺기가 쉽지 않다. 어린 유진을 돌보는 일 외에 유미가 집에서 할 수 있는 놀이란 종이 무더기를 헤쳐 선물상자로 만드는 일이다. 마당에 심은 방울토마토가 익을 무렵, 다시 이사를 가야 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마트에서 우연히 만난 하나와 함께 소심한 반항을 시작한다. 집이 무척 덥다거나 춥다거나 벌레가 나온다거나 하는 작은 말부터 집을 난장으로 만들거나 집 보러 온 사람을 피해 도망쳐 나오는 식의.


  어릴 적의 우리들은 피치 못하는 저마다의 사정으로 무심결에 떠나거나 남겨졌다. 다섯 살 무렵부터 대학 입학까지의 시간을 한 공간에서 지내는 동안, 같이 놀던 친구들은 자주 그곳을 떠나갔다.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놀던 친구가 한순간에 사라지고, 갑작스레 이별의 편지를 건네곤 교탁 옆에서 인사를 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나고 우연히 마주친 그들과의 사이에선 어색함과 그동안 떨어져 보낸 시간이 동시에 우리를 감쌌다. 함께의 공기를 찾기에는 너무나 많은 공기가 지나가 버린 후였다.


  엄마와 아빠를 찾아 해변에 도달한 셋은 황급히 병원으로 향하는 부부의 텐트에서 잠을 청한다. 그들은 앞으로의 일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이곳이 우리집이었으면 좋겠다며, 물고기를 잡아서 먹고살면 되겠지 하며 희희낙락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들은 새벽녘부터 버스를 기다린다. 어젯밤의 환상과 같던 대화들은 그저 바람일 뿐이라는 것을 당연히도 알고 있다는 듯이. 과연 그들이 했던 일말의 행동들은 정말 그렇게 하면 집을, 가족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몸짓이었을까. 사실은 그들도 알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자를 모으고 풀칠을 하며 색종이를 붙이고 계란판에 색을 칠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집(The House of Ours)>, 윤가은, 2019



  다시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방치한 방에서는 먼지가 굴러다녔고,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냉랭한 공기가 벽지에 묻어있었다. 겨울을 같이 지낸 이불을 빨고 세탁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이지만 나의 집은 아닌 곳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언제 떠날지 모르는 이 집을 안식처로 삼지 못했기 때문이다. 침대 하나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방에서 언제 떠나게 될지 모르는, 정착하지 못한 마음은 화초 하나 제대로 살 수 없는 공간을 지어냈다. 볕이 잘 드는 커다란 창문을 가진 이층의 집에서 언제 지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설상가상으로 조건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우리집은 아니지만 우리집처럼 만드는 꽃과 방울토마토, 상자로 가득 찬 그런 집. 첫 번째는 모르겠지만 두 번째 조건은 조금 분발하면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마음이 든다. 유미와 유진의 집은 어떻게 되었을까. 마당에 꽃과 방울토마토가 있고 선물상자로 가득 차 있던 우리집.

 




<우리집(The House of Ours)>, 윤가은,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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