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소설 <한 사람을 위한 마음>과 영화 <윤희에게>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책의 인용은 큰따옴표를 사용했습니다.
어스름한 어둠에 가로등 불빛이 반짝였다. 구부러진 길을 바라본다. 사선의 끝자락에 퇴근하는 아빠의 모습이 보인다. 풍경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졌다. 새 집으로 이사를 했다. 짧은 다리로 힘겹게 오르내려야 했던 투박한 계단을 더 이상 마주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한쪽 뺨에 자리 잡은 흉터는 희미해질 뿐, 사라지지 않았다. 뻑뻑한 현관문의 잠금장치를 풀기란 역부족이었다. 갇혀 있던 짤막한 순간이 네모난 상자 안에 있는 것처럼 컴컴하다. 새 냄새가 나는 아파트는 안전했다. 깨끗하고 부드러웠다. 푹신한 소파에서 불안 없는 안온한 단잠을 잤다. 모든 것을 두고와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순간 몸을 일으켜 세운다. 토끼 인형이 사라져 버렸다.
그때쯤일지도 모르겠다. 마음 터놓을 일기장이나 인형이 생겼을 때, 그들에게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 것은. 이주란의 단편소설 <한 사람을 위한 마음>에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적다. 아니, 화자가 이름으로 지칭하는 사람이 유난히 적다. 화자는 동창 P와 고교 선배 N, 친구 K, 그리고 옛 애인 M을 이니셜로 부른다. 이름으로 등장하는 이는 떠나간 언니의 딸 송이와 송이가 좋아하는 토끼 인형 레나, 집에 놀러 와 맛있게 떡볶이를 먹은 송이의 친구 예리, 화자가 일하는 서점 주인의 아들 용준, 참고서를 잘못 사가서 바꾸러 온 현우, 그리고 서점 주변에서 파스타집을 하는 준호 씨뿐이다. 화자의 이름조차 이야기 중간까지 나오지 않다가 '조지영 씨.' 하고 준호가 불러주는 장면으로 등장한다.
지영은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름을 부른다. 그녀는 "언제든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모든 날들을 비슷하게 만들며 살고 싶"다. 그것은 "나 혼자 그런다고 되는 게 아닌 걸 알면서도."라는 지영의 독백처럼 쉽지 않지만. 어버이날이었을 것이다. 지영과 그녀의 엄마, 그리고 송이는 함께 만든 떡볶이와 개운한 콩나물국을 앞에 두고 여느 날과 같이 함께 한다. 우는 세 사람, 그리고 이어지는 서로를 향하는 위로를 보노라면 지영의 바람이 영 헛된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슬프고 해 줄 수 있는 게 있어서 행복한" 그들은 같은 공간에서 속눈썹을 내려놓은 채, 작게 코를 골며 잠을 청한다.
학원 강사로 생계를 유지하던 지영이 점원을 구한다는 쪽지를 읽고 홀린 듯 작은 서점에 들어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좋은 기억도 딱히 없으면서 어쩐지 정이 들어버린 곳"이 자신의 공간임을 알아채는 일은 무심코 길을 지나가다 불현듯 일어난다. 자신의 공간을 찾는 사람들은 주변을 살펴보며 기웃거리기 마련이므로. "텔레비전을 보거나 감자나 옥수수 같은 것을 먹으"며 여태껏 자리하던 곳을 지키고자 하는 주인 부부의 마음은 지영이 그토록 원하던 서점에 새 책을 들여오는 일로 이어진다.
준호 씨와 가게 된 낭독회에서 지영은 작가에게 사인을 요청한다. 지영이 타인에게 이름을 요청하는 유일한 장면이다. 너무 좋아한다는 그녀의 고백과 함께 종이에는 그녀의 이름과 작가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다. 내 이름과 타인의 이름이 함께 적힐 때, 우리는 어떤 틈을 메우고자 할까. 비로소 나와 타인은 종이 위의 작은 공간을 획득한다.
어수선한 연말이었다. 보고픈 이들을 만나고자 하는 마음은 선뜻 만남으로 이어지기 어려웠다. 몇 사람에게 그 마음을 엽서에 적어 보냈다. 인증이 붙은 편지봉투보다는 우표가 붙은 편지봉투가 마음에 들었다. 그 탓에 아마 엽서는 사나흘쯤 후 그들에게 도착한 듯하다. 안부를 전한 행위를 잊었을 즈음, 엽서에 대한 답신이 하나 둘 도착했다. 인증사진과 함께 잘 받았다는 메시지, 간혹 일주일쯤 후에 엽서로 답장을 받기도 했다. 한 공간에서 주고받았던 서로의 시공간이 엽서로 대체된 것은 생경하지만 친숙한 일이었다.
영화 <윤희에게>의 쥰은 한때 사랑했던 윤희에게 편지를 쓴다. 쥰은 차마 보내지 못한 편지를 꽤 많이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 편지를 쥰의 고모 마사코가 우체통에 넣는 것으로, 윤희의 딸 새봄이 우편함에서 편지를 발견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윤희에게'로 운을 떼는 쥰의 편지는 고등학생 시절 윤희와 헤어진 후부터 아빠를 잃은 지금까지의 시간을 고백한다. 그녀가 겪었던 그동안의 시간들은 역시 그동안의 시간을 겪은 윤희에게 도착한다. 그리고 이에 화답하듯 윤희는 새봄과 쥰이 있는 오타와의 겨울 풍경을 맞이하러 떠난다.
편지에는 작은 바람이 담겨있다. '너와 내가 같은 공간에 있었으면 합니다.'라는 작은 고백이. 당신이 편지를 읽는 동안 내가 당신을 생각하며 편지를 적어 내려 간 시간으로 초대하겠다는, 시간성과 공간성을 모두 뛰어넘어 마음을 전달하겠다는 이 야심 가득한 행위는 수천 년부터 지금까지 지속되어 왔다. 모든 이에게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진다고 하지만, 사실은 미세하게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살짝 스쳐 지나가는 서로의 잔상만을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어긋난 너와 나의 시간과 공간을 포개고자 하는 바람이 편지를 탄생시킨 것은 아닐까. 종이는 평면으로서, 공간은 입체로서 이름과 겹쳐진다. 잡히지 않는 꿈의 형체를 평면에 아로새기면서.
- '나도 네 꿈을 꿔'
편지에는 발신인과 수신인이 적혀있다. '누구에게'로 시작해서 '누구가'라고 쓰여있는 별것 아닌 형식이 나름의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친구 P는 받은 손편지나 엽서들을 침대 위에 붙여놓는데, 그것을 볼 때마다 나는 P의 지난 시간을 생각하곤 한다. 그녀에게 이름을 불러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형식의 글들은 그 내용이 아무리 가볍고 형식적이다 한들 어디까지나 전하고픈 내적 고백으로 가득하다. 본가의 책장 서랍에는 엄마가 아빠와 연애시절 받은 편지와 엽서를 모아둔 상자가 있다. 이제 삼십 년이 넘은 그 편지와 엽서들에는 아빠가 정성껏 쓴 엄마의 이름과 아빠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있다. 안 그래도 잘 쓰는 글씨인데 사랑하는 이에게 쓰는 글이라고 더 힘줘, 꾹꾹 글씨를 담아낸 것이 지금까지도 묻어난다. 한 장의 종이 안에 이름과 이름이 함께 하는 것, 애달프다. 그리고 멋지다.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이주란, 2019
<윤희에게(Moonlit Winter)>, 임대형, 2019
* 표지 이미지 : <윤희에게(Moonlit Winter)>, 임대형, 2019